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우리음악

[스크랩] 잉웅균/표정

박풍규 2006. 9. 2. 10:31


표정 / 임웅균

나뭇잎이 떨어져 거리에 쌓이는데 
그대 떠난 거리에 세월이 쌓이는데
스쳐버린 추억들 오늘도 잊지못해 
서성이는 발길에 흐느끼는 나뭇잎

낙엽이 곱던 날 계절을 따라 가다 왔다 
아픈 상처만 남겨 놓고 떠나버린 내사랑아
뜻 모를 눈빛으로 조용히 돌아서던 
그날의 그 표정이 마지막 인사였나

낙엽이 곱던 날 계절을 따라 가다 왔다
아픈 상처만 남겨 놓고 떠나버린 내사랑아
뜻모를 눈빛으로 조용히 돌아서던 
그날의 그 표정이 마지막 인사였나
마지막 인사였나 
목소리를 들어보면 그 사람의 영혼을 이해할 수 있다고 했던가.
환한 미소와 재치있는 입담, 맑고 순수한 영혼이 배어있는 그의 목소리에서 대중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국민 성악가의 또다른 면모를 발견한다.혹독하게 가난했던 유년시절,
고난의 연속이었던 이탈리아 유학시절을 거쳐 한국최고의 테너로 거듭나기까지 그가 싸워야
했던 것은 다름 아닌 바로 그 자신이었다.
'자기의 생각을 올바르게 지키면서 많은 사람들에게 건강함을 줄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예술가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그는 길고도 고단한 항해를 해 온 것이다.

12살, 음악과의 운명적 만남

"원래 성악에 대한 호기심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일기 시작했죠.
뚝섬에서 살았는데 뚝길 옆 작은 독서실의 원장 선생이 노래를 너무 잘하던 사람이었어요.
6시 이후만 되면 가곡을 부르고 이태리 노래도 부르면서 다니는 게 어린 내겐 신기하게
보였던 거죠. 노래에 대한 관심이 그때부터 생겼던 것 같아요. 하지만 목소리가 크다고
선생님께 뺨을 얻어맞기도 했으니 그때는 재능을 알아 주는 사람이 없었죠.
헌데 중학교 2학년 때 이송매 선생님을 만나면서부터 인생이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내게 '성악을 하지 않으면 안 될 기가 막히게 좋은 목소리를 지녔다'고 칭찬해 주셨죠.
자신감이 붙기 시작했어요. 학교에서 집까지 가는 길이 3~4km 정도 됐었는데 '내 고향으로
날 보내주', '보리밭' 같은 가곡들을 혼자 부르고 다녔죠. 원래는 군인이 되고 싶었는데
말이에요."
테너 임웅균 교수는 1955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학교 음악대학을 수석 입학했고 수석
졸업했다. 이탈리아의 로마 산타첼리아 음악원을 수학했고 오지모 아카데미를 졸업했다.
1985년 귀국 후 지금까지 1,200여 회의 기록적인 수많은 공연을 통해 국민의 폭넓은 사랑을
받는 클래식계에서 보기 드문 국민 성악가로 우뚝 섰다. 또한 오페라 활동에도 남다른
탁월성을 보였는데 '사랑의 묘약', '심청전', '라트라비아타', '리골레토' 등에서 뛰어난 기량을
발휘했다. 이탈리아 벨칸토 창법의 정수로서 광범위한 노래의 영역을 소화하고 있고 '
드라마틱'과 '리리코' '메싸디 보체'의 발성법 구사는 가히 세계적으로도 보기 드문 성악가라는
극찬을 받고 있다. 그러나 그가 쌓은 탑은 단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었다.

고난의 연속이였던 이태리 유학 시절

유학 전 고등학교 음악 선생님이었던 그는 유학을 결정하면서 결혼을 결심하고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 저는요, 제가 키가 작으니까 키 큰 여자, 제가 피아노를 못 치니까
피아노를 잘 치는 여자, 제가 못 생겼으니까 예쁜 여자를 만나게 해 주세요.'
그 소원은 그대로 이루어졌다. 반석교회에서 성가대 지휘를 하면서 반주를 하던 아름다운
아내를 만나게 된 것이다.
"아내는 최고의 비평가이자 최고의 친구인 동시에 최고의 적이랍니다. 늘 아내에게 고마운
마음이 끊이질 않죠. 가장 행복한 순간 역시 아내가 제 걱정을 해 줄 때랍니다. 그런 아내와
결혼해서 이탈리아 유학을 떠났죠. 유학생활은 한마디로 고난과 최악의 날이었어요.
쌀 살 돈이 없어서 굶었다고 하면 누가 믿겠어요. 그 시절 저희 부부가 그랬어요.
그래서 저는 명지대 총장께 편지를 썼죠. 그분과 저는 일면식도 없었고 그저 아버지가
명지고 교사이셨다는 것과 제가 명지고를 나왔다는 것을 소개하고 감히 장학금을 부탁
드렸던 거죠.
기적적으로 1년 동안 매달 25만원씩 장학금을 보내주겠다는 답신을 받게 되었어요.
그 25만원은 유학생활의 젖줄이었죠. 월세에 피아노 임대료, 책 구입비를 충당하고 나면
남는 돈은 7만원 정도. 그 돈으로 생활비를 충당했으니까요."
빠듯한 생활에 허덕이는 유학생활은 지속됐다. 하지만 그에겐 아내가 있었고, 꿈이 있었고
열정이 있었다. 쌀이 떨어진 것을 모르고 수제비만 끊여주는 아내를 원망하기도 했다.
그렇게 혹독했지만 그는 꿈을 향해 달려가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1984년 9월 결혼 예물
시계를 시계방에 맡기고 얻은 20만 리라만 가지고 콩쿠르가 열리는 만토바로 떠났다.
그곳에서 2등을 했다. 1985년 5월에는 부셰토에서 열린 베르디 콩쿠르에 참가해 한국인
최초로 결승까지 올랐다. 그는 비로소 정상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성큼 내딛기 시작한 것이다.
문화를 살리고자하는 그의 노력

"정신문화가 무너져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조선조 성리학의 대가들이나 정계에 진출했던
선비들은 시, 문학, 음악에 두루 능했던 자들이었죠. 예를 알았던 분들이었어요.
하지만 지금 우리나라 어떻습니까? 어두운 일면들이 많습니다. 우리는 우리 것을 잃어가고
있어요. 우리는 혼돈 속에서 아무런 좌표도 없이 진정한 문화가 없는 생활 속에서 혼란을
겪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나라가 문화국가로서 바로 서야 합니다.
자기주장을 확실히 내세울 수 있는 사람들이 왜 침묵을 지키고 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 사회문화가 그런것 같습니다. 조선 순조 때 가포 임상옥이란 분이 하신 말씀이 있어요.
'장사는 돈을 남기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는 것이다.' 역사가 없고 민족의식이 없는
상황에서 돈만 벌어 남기면 뭐하겠습니까. 또한 경제가 바로 서야 문화도 함께 부흥하게
되는 것입니다. 건강한 능력을 가진 인재가 문화를 이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미래의 문화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일이나 어린이와 청소년에 대한
전문적인 뒷받침에는 너무나 인색한 것 같습니다."

그는 지난 6월 25일 미국 LA에서 청소년들의 바른 성장 환경 조성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미국 대통령상 금상을 수상했다. 임교수가 어린이들을 위해 펼치는 대표적인 사업 중에는
'사랑의 공책 보내기 운동'이 있다. 유명 인사들과 연예인들의 캐리커처와 메시지가 담긴
공책 5만부를 소년 소녀 가장이나 결식아동들에게 보내주며 용기를 북돋아 주는 행사다.
또한, 그는 매년 어린이날에 '파란마음 하얀마음' 축제를 열어 심장병 등 난치병을 앓고 있는
어린이와 가족들을 위로해 왔다. 지금도 그는 70여 개의 시민·사회·청소년 단체들을 중심으로
발족한 학교폭력대책회의국민협회의 공동대표를 맡아 소외 청소년과 어린이를 위한 지원
활동을 쉬지 않고 있다.
 
꿈을 지닌 순수한 음악가

어린이를 사랑하는 자상하고 따뜻한 부모의 심정. 그가 지닌 것은 삶에 대한 사려 깊은
사유였다. 그 사유를 위해 지금껏 달려왔고 실천해 왔고 한걸음 한걸음씩 나아가고 있다.
최고의 음악인으로서 정상에 섰지만, 따스한 온정으로 주위를 돌볼 줄 알며, 온화한 부모가
되기 위한 노력을 오늘도 쉬지 않는다.
그가 생각하는 가장 행복한 장면이 있단다. 아내는 피아노를 연주하고 첫째 딸은 바이올린을
둘째 딸은 클라리넷을 자신은 노래를 하는 장면이 담긴 가족사진 한 장. 그것도 음악으로써
하모니를 이루는 것. '무슨 돈과 권력과 명예가 필요한가'라는 반문을 하며 환하게 미소 짓는
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으로 살아간다는 임 교수. 열정이 없는 자신은 상상도 못
한다고 말한다.

인터뷰를 하던 날은 하늘이 푸르렀다. 그리고 오랫동안 그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긴 이야기 속에는 그의 삶이 녹아 있었고 그의 열정이 분출했으며 그의 미래에 대한 희망이
샘솟고 있었다. 어딘지 모르게 아득해져만 가는 기억들이 있었고 그 기억의 정점에서
부여잡고 싶은, 소리내어 울고 싶은 아픔도 있었다. 그 기억의 언저리엔 아픈 상처의 흔적이
묻어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는 그 혼돈과 방황과 가난과 고통을 짐짓 견뎌냈으며 뜨거운 열정으로 노래했다.
그와 인터뷰를 하고 있는 곳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아이들이 웃는다. 그가 웃는다.
그리고 나도 웃는다. 그의 꿈이 사랑스러워서, 그의 열정이 고귀해서, 그의 희망이 값지기
때문에.

출처 : ♡。좋은하루‥… 。
글쓴이 : 여우랑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