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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 청산도에 가다

박풍규 2010. 1. 8. 19:14

 완도에서도 뱃길로 45분을 더 가야 닿을 수 있는 남도의 섬, 청산도가 '슬로시티'로 국제 공인을 받았다. 전통이 살아 있고, 자연친화적인 환경 속에서 '느린 삶'을 영위할 수 있어야만 가능한 일. 이 섬은 앞만 보고 달려온 우리네 삶이 무엇을 잃었는지 가르쳐준다.


영화 <서편제>, 드라마 <봄의 왈츠>와 <해신> 등의 촬영지로 이미 아름다운 풍경이 잘 알려진 청산도(전남 완도군 청산면). 특히 영화 <서편제>에서 소리꾼 유봉이 의붓딸 송화, 아들 봉호와 함께 진도아리랑을 구성지게 부르며 걷던 돌담길은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남아있다.
청산도가 ‘슬로시티’ 국제인증을 받은 것은 지난 12월의 일. 슬로시티국제연맹은 현장 실사를 거쳐 청산도를 비롯해 신안군 증도, 담양군 창평, 장흥군 유치 등 전라남도 내 4곳을 슬로시티로 지정했다. 그동안 유럽, 호주 등지에서는 슬로시티 인증을 받은 곳이 많았지만 아시아에서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슬로시티’ 하면 다소 생소하게 느껴지지만 전통과 문화, 생태, 환경 등의 가치가 살아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말 그대로 ‘느리게 사는 삶’을 지향하는데, 패스트푸드에 반대해서 시작된 슬로푸드 운동의 정신을 확대하면서 만들어진 개념이다.

아직도 소로 논을 갈아 다랑논, 구들장논을 일구는 곳
서울에서 5시간 거리인 완도에서 또다시 배를 타고 45분을 더 들어가야 되는 먼 섬, 청산도. 이곳이 슬로시티로 지정된 것은 다랑논과 구들장논, 돌담, 해녀, 초분 등의 전통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는 점에서 높은 점수를 얻었기 때문이다. 청산도는 섬이면서도 어업과 함께 농사를 짓는 집들이 많고, 아예 농사만 짓는 집도 있다. 최첨단 농법이며 다양한 농기계를 동원하는 다른 지역과는 달리 이곳에서는 아직도 소를 이용해 논밭을 갈며 농사를 짓는다. 그래서 집집마다 한두 마리의 소를 기르고 있다. 농기계를 쓰고 싶어도 다랑논, 구들장논이 대부분이라 쉽지 않은 이유에서다.
다랑논은 가파른 산비탈에 계단식으로 만든 작은 논을 말하는데, 육지처럼 땅이 많지 않아 척박한 산비탈을 일구어야 하던 청산도 사람들의 애환이 녹아 있다. 구들장논도 흙이 부족한 환경 때문에 논바닥에 구들처럼 돌을 깔고 그 위에 흙을 부어 만든 논이다. 물이 아래쪽 논으로 내려가도록 구멍을 낸 것이 특징이다. 다랑논은 청산도 어디서나 쉽게 볼 수 있지만, 구들장논은 아쉽게도 거의 사라져서 양지마을에서만 볼 수 있다. 지금 청산도에 가면 다랑논과 구들장논에 푸른 보리와 마늘이 겨울 추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자라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봄이 되면 보리와 마늘의 키가 껑충 자라 섬이 온통 푸르다가 보리가 익는 5월에는 황금색으로 바뀌어 장관을 이룬다.
청산도에서 흔한 것이 또 있다면 돌담이다. 땅을 일구면서 나온 크고 작은 돌을 하나씩, 하나씩 쌓아올려 담장을 만들고 논이나 밭의 둑을 만들어놓았다. 역시 섬사람들의 고단한 삶의 흔적이지만, 이런 사정을 모르는 외지인들의 눈에는 아름답게만 보이는 풍경이다. 상서리에 있는 돌담길은 문화재로 지정되기도 했다. 초분(草墳)은 청산도 같은 섬 지역의 독특한 장례 풍습이다. 죽은 사람을 땅에 바로 묻지 않고 이엉으로 덮어두었다가 3년이 지나면 좋은 날을 골라서 남은 뼈를 추려 땅에 묻는 풍습이다. 교통이 나쁘다 보니 자식이 고기잡이에 나가 부모상을 치를 수 없을 때처럼 장례가 어려운 경우에 초분을 썼다. 현재는 초분을 거의 하지 않는 편이지만 전시용 초분이 마련돼 있고, 진짜 초분도 하나 남아 있다.
무엇보다 청산도에 가면 자연에 순응하며 살아온 사람들의 소박하고 유순한 심성에 놀라게 된다. 그리고 그 사실을 느끼는 순간 계산적으로 살아온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귀찮을 법도 한데 청산도에서는 모르는 사람이라도 그냥 지나치는 법이 없다. 한 대뿐인 버스를 놓치기라도 해서 터벅터벅 걸어야 하는 경우라면 경운기 정도는 어디서든 쉽게 얻어 탈 수 있다. 먼저 조금만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서면 더 활짝 마음을 열고 반갑게 맞아주는 사람들이다.

소박하면서 유순한 사람들, 그리고 그림 같은 풍경
한 박자 느리게 사는 섬사람들의 고운 심성만큼이나 청산도는 어디로 눈을 돌려도 아름답다. 그도 그럴 것이 청산도는 천혜의 경관을 자랑하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 속해 있다. 청산도를 둘러보려면 일주도로를 이용하는데 차로는 30분, 도보로는 4시간 정도 잡아야 한다. 중간에 있는 마을길까지 들어가 본다면 7시간 가까이 걸린다. 따라서 많이 걷기 힘들 때는 도착하자마자 바로 버스를 타고 신흥리까지 간 다음, 천천히 걸어오면서 주변을 둘러보는 것이 좋다. 이렇게 하면 2시간 정도면 된다. 그마저도 날씨가 나빠서 어렵다면 택시(모두 4륜 구동형 지프)를 타고 도로를 따라 섬을 둘러보는 방법도 있다(비용은 3만원).
먼저 페리호에서 내리는 도청항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있는 당리마을에 가보자. 이곳에는 영화 <서편제>에서 송화(오정해)와 유봉(김명곤)이 진도아리랑을 주고받으며 춤을 추던 장면을 촬영한 황톳길이 있다. 4~5월에 가면 양쪽으로 유채꽃이 쭉 펼쳐져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연출한다. 유봉이 엄한 꾸중으로 동호에게 소리를 가르치는 장면을 찍은 초가집도 마을 안에 있다. 지금은 사람은 살지 않고 영화 주인공 복장을 한 인형이 영화의 한 장면을 재현하고 있다. 당리마을에 있는 또 하나의 명소는 드라마 <봄의 왈츠> 세트장인 왈츠하우스. 당리의 돌담길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있다. 그동안은 둘러보는 것만 가능했는데, 이제는 예약자에 한해 숙식이 가능해졌다(숙박 문의 02-2279-5959). 왈츠하우스의 내부는 겉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깔끔하고 웬만한 펜션보다도 잘 꾸며져 있다. 창문을 열면 돌담길이며 청산항의 모습을 앉은자리에서 차분하게 감상할 수 있다.
왈츠하우스에서 드라마 <해신> 촬영지를 지나 화랑포를 한 바퀴 돌아보노라면 답답한 가슴이 확 트인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도 좋다. 그런 다음 읍리의 고인돌, 청룡공원 등을 보고 나서 보적산에 있는 범바위 전망대에 오르면 날씨가 좋은 날에는 멀리 제주도까지 보인다. 범바위 전망대는 해돋이와 해넘이를 감상하는 데도 제격이다. 해돋이는 ‘해뜨는 마을’로 알려진 진산리에서 봐도 좋다. 마을 입구에 ‘해뜨는 마을’이라는 표제석이 있어서 쉽게 알 수 있다. 이곳에 가면 갯돌이라고 부르는 돌밭이 60m 정도 길게 펼쳐져 있다. 범바위를 보고 나서 진산리에 가는 동안에는 청계리 사장터, 양지리의 구들장논, 상서리 돌담길, 신흥해수욕장, 지리해수욕장이 죽 이어진다. 이 중 지리해수욕장은 청산도에 있는 3개의 해수욕장 중에서도 인기가 많은 곳으로 2백 년 이상 된 소나무 숲이 있다. 해변가에는 드라마 <봄의 왈츠>에 나온 수호네 집이 있다. 작기는 해도 마당에 아기자기한 나무들이 심어져 있고, 바다가 손에 잡힐 듯이 지척에 있는 집이다.
정원이 아름다운 집으로는 도청리에 있는 양월화(81세) 할머니 댁도 가볼 만하다. 14년 전에 세상을 뜬 할아버지가 취미 삼아 분재와 수석으로 정원을 가꿔놓았는데, 지금은 할머니가 마치 자식처럼 돌보고 있다. 아들, 딸들이 다 도시에 나가 사는 터라 할머니는 사람들을 반기며 맞아주신다.

삼치·뿔소라 맛보고 겨울 낚시도 즐기고
식도락도 빼놓을 수 없다. 청산도에 가면 삐죽삐죽 뿔이 나 있는 뿔소라 맛을 보는 게 좋다. 섬에서는 ‘꾸죽’이라고 부른다. 다도해 청정해역에서 해조류를 먹고 자라는 전복 맛도 전국적으로 유명하다. 청산도를 포함한 완도에서 나는 전복이 전국 생산량의 80%를 차지한다. 입 안에서 살살 녹는 삼치회 맛도 보지 않으면 후회한다. 김 위에 올려 묵은지와 함께 싸서 먹는 맛이 그만이다. 햄버거나 피자 같은 패스트푸드만 찾던 아이들도 비리지 않고 부드러워서 잘 먹는다. 삼치에 굵은소금을 뿌려 구운 삼치구이도 집에서 먹는 것과는 다른 맛이다. 바로 잡은 삼치를 이용해 신선하기 때문이다.
도청항에는 식당이 여러 곳 있는데, 음식 맛 좋고 인심도 좋은 곳을 찾는다면 바다횟집이 좋다. 다니엘 헤니가 들른 집이란다. 청산도식당은 된장찌개만 시켜도 10가지가 넘는 밑반찬이 나와 군침을 삼키게 만든다. 또 부두식당은 해녀 일을 하는 아주머니에게 청해 물때가 맞는다면 물질 구경을 할 수 있어서 좋고, 아저씨가 배를 타고 나가서 직접 잡은 고기를 손님들에게 대접한다. 이외에도 섬을 일주하다 보면 군데군데 민박과 식당을 겸한 곳들이 눈에 뛴다. 가족 중에 낚시 마니아가 있다면 낚시 도구를 챙기는 것도 잊지 말자. 청산도 주변은 감성돔, 학꽁치 등 여러 어종이 풍부해서 겨울 바다낚시를 제대로 즐길 수 있다.
숙박을 할 계획이라면 민박이나 모텔을 이용하면 된다. 민박은 등대민박(061-552-8521), 한바다 민박(061-554-5035)이나 낚시인의 집(061-554-8018) 등을 포함해 20곳이 넘는다. 사실 청산도까지 가는 길은 멀고 불편하다. 완도에서 청산도까지 가는 배라도 자주 있으면 좋으련만 하루에 4회만 운항하는 탓에 시간을 잘 확인해야 한다(청산도 들어가는 첫 페리호는 오전 8시 10분, 청산도에서 나오는 배는 오전 6시 50분에 있다. 뱃삯은 어른 6천2백50원).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볼 만한 곳이다. 우리의 삶 자체가 긴 여정이라는 생각을 하고 떠난다면 ‘느림의 미덕’을 음미해볼 수 있지 않을까.

| 취재 : 송은숙 | 사진 : 지유정 | 자료제공 : 우먼센스 | www.ibestbaby.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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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스팟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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