블러그 주인방/박풍규 기타 글

영어교육의 문제점

박풍규 2006. 9. 12. 10:58

 

 

*(06.1.13)자 동아일보 독자란에 있는 것을 스크랩 한것 입니다
공감하는 점이 있어 게시 하니 참조 바랍니다.
그리고 영어교육 시작을 초등학교 1학년으로 확대한다지요..

 

영어교육의 문제점


우리나라 사람들이 영어 한 과목을 위하여 아이들에게 들이는 돈과 노력은 엄청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서도 미국 사람과의 유창한 대화는 커녕 도움 없이 편지 한 통 제대로 쓰는 사람이 드물다고 한다.


단 한번의 과외도 없이 순수하게 학교 교육에만 의지하고 있는 독일 김나지움 학생들의 영어 수준과 대조적이다.  독일 사람들의 영어 공부는 우리나라 사람이 일본어나 중국어를 배우는 것만큼 쉬운 일이다. 하지만 쉬운 언어임에도 공부하는 과정은 우리보다 어렵다. 같은 라틴어계의 언어라는 이점도 있겠지만 교육과정도 우리나라와는 비교가 되지 않으니 그 실력은 당연히 따라가기 어려운 것이다. 물론 학교공부에 충실하지 않은 사람이 졸업하고도 영어에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점은 우리나라와 같다. 그러나 아주 성적이 우수한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느 정도 학교 진도를 따라가기만 했더라도 말하기와 쓰기에는 큰 어려움이 없다.


독일의 영어교육은 김나지움 5학년 때부터 시작한다. 작년부터는 종일반 수업의 시행과 함께 한 학년이 앞당겨져서 4학년부터 시작된다. 우리 아이가 공부하는 김나지움은 소위 한국의 특수목적고와 같은 빌링구알이라고 하는 외국어 학교다. 인구 30만 정도의 소도시에도 3개의 빌링구알 김나지움이 있다. 이 중에 두 곳은 프랑스어 김나지움이고 우리 아이가 다니고 있는 한 곳이 영어 학교다. 학교 수업에서 영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당연히 가장 높다. 독일어 수업은 주중 4시간인 반면 영어는 6시간이 배정되어 있다. 또한 7학년이 되면 사회과목중 지리를 영어로 수업하고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정치, 역사 등 새로운 영어 과목이 추가된다.


현재 6학년인 우리 아이의 영어실력을 보면 이미 일주일에 한 번 독일 말을 전혀 하지 못하는 영국 선생님의 수업을 받을 정도로 듣기와 회화에 문제가 별로 없다. 자기소개나 편지, 간단한 의견을 쓰는 데도 별 어려움이 없어 보인다. 물론 6학년 수준의 문법과 어휘 한도 내에서 말이다.


독일에서 만족한 영어 교육을 받고 있다고 하더라도 한국으로 돌아갈 생각을 하고 있는 사람들은 한국적인 평가에 관심이 많기 마련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어서 같은 또래의 한국 아이들과의 수준차이를 알고 싶어서 궁리하던 중 모 외국어 고등학교에서 주관하는 국제영어대회에 독일에서도 참가할 수 있다는 정보를 듣게 되었다. 영어 성적이 언제나 상위권이기도할 뿐더러 수업시간 수 등을 따져보니 한국 아이들 보다 실력이 나을 것으로 생각하고 초등 5,6학년용 기출문제집을 구해 풀어보게 했다.


결과는 의외였다. 아이는 처음 시험을 시작할 때부터 아는 단어가 몇 개 없다며 투덜거리기 시작하더니 간신히 100점 만점에 50점 정도의 점수를 받았다. 너무 어처구니없는 점수였다. 아무리 독일학교의 수준이 낮다고 하지만 반에서 그래도 가장 높은 점수를 받는 아이가 한국에서는 낙제를 면치 못하는 수준이라니. 내 스스로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없을 것 같아 아이에게 책을 들려 영어 선생님께 보내 평가를 부탁했다.


며칠 동안 꼼꼼히 읽어 보신 영어 선생님은 한마디로 도대체 기준이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전해왔다. 문법은 독일에서 영어를 처음 시작하는 5학년 1학기 정도의 수준이고 어휘는 9학년 정도의 수준이라며 놀라워했다. 도대체 이 문제를 풀 수 있는 아이들의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가늠 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리고 초등학교 5.6학년이면 기초 글쓰기와 문법, 회화 등을 위주로 연습해야할 시기인데 독일에서는 10학년이나 되어서 하는 오지 선다형 독해문제를 푼다는 것이 이해 할 수 없다고 했다. 또 이 독해문제를 풀 수 있는 학생이 글쓰기와 문법, 회화 등 기초적인 공부를 이미 끝낸 아이들인지 아닌지 궁금하다고 의아해 했다.


선생님은 오지 선다형 문제 자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오지 선다형으로는 대략 수준을 알 수 있을 뿐이지 학생들의 실력을 정확하게 평가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몰라도 정답을 맞힐 확률이 20%이니 어떻게 학생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집어낼 수 있겠느냐는 이야기를 전해왔다. 그 때문에 독일 학교의 시험에는 사지 선다형이나 오지 선단형과 같은 문제가 거의 출제되지 않는다는 것을 이 번에 처음 알게되었다.

 

작문과 회화를 위주로 수업을 하는 독일학교 저학년 영어 교육과는 판이하게 다른 문제를 보고 선생님이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하다. 독일은 영어를 배우기 시작하면서부터 알고 있는 단어 량에 맞추어 텍스트를 쓰는 연습을 한다. 단어를 먼저 많이 외워두고 적절한 어휘를 골라가며 작문을 하는 것이 아니라 열 개의 단어를 배우면 그 단어를 활용하여 자신의 의견이 들어간 글을 써낼 수 있어야 한다. 논술과 말하기를 중심으로 한 수업이라는 것은 수준만 낮을 뿐이지 독일어와 같다.


한 예로 영어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은 5학년 영어시험 문제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총 네 문제 중 두 문제는 어휘와 문법에 관한 테스트다. 그리고 3번 문제는 ‘일주일중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요일에 관하여 often,usually,sometimes 등의 부사를 넣어 쓰시오.’, 4번은 ‘그림에 있는 보기 중 3개 이상의 물건을 사려고 한다. 슈퍼마켓에서 쇼핑을 할 때 손님과 점원 사이에 오가는 Dialogue를 쓰시오.’ 등의 질문이다. 김나지움 저학년이기 때문에 1,2번과 같은 문법, 어휘문제가 고루 출제되었지만 학년이 올라갈수록 독일어와 마찬가지로 3번과 같은 논술 문제의 비중이 점점 높아진다. 독일어든 영어든 논술을 못하면 고학년이 되어서 공부를 잘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우리나라 영어교육은 몸은 그대로 있으면서 머리만 크게 자란 가분수를 양산하는 교육이다. 암기하고 있는 어휘량은 엄청나게 많지만 그 것을 끄집어 내어 실용화할 수 있는 능력이 부족하다. 그러다보니 사교육과 공교육을 통해서 그토록 많은 시간과 돈을 영어에 투자했지만, 학교를 졸업하고서도 길거리에서 미국사람을 만나면 피하기가 바쁘다. 학교교육도 문제지만 사교육에 의존하는 우리 교육에 비추어 볼 때 학부모들의 판단도 잘못되어 있다. 설사 학부모들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하더라도 학교 시험의 출제양상에 맞추어 공부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입시위주의 교육을 해야만 하는 우리 현실이기도 하다.


또 아무리 이상적인 교육 방안이 있다고 한들 영어교사들의 수준이 거기에 상응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은 영어 선생님들의 수준이 많이 달라졌겠지만 내가 학교에 다닐 때를 생각하면 그렇지 못한 경우도 많았던 것 같다. 독일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아이들이 정말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을 번역해 주는 것을 제외하고는 영어로 수업을 진행한다. 또한 지리, 정치, 역사 등의 사회과목을 순수하게 영어로 수업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우리 아이가 다니는 김나지움에서 7학년부터 시작되는 영어 사회과목 수업은 모두 이 학교의 영어 선생님들이 담당하는 과목이다.


지금은 설마 영어시간에 발음기호를 골라내는 연습을 하고 있지는 않겠지만 그 일을 생각하면 당시 우리나라 영어교육이 얼마나 비효율적으로 이루어졌는지 새삼 느낀다. 독일 아이들이 공부하는 것을 보니 그때가 더욱 안타깝게 떠오른다. 도대체 전문가들은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마치 오랫 동안 사기 당한 기분마져 든다. 지금 아이들은 많이 달라진 영어교육을 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독해와 어휘중심의 교육은 아직도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 같다. 영어교육 문제에 대해 다루어지는 기사를 읽다보면 방향이 옛날과 그리 달라지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또 아직도 선진국보다 한 교사가 많은 학생들을 담당해야하는 상황 속에서 선생님의 능력이 갖추어진다 하더라도 당장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다.


2008년부터는 초등학교 1,2학년부터 학교에서 영어수업을 한다고 한다. 다행히 현재 우리나라 저학년 영어교재가 말하기 위주로 되어있다고 하니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 점에 대해서도 읽기를 통해 언어능력을 키우는 부분이 소홀하다는 지적이 있다는데, 그 또한 10년 후에나 볼 토익이나 각종 시험준비를 염두에 둔 발상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우리나라 사람처럼 전혀 다른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경우에 말하기와 듣기는 아무리 배워도 부족하다. 읽기를 통해 언어능력을 키우는 것은 시험이 얼마남지 않았을 때 걱정해도 될듯 하다.


또한 1학년 단계에서부터 국어와 영어를 병행해 배우는 과정에서 언어습득에 혼란이 올수 있다는 지적도 있다는데 그 또한 기우다. 나는 벨기에와 네덜란드 독일이 만나는 삼각지점에 있는 아헨이라는 도시에 살고 있는데 이 곳에는 프랑스어와 영어 네덜란드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섞여서 살고있다. 초등학교 4년동안은 벨기에에서 불어로 수업하다가  독일의 영어 김나지움에 입학하는 학생도 있고, 초등학교에서 독일어와 불어를 동시에 배우는 아이들도 있다. 그러다보니 이 곳 사람들은 외국인에 대한 편견이 상대적으로 적고 외국어에 대한 두려움도 전혀 없다. 배우지 않은 언어라도 몇 달만 연습하면 된다고 간단하게 생각한다. 이처럼 어린시절 다양한 문화와 언어에 대한 경험이야말로, 국제화 시대를 살아가야 하는 우리 2세들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큰 유산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장 중요하게 걱정해야할 문제는 읽기 등을 통해 언어능력을 키우는 부분이 소홀하다는 것도, 1학년 단계에서부터 국어와 영어를 병행해 배우는 과정에서 언어습득에 혼란이 올 수도 있다는 것도 아니다. 또 무조건 조기교육이 효과가 있다고 해서 많은 예산을 쏟아부어 가면서 초등학교 1,2학년으로 교육연령을 낮춘다해도 결과는 큰 차이가 없을 것이다. 오히려 사교육 열풍에 부채질만 한 격이 될수도 있다.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성과를 위해서는 지금 시행되고 있는 영어수업의 질과, 평가방법의 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 것이 힘들다면 그래도 가장 손쉽게 할 수 있는 것은 각종 영어대회나 학교 이외에서 시행되고 있는 평가시험만이라도 바람직한 방향으로 출제할 수 있다면, 혹은 그러한 시험제도를 도입할 수 있다면 우리의 영어교육도 서서히 실용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작은 희망이라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