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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능 보육원을 다녀와서”

박풍규 2009. 9. 10. 11:01

 

“혜능 보육원을 다녀와서”

 

 

  공무원으로 사회복지업무를 하기 시작하면서, 조그마한 관심을 갖고 실천을 하여볼 작정으로 나는 틈이 날 때마다 나의 거주지에서 가까운 영유아보육시설인 충북 혜능보육원을 찾곤 한 것이 벌써 만 10년이 넘어간다.

  지금으로부터 4년전 애들도 컸고 알만한 나이가 되어서 같이 가기로 하였다. 부모의 양육포기로 인하여 고아아닌 고아가 된 아이들 수용시설인 혜능보육원에 빨래 및 청소, 놀이 봉사를 가는 길에 당시 초등학교 1학년 딸과 2학년인 아들을 데리고 나섰다. 보육시설에 아이들을 데리고 봉사를 가는 것은 당시가 처음이었다.

  많은 누나와 형, 동생들을 만난다고 했더니 딸과 아들은 신난다며 기분 좋게 봉사를 따라 나섰다. 그날따라 파란 가을 하늘의 노란 햇살이 유난히 정겹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눈이 부시도록 환한 햇살이 너무 고마워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가을은 분명 아름다운 계절임에는 틀림이 없나 보다.

  아들, 딸의 손을 잡고 함께 봉사를 가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즐거운데 나의 봉사 길을 이렇게 아름다운 햇살로 환하게 비춰주니 말이다. 더욱이 혜능 보육원 정문 쪽은 그때나 지금이나 코스모스가 활짝 피었다.

  시설에 들어서자 미리 운동장에 나와 그네를 타거나 공놀이를 하며 기다리던 원생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오랫동안 기다렸다는 듯이 아이들은 나를 보자마자 토끼처럼 깡충깡충 뛰며 반가워한다.

  “엄마 오늘은 나하고 놀아야 해요!”

  “아니야! 전번에 나와 모래성을 만들기로 했어. 내가 먼저야”

  “우~~ 우~~”

  여러 가지 이유로 이곳 보육원에서 새로운 엄마와 아빠인 보육사들과 생활하고 있는 아이들이다. 한시도 입을 가만 두지 않고 참새처럼 재잘거리는 모습은 영락없는 천진난만한 아이들의 모습이다. 원생 중에 몇몇은 정신지체장애아도 있는데 정상적인 아이들과 놀이터에서 즐겁게 뛰어 노는 모습은 내 아이들과 전혀 다를 것이 없는 모습이다.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내 청소도구를 들고 현관 안으로 다람쥐처럼 달음질쳐 가는 아이들. 입을 벌린 채 침을 흘리며 계속 웃고 있는 정신지체장애아와 정상적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게 보이는 아이들이 모여 사는 곳이지만 운동, 공부, 각종 활동이 보통아이들의 생활과 전혀 다르지 않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 때 내 옷자락을 힘을 주어 세게 잡아당기는 손길이 있었다. 아! 옆에 있던 1학년 짜리 공주 종하의 손길이었다. 잔뜩 겁을 먹은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여 있었고, 금방이라도 소리 내어 울 것 같은 모습이었다.

  “엄마! 저애 이상해... 자꾸 나를 이상한 눈으로 쳐다봐. 나 무서워요. 집에 가요.”

  “여긴 무서운 곳이 아니야. 엄마는 이곳에 있는 형들과 누나들 함께 청소하고 놀고, 공부하고 밥먹을려고 자주 오는데 하나도 안 무서워. 얼마나 착하고 좋은 사람들인데... 그리고 저애는 너와 똑같은데 단지 몸이 아파서 그렇지 우리랑 똑같단다.”

  “싫어요! 우리랑 달라요! 이상해요!”

  혹시나 하는 마음에 이곳에 오기 며칠 전부터 아이들에게 혜능보육원에는 엄마 아빠가 없는 아이들이 선생님들과 즐겁게 생활하는 곳이고 약간 마음과 정신이 아픈 아이들도 있다고 여러 번 이야기를 해 주었었다. 2학년인 아들 종은이는 전혀 내색하지 않고 같이 놀고 먹고 청소하고 봉사가 끝날 때까지 보채지 않고 잘 하였다.

  하지만 말과 행동이 부자연스러운 장애인을 본 딸 종하는 잔뜩 겁을 먹고 떨고 있었다. 원생이 바라보는 딸 종하는 손이 아플 정도로 내 손을 꼭 잡고 울먹였다.

  “빨리 집에 가요. 무서워요! 다시 않 오고 싶어!”

  그 때 옆에 있던 장애우가 딸의 등을 살짝 건드렸다. 그 아이에게는 그것이 그러지 말라고 친근감을 표현하는 행동이었건만 급기야 딸은 이내 소리 내어 엉엉 울어 버리고 말았다.

  정신지체장애아들도 우리와 똑같은 사람인데 두려움에 떨며 우는 딸의 모습을 보니 너무 가슴이 아팠다. 우는 딸의 모습을 보던 장애아는 자신이 무슨 잘못이라도 한 것처럼 불안한 눈빛으로 침묵을 지켰다.

  몸과 마음이 불편한 것 보다 사람들이 따가운 시선과 냉대를 더 힘겨워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이 장애인들이다.    자원봉사를 하며 장애아를 포함한 어느 아이들에게도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며 산다고 나 스스로를 위안하던 마음이 딸 종하의 행동으로 무거워졌다.

  보통 사람들이 장애우를 보며 취하는 행동이며 감정들은 내 딸이라도 다를 것은 없었다. 내 아이가 내게 보여준 모습은 평소 장애우를 대하는 우리들의 모습이었다.

  자원봉사를 시작하기 전의 내 모습들을 돌아보았다. 길에서 장애인을 보면 순간적인 동정과 ‘불편해서 어떻게 살까? 불쌍하다! 나는 장애인이 아니니 그 얼마나 다행인가?’ 안도의 한숨을 쉬며 돌아서던 모습이 클로즈업 되어 왔다. 그리고 그들에게 안타까운 시선을 보내며 얼른 돌아서 바로 잊곤 하였다.

  자원봉사를 계기로 장애인들이 결코 우리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고, 장애아를 만나고 함께 보내는 시간 속에서 비로소 높이 쌓여져 있던 편견의 벽을 허물 수 있었다. 직접 체험하고, 느끼지 않고서는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소외된 곳의 또 다른 삶. 내가 그들과의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지금까지 그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조금이나마 그들을 이해할 수 있었던 자원봉사 덕분이다.

  나의 작은 봉사는 아직은 부족하기 그지없지만 그들은 불편한 몸과 마음을 가졌을 뿐 우리와 똑같은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기에 그들의 힘겨운 삶에 조금이나마 힘을 실어 주기 위한 작은 행동이리라.

두려움 속에서 울던 딸 종하를 다독여서 4년동안 열심히 데리고 다닌 결과 이제는 스스럼없이 함께 놀고 부딪치고, 청소하고, 놀이를 하니, 장애아와도 아주 친하여졌고, 더욱이 엄마아빠에게 버림받은 다른 아이들과는 오빠! 동생하는 사이가 되었다.

  아이의 변화에 놀라면서, 그렇게 무섭다던 딸이 어떻게 이렇게 변했는가를 곰곰이 생각하게 되면서, 영국의 사회심리학자 ‘마이클 아자일’의 연구에서 의미를 찾아볼 수 있었다. 그의 연구에 의하면 어떤 여가활동도 자원봉사 이상의 재미를 불러오지 못한다고 한다. 이를테면 자원봉사는 골프나 테니스, 쇼핑이나 텔레비전 보기 이상의 즐거움과 희열을 만끽한다고 한다. 봉사가 운동과 오락과 놀이 이상의 재미를 안겨주는 것은 거기에 보람이 따르기 때문일 것이다.

  자원봉사라는 의미를 다시 되새기면서, 세상에는 내가 낳은 아이를 자기 자신의 영달만을 위해 서슴없이 버리는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은, 비록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지만 두 눈이 보이지 않는 어린 아들을 오로지 사랑 하나만을 가지고 키우는 훌륭한 아버지도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며 이러한 아버지들이 많은 세상이 더욱 살기 좋은 세상이 될 것이라 생각된다.

  혜능보육원을 찾을 때마다, 눈망울이 초롱초롱한 아이들을 볼 때마다, 누가 왜 이러한 천사들을 어떻게 버렸을까 생각하면서 슬퍼질 때가 많았던 날이 많다.

  이러한 우리나라의 영유아 보육시설이 필요없어지는 날까지, 우리는 보육원에 있는 건강한 아이들, 아니 건강하지 못한 아이들도 우리의 아들, 딸과 똑같다는 것을 인식하고 나부터 편견없는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여 본다.

  그리고 우리 모두 누구나가 하루라도 시간을 내어 방문하여 함께 놀고 운동하고 배우고 사귄다면 보육원의 아들, 딸이 나의 아들, 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오늘도 파란 가을 하늘이 더욱 파랗고 드높다. 하늘이 내려주는 햇빛이 누구에게나 아름답듯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누구나 파란 마음과 행복한 마음을 지닐 수 있도록 우리 모두 서로 서로의 이웃에게 조그만 나의 힘을 보태보자.

(이 글은 사회복지공무원인 저의 집사람의 글을 올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