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에서 공부한 적은 없지만 영어만큼은 누구보다 자신 있어요."
올해 서울대 법대에 진학하는 윤현수군(19·서울고 3)은 영어를 비롯한 각종 경시대회 성적으로 수시모집 특기자 전형에 합격할 수 있었다.
전형 당시 윤군이 서울대에 제출한 텝스(TEPS) 성적은 990점 만점에 958점. 이 점수는 최상위 등급인 ‘1+급’으로 분류되며 영어 실력이 상위 1%에 드는 굉장한 실력이다.
특히 텝스라는 시험이 서울대 언어교육원이 영어의사소통 능력을 측정하기 위해 개발한 영어능력시험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듣기와 말하기, 읽기, 쓰기 등 영어의 모든 영역을 잘하지 못하면 얻기 힘든 성적이다.
하지만 윤군은 흔히 말하는 조기 유학파가 아니다. 유학은커녕 외국에 나간 경험이라고는 초등학교 6학년 때 일주일간 미국에 여행을 다녀온 것이 전부다. 여행도 영어경시대회에 나가 대상으로 받은 상품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영어를 좋아해서 혼자 공부를 많이 했어요. 주위에 조기 유학을 다녀온 친구는 많았지만 저도 영어공부를 많이 했기 때문에 그들만큼은 할 수 있다는 자신이 있었죠."
윤군이 이처럼 조기유학생 못지않은 영어실력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은 어렸을 때부터 듣기와 말하기 위주로 공부했기 때문이다.
윤군의 부모님은 윤군이 초등학교 1학년부터 6학년이 될 때까지 매일 아침에 일어날 때와 저녁에 잠들기 전에 영어테이프를 틀어주었다. 내용은 영어권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유아프로그램으로 내용 자체가 어렵지 않아 윤군도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윤군은 “테이프의 내용이 재미있어서 계속 듣다 보니 언제부턴가 테이프의 내용을 따라서 말할 수 있게 됐다"며 “제가 학년이 올라가면서 부모님이 점점 테이프의 수준을 올려 지루하지 않게 해주신 것도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윤군이 영어에 관심을 보이자 윤군의 부모는 영어회화 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기존의 문법과 독해 위주의 영어교육법을 고수하는 사람이 많지만, 언어교육의 기본은 듣기와 말하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윤군은 초등학교 3학년 영어회화학원에 다니게 됐다. 그런데 그 학원 수강생은 대부분 조기 유학을 다녀온 학생들이었다. 유학 당시 배웠던 영어를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 조기 유학생을 대상으로 개설한 반에 윤군이 들어가게 된 것이다. 영어를 잘하는 친구들 사이에 있으면 주눅이 들만도 한데, 윤군은 그런 적이 없었다.
“워낙 영어를 잘하는 친구들이 많아 처음 3개월 정도는 듣기만 하고 아무 말도 못했어요. 그래도 친구와 선생님이 하는 말은 다 알아들을 수 있어서 재미있게 다녔어요. 그러다 보니 어느 순간부터 제가 영어로 말을 하고 있더라고요."
그렇다고 윤군의 영어실력이 듣기와 말하기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윤군의 실력은 초등학교 4학년 때부터 시작한 받아쓰기에서 많이 향상됐다. 당시 윤군의 어머니는 영어공부를 하기 위해 이익훈어학원에서 AP뉴스 받아쓰기 교재를 사왔다. 어머니가 영어 받아쓰기를 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던 윤군은 “재밌어 보이는데 나도 해보면 안 돼요?"라고 했다가 덩달아 받아쓰기를 시작한 것이다.
윤군은 받아쓰기를 다 한 뒤 학원에 제출하면 다음달 교재와 테이프가 공짜로 배달된다는 사실을 알고 더욱 재미를 붙였다. 그때부터 시작한 영어 받아쓰기는 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계속돼 윤군이 기초 영어 단어와 문장을 습득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윤군이 조기유학생 못지않은 영어실력을 갖춘 또 하나의 비결은 독서였다. 작년에는 입시준비 때문에 책을 많이 읽지 못했지만, 그 전에는 적어도 일주일에 한 권 이상 반드시 읽었다.
이런 습관은 영어책에도 고스란히 이어져 최근에는 헤밍웨이의 ‘무기여 잘 있거라’ ‘태양은 또다시 떠오른다’ 등의 작품을 읽었다. 책을 워낙 좋아해 자연스럽게 영어로 된 원서를 읽는 습관을 들이게 된 것이고, 이 때문에 단순한 영어지식이 아니라 영어권 국가의 문화에 대한 폭넓은 지식까지 쌓을 수 있었다.
유학생 못지않은 영어실력과 풍부한 독서경험을 갖춘 윤군은 대학에 입학한 뒤 이를 바탕으로 자신의 꿈을 이뤄 나갈 계획에 마음이 부풀어 있다.
“법학과로 진로를 정하기는 했지만 영어나 경제학에도 관심이 많아요. 법학과에 진학한 후에도 그런 학문을 꾸준히 공부할 겁니다. 그래서 영어와 법학, 경제학을 모두 활용할 수 있는 통상문제 전문 국제변호사가 꼭 되고 싶어요."
글·사진=조풍연 기자 jay24@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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