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리고 떠난다는 것 ___________
< 법정 스님 >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자기가 살던 집을
훌쩍 나오라는 소리가 아니다.
낡은 생각에서
낡은 생활 습관에서 떨치고 나오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고 눌러 앉아서
세상 흐름대로 따르다 보면
자기 빛깔도
없어지고 자기 삶도 없어진다.
자주적으로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니고
남의 장단에 의해서
마치 어떤 흐름에 의해서
삶에 표류당하는 것처럼 되어 버린다.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곧 자기답게 사는 것이다.
자기답게
거듭거듭 시작하며 사는 일이다.
낡은 탈로부터
낡은 울타리로부터
낡은 생각으로부터
벗어나야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생명은 늘 새롭다.
생명은 늘 흐르는 강물처럼 새롭다.
그런데 틀에 갇히면
늪에 갇히면
그것이 상하고 만다.
거듭거듭 둘레에 에워싼
제방을 무너뜨리고라도
늘 흐르는 쪽으로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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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기술 습득하기 ___________
< 법정 스님 >
먼저 남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사람은 저마다 단 하나뿐인 독창적인 존재입니다.
똑같은 사람은 없습니다.
설령 쌍둥이라 하더라도 다릅니다.
누구나 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없는 귀한 존재입니다.
그런데 왜 남과 비교합니까? 남과 비교해선 안 됩니다.
자기 자신답게 살 수 있어야 합니다.
또 무엇이든 마음에 든다고 해서
그 자리에서 성급하게 움켜잡지 마십시오.
움켜잡기보다는 쓰다듬을 줄 알아야 합니다.
목표를 향해 곧바로 직행하기보다는
먼 길로 돌아가는 여유가 필요합니다.
무슨 일이든지 그 자리에서 해답을 구하려 하지 마십시오.
시간을 갖고 뜸을 들이는 과정을 통해 인간은 성숙해집니다.
또 오래된 것을 아름답게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세월의 무게를 지닌
낡은 것에 대한 가치를 음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꼭 필요한 것만을
그것도 최소한으로 갖고
소중하게 아끼고 사랑해야 합니다.
이와 같은 생각은 결코 낡고 소극적인 생활 태도가 아닙니다.
이러한 생활 태도는
오늘날 지구 생태계의 위기 앞에서
새로운 뜻을 담고 있는 삶의 철학이자 생태윤리입니다.
우리가 어떤 마음과 생각을 가졌는가?
또 그것을 어떻게 표현했는가?
그것들은
그 순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결과를 낳는 씨앗이 됩니다.
순간순간 우리들이 갖는 생각과 염원은
우주에서 두고두고 진동한다고 합니다.
명상가들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들이 남을 미워하든 사랑하든
그 생각은 우주 공간에서
하나의 파동으로 두고두고 진동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가 지금 한 말이나
생각에는 책임이 따른다는 뜻입니다.
가끔 기도를 하십시오.
어떤 공간이 되었든 가끔 기도를 해야 합니다.
기도처럼 간절한 소망은 없습니다.
기도는 삶을 재충전하는 작업입니다.
기도할 때 마음이 얼마나 간절합니까?
기도는 자기 삶을 재충전하기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가치의식이 뒤바뀌고
사람이 설 자리가 없는 이런 험난한 세상에서
각자 자신의 처지와 분수에 맞는 원을 세워야 합니다.
그 원의 힘이 우리를 삶의 목표로 다가서게 합니다.
추상적이고 막연한 원보다는 구체적인 원을 세우십시오.
세운 원은 반드시 언젠가는 이루어집니다.
원을 지닌 사람은 그 어떤 역경에서도 꺾이지 않습니다.
그 원의 힘으로 딛고 일어섭니다.
하루라는 것이 우리 생애 가운데 얼마나 귀중한 날입니까?
그 하루를 건너뛰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그 시간을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
생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습니다.
깨어 있는 사람에게는 삶이 늘 새롭습니다.
하루하루가 늘 새로운 날입니다.
기도는 우리 인간에게 주어진 최후의 자산입니다.
사람의 이성과 지능으로 어떻게 할 수 없을 때
간절한 기도가 우리를 구원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시간의 잔고에는 늙음과 젊음이 따로 없습니다.
한번 지나간 시간은 다시 되돌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순간순간을 헛되이 보내지 마십시오.
하루하루 충만한 삶이 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스스로 자기 삶을 다져야 합니다.
어디에도 매이지 말고 자유롭게 사십시오.
소비자거래의 명심보감 10가지 ___________
상품 구매 후 예기치 않은 피해를 입고 고통을 호소하는 소비자의 안타까운 모습은 인터넷이나 언론을 통해 끊임없이 소개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그 원인이 당사자에 있기 보다는 소비자거래의 구조적 속성에 기인하는 점이 많다. 즉, 막상 1 : 1 계약 단계에서는 아무래도 소비자의 입장이 취약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점을 감안하여 국가에서 소비자를 계몽하고 악덕 사업자의 부당행위를 사전 규제하는 시책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피해를 입어 본 소비자들은 국가시책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자연스럽게 피해예방 정보의 중요성을 알게 되고 스스로 피해예방 정보를 찾고 공유하는 사례가 많아지고 있다.
실제로 소비자 간의 정보공유와 활용이 실질적인 대안으로 그 역할이 발휘된 사례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다행히도 최근 인터넷을 이용할 경우 피해예방 정보의 신속한 공유가 용이해 졌다. 이러한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시장 발전에도 도움이 된다. 이러한 공유시스템 구축에 소비자 모두 적극적인 동참이 있기를 바란다.
소비자 개인적인 피해사례도 다른 소비자에게는 소중한 정보가 됨을 잊지 말자. 오늘은 소비자거래 가운데에서도 계약 단계에서 알아두면 좋을 일반적인 주의항목을 공유해 본다.
첫째, 사업자가 이익 없이 거래하지 않음을 명심하라.
공짜, 무료, 반값, 부도로 인한 눈물의 땡 처리, 폐업 원가처분, 기절초풍할 가격 등 이익이 없음 강조하는 선전 문구는 소비자가 알 지 못하는 피해가 숨어 있는 경우가 많다. 시장에서의 거래기술은 사업자가 ‘짱’ 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둘째, 사업자와 흥정능력을 겨룰 수 없음을 명심하라.
원가정보, 짝퉁정보, 유통정보, 재고상품정보, B품 정보 등 이 모든 정보를 사업자가 독점하고 있기 때문에 계약 단계에서 즉흥적인 질문 방식으로 정보를 얻어 흥정능력을 겨루는 것은 항상 위험하다. 사업자가 주는 일방적인 정보는 참고로 하되 사업자의 평소 평판을 보다 많이 알고 나서 계약하는 것이 현명하다.
셋째, 계약할 때와 이후의 사업자가 다름을 명심하라.
화장실 가기 전과 다녀 온 후가 다르다는 속담이 있듯이, 계약에서도 동일한 현상이 적용됨을 유의해야 된다. 계약할 때의 사업자의 모습을 보고 거래하기보다 계약 후의 사업자 모습이 어떠할 지 예상해 보고 계약하는 것이 중요하다.
넷째, 거래조건이 명확하지 않으면 위험함을 명심하라.
사업자가 제시하는 거래조건이 일관성이 없거나 소비자가 물어 볼 때마다 조건이 변경되는 경우 계약을 서둘러서는 안 된다. 특히, 판매원 스스로도 거래조건을 정확히 숙지하지 못하고 있는 경우에는 계약을 늦추는 것이 순리이다.
다섯째, 소매를 붙잡는 사업자와 거래하면 위험함을 명심하라.
설문조사, 캐치세일, 스팸문자, 스팸메일, 전화, 집이나 직장 방문 등 가만히 있는 소비자에게 접근하여 상품을 사도록 붙잡는 사업자와의 거래는 특히 주의해야 한다. 누구나 초면에 거래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듣기 좋은 말만 하고 소비자에게 불리한 정보는 숨기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여섯째, 사업자평판을 모르고 계약하지 않도록 명심하라.
정상적인 시장이라면 동종의 사업자가 다수 있게 마련이다. 이들 사업자에 대한 비교 정보 없이 한 회사의 판매원 설명만 믿고 거래하는 경우 피해를 입기 쉽다. 피해를 입지 않았다 치더라도 비싼 가격이나 저급 품질로 후회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일곱째, 판매원 설명만 믿고 거래하면 위험함을 명심하라.
사업자의 설명은 많이 듣되 반드시 확인하고 이해해야 하며, 시간 관계상 사실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경우에는 계약서에 판매원의 설명 내용을 적어 분쟁의 소지를 없애야 한다. 만일 작성을 회피하면 거래를 유보해야 한다.
여덟째, 계약할 때가 요구조건을 반영할 기회임을 명심하라.
소비자의 요구사항이 다소 까다롭다 할지라도 계약 전에는 사업자가 수용할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부당하거나 불리한 거래조건의 수정 요구나, 약관에 있어야 할 내용이 없어 추가 할 사항이 있다면 계약 할 때가 최
새 짐을 만들지 말라 ___________
< 증일아함경 >
마음이 탐욕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중생들이 무거운 짐을 지게 된다.
새 짐을 만들지 말라.
탐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한
무거운 짐을 벗을 수는 없다.
짐을 지는 것은
세상 사람들의 병이요
짐을 벗어버리는 것은 최상의 즐거움이니
무거운 짐을 버릴지언정 새 짐을 만들지 말라.
인생(人生) 예찬 ___________
< 롱펠로우의 인생예찬 >
삶에 대한
가치관이 우뚝 서 있어도
때로는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가슴에 품어온 이루고 싶은 소망들을
때로는 포기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긍정적이고
밝은 생각으로 하루를 살다가도
때로는 모든 것들이
부정적으로 보일 때가 있습니다.
완벽을 추구하며 세심하게 살피는
나날 중에도 때로는 건성으로
지나치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정직함과 곧고 바름을 강조하면서도
때로는 양심에 걸리는 행동을 할 때가 있습니다.
포근한 햇살이 곳곳에 퍼져 있는
어느 날에도마음에서는 심한
빗줄기가 내릴 때가 있습니다.
따스한 사람들 틈에서
호흡하고 있는 순간에도 문득
심한 소외감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행복만이 가득할 것 같은
특별한 날에도 홀로 지내며
소리 없이 울고싶은 날이 있습니다.
재미난 영화를 보며 소리내며 웃다가도
웃음 끝에 스며드는 허탈감에
우울해질 때가 있습니다.
자아 도취에 빠져 스스로에 만족함 중에도
자신의 부족함이 한없이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호흡이 곤란할 정도로
할 일이 쌓여 있는 날에도
머리로 생각할 뿐
가만히 보고만 있을 때가 있습니다.
내일의 할 일은 잊어버리고
오늘만을 보며 술에 취한 흔들리는 세상을
보고픈 날이 있습니다.
늘 한결 같기를 바라지만
때때로 찾아오는 변화에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한 모습만 보인다고 하여
그것만을 보고 판단하지 마십시요.
흔들린다고 하여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지 마십시요.
사람의 마음이 늘 고요 하다면
그 모습 뒤에는 분명 숨겨져 있는
보이지 않는거짓이 있을 것입니다.
가끔은 흔들려 보며
때로는 모든 것들을 놓아봅니다.
그러한 과정 뒤에 오는
소중한 깨달음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시 희망을 품는 시간들입니다.
다시 시작하는 시간들 안에는
새로운 비상이 있습니다.
흔들림 또한
사람이 살아가는 한 모습입니다.
적당한 소리를 내며 살아야
사람다운 사람이 아닐까요?
그대의 정원 ___________
< 까르비 >
꽃을 보러
정원으로 가지 말라
그대 몸 안에
꽃이 만발한 정원이 있다
거기 꽃 한 송이가
수천 개의 꽃잎을 안고 있다
그 수천 개의 꽃잎 위에 앉아라
수천 개의 그 꽃잎 위에 앉아서
정원 안팍으로 가득 피어 있는
그 아름다움을 보아라.
진실로 자기를 사랑하거든 ___________
< 법집요송경(法集要誦經) >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사랑이 있는 곳에 걱정이 생기고
사랑이 있는 곳에 두려움도 생기나니
사랑도 즐거움도 마음에 두지 않으면
무엇을 걱정하고 무엇을 두려워 하랴.
사랑하는 사람을 만들지 말고
미워하는 사람도 만들지 말라.
사랑하는 사람은 못 만나서 괴롭고
미워하는 사람은 만나서 괴로우니
근심과 걱정 속에 착한 마음 사라진다.
진실로 자기를 사랑하거든
국경의 성문을 굳건히 지키듯
자기를 단속하여 악에 물들지 않게 하라.
남의 목숨을 내 목숨처럼 여겨
남들을 함부로 해치지 말라.
모든 생명은 죽음과 매질을 두려워하느니라.
한 생각 ___________
< 법정 스님 >
우리가 몸으로 움직이는
동작과 입으로 하는 말과 마음으로 하는 생각 모두가 업이 된다.
업이라는 것은 하나의 행위이다.
좋은 업을 쌓으면 곧 좋은 행동과
좋은 말씨와 좋은 생각을 가지면 좋은 결과가 얻어진다.
좋지 않은 행동이나
말이나 생각을 지니면 어두운 업을 짓게 된다.
이것이 자주 되풀이되다 보면 거기에 힘이 생긴다.
그것을 업력業力이라고 한다. 또는 업장業障이 되는 것이다.
업력이 커지면 이성의 힘으로써
도저히 억제할 수 없는 그런 관성 법칙 같은 것이 생겨난다.
내 힘으로 억제할 수 없는
자제할 수 없는 그런 힘을 갖게 되는 것이다.
업력이라는 것 업장이라는 것이 그렇다.
우리가 수도하고 또는 수행하는 것은 무엇인가.
업을 맑히는 일이다.
흔히 번뇌를 끊는다거나 욕망을 끊는다고 말한다.
그것은 끊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욕망을 끊는다.
번뇌를 끊는다.
말로는 끊을 수 있을 것 같지만 끊을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단지 질적인 변화가 있을 뿐이다.
말하자면 에너지의 전환이다.
업의 전환이다.
탐욕으로 흐르는 일을 베푸는 일로 전환하는 것이다.
또 남을 미워하고
화내는 에너지는 연민의 정과 자비심으로 전환될 수 있다.
내 마음이 지극히 맑고 청순하고 평온할 때 중심이 잡힌다.
내 중심이 잡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온전한 내 마음을 지니게 되는 것이다.
중심이 잡히지 않을 때는 늘 흔들린다.
정서가 불안정하다는 것은 중심이 잡히지 않은 것이다.
어느 쪽으로 기울고 있음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음에 없는 일도 저지르게 되고
불쑥불쑥 어떤 충동에 우리가 휘말리게 되는 것이다.
이 '불쑥'이라는 한 생각이
천당도 만들고 지옥도 만든다.
따라서 한 생각을 어떻게 갖는가 이것이 갈림길이다.
떠남의 의미 ___________
< 법정 스님 >
사람들은 곧잘 내게
왜 스님이 됐는가? 하고 묻는다.
신부들과 수녀들도 곧잘 이런 질문을 받을 것이다.
그 질문을 받을 때마다
나는 세상이 무상해서
중생을 구하기 위해서
생사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라고 결코 말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런 뜻에서 출가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나대로 살고 싶어서
내식대로 살고 싶어서 출가를 했다.
자기식대로 사는 것
나대로 사는 것을 위해서다.
그것이 세상의 윤리권 밖에서
제멋대로 사는 것이 아님은 물론이다.
그만큼 무거운 짐이 내게 주어진 것이다.
어떤 출가의 경우라도
그것은 스스로 선택한 길이다.
선택 당한 길이 아니고 선택한 길이다.
적어도 자살에 비길 만큼
철저한 자기 부정을 거쳐 선택한 길이다.
무엇에 대한 부정인가.
비본질적인 것에 대한 부정이다.
철저한 부정 없이
긍정에 도달하기는 어렵다.
철저한 절망을 통해서
자기 부정을 통해서
인간은 거듭날 수 있고 삶을 재구성할 수 있다.
따라서 종교적 세계에서는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일 수가 없다.
오히려 절망은 거듭날 수 있는 계기이고
자기 인생을 재구성하기 위한 진통이다.
종교적 체험은
자기 부정을 통해서 얻어지는 대긍정에 그 의미가 있다.
떠난다는 것은 소극적인 도피가 아니라
보다 높은 이상을 위한 적극적인 추구이다.
자기 본심대로 살라 ___________
< 법정 스님 >
나 자신도 많이 반성하지만
신앙인들은 많이 알려고 하지 말아야 한다.
그렇게 되면 자기 안이 시끄러워질 뿐이다.
자기 본심대로 사는 것이 최선의 삶이다.
본심
우리의 근본 바탕은 똑같다.
부처나 보살이나 내 자신이나 똑같다.
불성은 똑같은 것이다.
그러니 누구에게도 의존하지 말고
듣는 것에 너무 팔리지 말고 자기 본성대로 살아야 한다.
본래 천진한 그 마음을 지키는 것이 으뜸가는 정진이다.
금강경에 보면
법도 오히려 버려야 하는데 하물며 법이 아닌 것이랴
라는 구절이 있다.
진리도 버려야 할 것인데 하물며 진리 아닌 것이랴
바깥에서 들려 오는 소리에 너무 의존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다.
설령 부처의 말이라 해도
그건 그 상황에서 그렇게 얘기된 것이다.
오늘 내가 그 얘기를 들었다면
오늘 상황에 맞도록 그와 같이 살라는 것이다.
그 가르침을 통해 오늘의 현실을 살아야 한다.
청빈의 덕 ____________
청빈의 덕을 쌓으려면
단순하고 간소하게 살아야 한다.
내가 가끔 인터뷰할 때
스님의 소원은 뭡니까? 라는 질문을 받는다.
내 개인적인 소원은
보다 단순하고 보다 간소하게 사는 것이다.
나는 내가 사는 집의 부엌 벽에다
보다 단순하고 보다 간소하게 라고 낙서를 해놓았다.
단순함과 간소함이 곧 본질적인 세계이다.
불필요한 것들은 다 덜어내고
꼭 있어야 할 것과 있어야 되는 것으로만
이루어진 어떤 결정체 같은 것
그것이 단순과 간소이다
봄철 피로 '굿바이' 솔루션 5계명 ____________
< 생활정보 상식 가이드 >
봄철 충분히 잠을 자도 하품이 쏟아지고 해결되지 않는 피로 때문에
온몸이 뻐근하다고 호소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이때 5가지만 솔루션만 되짚어보면 봄철 피로에게 '굿바이'를 외칠 수 있다.
1.피로 푸는 음식 - 비타민과 미네랄, 식물영양소와 같은 미세영양소는 인체의 대사반응을 적절하게 유지하기 위해 꼭 필요하다.현대인의 대부분이 미세영양소가 부족한 편이므로 피로를 풀기 위해서는 미네랄이 풍부한 물 과일 등을 섭취하는 것이 좋다. 전날 저녁식사가 기름지고 과하면 아침까지 소화활동이 끝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저녁식사보다는 점심식사를 풍성하게 먹거나 이른 저녁식사를 하는 것도 피로 개선에 도움이 된다.피로를 느낄 때는 소고기보다는 돼지고기 배아미(米), 두부 등을 섭취한다.
돼지고기에는 체내 에너지 대사에 관여해 젖산이 축적되는 것을 막는 비타민B1이 쇠고기보다 10배 많이 들어있다. 비타민B1은 육류 콩 고등어에도 많이 함유되어 있다.
배아미에는 피로 해소에 효과적인 비타민B군뿐 아니라 혈액순환 장애를 개선하는 비타민E도 풍부하다. 두부는 소화흡수력이 좋고 양질의 단백질과 각종 영양소가 풍부한 식품이다.
2.바른 자세 - 어깨 결림 요통 목 뻐근함 나른함 등은 나쁜 자세로 인해 유발될 수 있다. 우리 몸은 누워 있을 때를 제외하고 지면과 수직 상태로 중력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자세가 나쁘면 전신의 밸런스를 잡기 위해 다양한 근육이 끊임없이 긴장 상태에 놓인다.
처음 자세교정을 시작하면 피곤하게 느껴지지만 익숙해지면 편안해지니 포기하지 말고 바른 자세에 도전해 보자. 옆에서 봤을 때 귓구멍 아래에서부터 아래로 그은 수직선이 어깨·무릎·발목의 중심을 통과해야 바른 자세다.
앞에서 봤을 때는 양 미간에서 아래로 그은 수직선이 코 턱 가슴의 중앙 골반의 중앙을 통과해야 한다. 가급적 같은 자세로 오래 있지 않는다.
자신도 모르는 새 흐트러지기 쉽다. 계단을 자주 오르내려 골반을 스트레칭하고 의자에 앉을 때는 엉덩이를 등받이에 붙여 깊게 앉는다.
3.수면 습관 바꾸기 - 아침에는 유독 피로를 느끼며 하품을 계속하다 오후가 될수록 정신이 말똥말똥해지는 사람이 있다. 대부분 수면 부족이 원인이지만 수면을 충분히 취했는데도 피로하다면 수면의 질을 의심해봐야 한다.
뇌와 자율신경계가 충분히 깨어나지 못했을 때도 아침 피로를 느낀다. 코골이와 수면 무호흡증 등 수면의 질을 저하하는 원인을 찾아내 치료하고 기상 시 뇌를 완전히 깨울 수 있도록 노력한다.
평소 코골이나 수면 무호흡증이 있다면 적극적으로 치료한다.
아침에 개운하게 일어나기 위해 이부자리에 앉아서 복식호흡을 통해 뇌와 전신에 신선한 산소를 공급한다.
간단한 스트레칭이나 마사지도 좋다. 무언가를 씹으면 뇌가 자극을 받으니 아침식사를 생활화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4.가벼운 운동 - 근육을 사용하면 젖산 등의 피로 물질이 생겨 피로를 느끼게 한다. 혈액순환이 좋지 않은 사람들의 몸에는 이 피로 물질들이 지속적으로 쌓이게 된다.
특히 컴퓨터 작업을 하는 등 같은 자세로 오래 있는 사람은 순환이 좋지 않고 하체가 약해져 어깨 허리 통증 다리 부종 같은 증상을 앓게 된다.
피로 물질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가벼운 운동으로 근육을 움직이는 것이 효과적이다. 같은 자세로 작업할 때 1시간에 1회 정도 꼭 스트레칭하고 특히 하체의 혈액순환 개선을 위해 족욕이나 다리 운동을 하는 것이 좋다.
발목을 돌리거나 발바닥 지압을 하는 것도 효과적이다.
책상 밑에 지압 발판이나 골프 공을 두고 수시로 마사지한다.
지압 슬리퍼를 신는 것도 좋다.
5.스트레스 해소 - 정신적인 스트레스도 피로를 부른다. 사람은 산화를 통해 얻어지는 에너지로 생명을 유지하는데, 이 때 대사의 산물인 활성산소가 생긴다. 활성산소는 몸속 세포를 손상시키는 주 원인. 스트레스가 과다하면 에너지 소모도 높아지고 그에 따라 활성 산소의 생성도 증가한다.
스트레스는 또 긴장성 두
절대 행복 ___________
< 법정 스님 >
누구보다 더 아름답고 싶고
누구보다 더 잘 살고 싶고
누구보다 더 행복 하고 싶은 마음들
우리 마음은 끊임없이 상대를 세워 놓고
상대와 비교하며 살아갑니다.
비교 우위를 마치 성공인 양 행복인 양
비교 열등을 마치 실패인 양 불행인 양 그러고 살아가지만
비교 속에서 행복해지려는 마음은
그런 상대적 행복은 참된 행복이라 할 수 없어
무언가 내 밖에 다른 대상이 있어야만
행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나 혼자서 행복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저 나 자신만을 가지고
충분히 평화로울 수 있어야 합니다.
나 혼자서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은
상대 행복이 아닌
절대 행복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무엇이 없어도 누구보다 잘 나지 않아도
그런 내 밖의 비교 대상을 세우지 않고
내 마음의 평화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야 합니다.
나는 그냥 나 자신이면 됩니다
누구를 닮을 필요도 없고
누구와 같이 되려고 애쓸 것도 없으며
누구처럼 되지 못했다고 부러워할 것도 없습니다.
우린 누구나 지금 이 모습 이대로의
나 자신이 될 수 있어야 합니다.
천수다라니 요체는 보리심 증득 ___________
'천수경' 수행 길라잡이가 되는 이유와 그 핵심
눈에 보이는 중생 모두를 위해 다라니를 독송하라.중생들에게 귀로 듣게 해 깨달음의 인연을 지어 주면 그 공덕은 헤아릴 수 없이 크다. 입으로 빠르게 다라니를 외게 하되 소리마다 끊이지 않게 하면 금생에 성불할 수 있다.
참회와 발원의 경전, <천수경(千手經)>. ‘신묘장구대다라니(神妙章句大陀羅尼)’의 공덕과 의미를 강조한 <천수경>의 한 구절이다. 그럼 <천수경>은 어떤 가르침을 담고 있을까. 또 ‘신묘장구대다라니’는 왜 외는 걸까?
<금강경>과 함께 불자들이 가장 읽는 경전 중의 하나인 <천수경>. 3월 27일 서울 수안사는 관세음보살의 자비와 위신력, 보살도를 실천하고자 ‘천수다라니 백만 번 독송 기도법회’를 입제했다. 불교계에서는 <천수경>을 ‘수행의 길라잡이’라 부르는데 이견을 달지 않는다. 불자들이 아침 저녁으로 늘 독송하는 <천수경>의 요체와 독송자세 등을 알아본다.
* ‘천수경’ 요체는?
먼저 <천수경>의 경전사적 시원은 이렇다. 모체는 <법화경>이다. 그것을 축약한 것이 <관세음보살품>, 즉 <관음경>이고 <천수경>의 모경(母經)이 된다. 직계로 따지면, ‘신묘장구대다라니’가 아들 격이고 그것을 압축한 것이 바로 육자진언 ‘옴마니반메훔’이다. 따라서 <천수경> 수행의 요체는 다라니 독송에 있다.
김호성 교수는 천수경에서 대범천왕이 관세음보살에게 ‘이 다라니의 내용이 나타내고 있는 마음의 모습이 무엇이냐’ 묻자, 관세음보살이 9가지의 마음(九心)을 제시하고 있다”며 “신묘장구대다라니 독송의 요체는 바로 이런 마음을 얻으라는 것에 있다”고 말한다.
결국 <천수경> 수행의 핵심은 자비심 평등심 무위심(無爲心) 공경심(恭敬心) 무상보리심(無上菩提心) 공관심(空觀心) 무견취심(無見取心) 등의 9가지 마음이 곧 다라니의 본질과 생명임을 깨닫는데 있다는 것으로, 이는 <천수경> 수행의 목적이 된다.
조계종 前 교육원장 무비 스님도 “천수경이 관세음보살의 자비와 지혜를 통해 바람직한 삶을 제시해 주는 경전”이라며 이 경전을 통해 우리의 신앙심이 더욱 깊어지고 넓어져 일상생활 속에서 관세음보살의 자비와 지혜가 실천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 ‘수행의 길라잡이’가 되는 까닭은?
수행법 제시가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현실과 동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다. 때문에 <천수경>은 참회법, 염불법 등 실질적인 자기변화를 이끌어내는 수행법들을 포함하고 있다. 특히 신묘장구대다라니로 대변되는 진언 독송은 <천수경>의 중핵을 이룬다. 42가지 사례별로 제시되는 진언들은 재가불자에게 마음공부의 ‘방향타’가 돼준다. 여기에 선의 도리까지 담고 있어 그야말로 ‘수행의 기초교과서’인 셈이다.
한국빠알리성전협회 전재성 회장은 <천수경>의 이런 특징이 수행의 길라잡이로 작용한다고 설명한다. <천수경>이 수행에 장애가 되는 업장을 녹이는 등 ‘수행의 기틀’을 마련해준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천수다라니를 외는 사람에게 도심(道心:보리심)을 무르익게 하고, 정법(正法)의 깊은 뜻을 깨닫게 하는 것에 있다는 <천수경>의 구절을 제시한다.
<천수경>의 이 같은 수행 기초서로서 역할은 근세 선지식 수월 스님(1855~1928)이 평생 <천수경>과 천수다라니를 지송했다는 사실에서도 확인된다.
최근 수월 스님의 행적을 좋은 책
<물 속을 걸어가는 달>를 펴낸 춘천지방검찰청 김진태 강릉지청장은 천장암 행자 때부터 하루 종일 일만 했던 수월 스님은 항상 천수다라니를 외면서 번뇌 망상과 업장을 완전히 녹여버려 수행의 기초를 다졌다고 말한다.
* ‘수행 기틀’ 다지는 지침
천수경은 이처럼 참선 진언 독경 염불 등 수행법의 지침을 제시한다.
<천수경 선해(禪解)>를 펴낸 대전 국은사 주지 묘봉 스님은
천수경은 천ㆍ만 가지 부처님의 법문을 요약하고
그 핵심을 드러낸 경으로 선의 요지 염불 경전 등을 두루 섭렵해 전하고 있다며 선의 측면에서 천수경은 존재의 세계 그대로가 일심법계(一心法界)요 불신(佛身)이라는 것을 알려 준다고 말한다.
동국대 인도철학과 김호성 교수도 마찬가지다.
숯으로 가족 건강 지키는 생활 지혜 17가지 ___________
숯은 겉 부분을 물에 씻어 말린 뒤 열 번 정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1.과일이나 채소, 쌀을 씻는 물에 숯을 넣고 10-20분
놓아두면 숯이 농약성분으 빨아들인다.
2.음식을 끓일 때 넣으면 음식물이 으깨지지 않아
요리의 모양을 예쁘게 유지할 수 있다.
3.숯은 물속의 유해물질을 흡착, 분해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 정수 효과를 낸다.수도물에 넣어두면 소독약 냄새도
나지 않고 물맛도 좋아진다.
4.튀김 기름에 넣으면 기름이 잘 산화되지 않고 요리의
선도가 유지된다.
5.숯을 넣어 밥을 하면 좋지 않은 쌀이나 묵은 쌀이라도
햅쌀로 지은 밥처럼 밥맛이 좋다.
6.집안 구석 구석에 놓아두면 공기정화 역활을 한다.
7.냉장고에 넣어두면 김치냄새 등의 여러가지 냄새를
없앨 수 있다.
8.구두속에 넣으면 퀴퀴한 발냄새를 없애 준다.
9.후미진 곳에 놓아두면 바퀴벌레나 개미를 퇴치하는
효과도 있다.
10.쌀통에 숯을 넣어두면 바구미가 생기지 않는다.
11.컴퓨터나 텔레비젼 등의 전자파를 흡수한다.
12.화초를 심을때 숯가루를 뿌리면 화초가 잘 자란다.
화분위에 뿌리거나 숯덩이를 올려놓아도 화초가
잘 자란다.
13.숯을 욕조물에 넣어 몸을 담그고 있으면 체내의
유해한 화학물질이 피부에서 배출된다.
아토피성 피부염과 피부미용에 좋고 신경통과
요통을 완화시킨다.
14.숯가루를 탄 물로 관장을 하면 체내에 쌓인 숙변을
제거하고 변비를 예방한다.
15.간장을 띄울 때 숯을 넣으면 잡균이 생기지 않는다.
16.숯을 바구니에 담아 잠자리 옆에 두거나 침대밑에
두면 숙면과 피로회복 및 에너지 충전 효과가 크다.
숯가를를 잘 싸서 베개에 넣어두는 것도 좋다.
17.습도를 조절, 가습기 역활을 해 준다
뒷 모 습 ___________
< 법정 스님 >
늘 가까이 있어도
눈 속의 눈으로 보이는
눈을 감을수록
더욱 뚜렷이 나타나는 뒷모습
이 모습이 아름다워야 한다
그리고
이 뒷모습을 볼 줄 아는
눈을 길러야 한다
앞모습은 허상이고
뒷모습이야 말로 실상이기 때문이다.
말의 향기 ____________
< 법구경 >
아름다운
저 꽃에 향기가 없듯이
말만 번지르게 하고는
그것을
실천에 옮기지 않는다면
그 사람의 말에는 향기가 없다
아름다운
저 꽃에 향기가 나듯이
그 사람이 말한 바와 같이
즉시 행동에 옮겨 놓는다면
그 사람의 말에는
곱고 진한 향기가 난다.
욕심 (慾心) 이란 ____________
< 법정 스님 >
스승님!
욕심(慾心)이란 무엇이옵니까?
바람(風)이니라
“ ? ”
하늘의 저 달은 몇 개(個)이더냐?
" . . . ? . . . "
그리고 전혀 물결이 없는
잔잔한 호수(湖水)에 비치는 달은 몇 개(個)이겠느냐?
분명(分明) 하늘의 달도 하나이고
호수(湖水)에 비치는 달도 하나이옵니다.
그러하니라.
" . . ? . . "
하지만 바람(風)이 불어 물결이 심(深)하게 일면
하늘의 달은 분명(分明) 하나인데
호수(湖水)에 비치는 달은 헤일 수 없이 많아지느니라.
“ ? ”
우리가 세상(世上)을 살면서
따라야 할 진리(眞理)는 언제이고 하나이며
그 진리(眞理)에 따라 살면
편안(便安)하고 평화(平和)로우련만
욕심(慾心)이라는 바람(風)이 불어 닥치면
사람에 따라 때에 따라 경우(境遇)에 따라
수(數)도 없이 많은 진리(眞理)가 나타나느니
그 어떤 진리(眞理)를 따라 살아야 할는지 몰라
허상(虛像)에 현혹(眩惑)되어 방황(彷徨)하게 되고
삶이 힘드네 괴롭네 하며 불평(不平)하게 되며
불행(不幸)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니라.
“ ? ”
그러므로 진정(眞情)
평화(平和)롭고 편안(便安)한 삶을 살고자 한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마음 속에 일어나는
욕심(慾心)이라는 바람(風)을 잠재울 줄 알아야 하느니라.
여시아문(如是我聞) ___________
부처님의 경전은 언제나
여시아문(如是我聞)으로 시작됩니다.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이 여시아문 이라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 뜻을 담고 있는 구절인지!
과연 우리 불자들은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직후
그 교법이 흩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5백 제자들이
한 곳에 모여 저마다 듣고 외웠던 부처님의 말씀을 이야기하고
그 내용의 옳고 그름을 논의하여
부처님의 정법(正法)을 편집한 제1결집(弟一結集)이 있었습니다.
그때 법상에 올라가 결집을 주도했던
아난존자는 분명히 진리를 깨친 분이셨고
그 자리 또한 자기 소리를 분명히 할 수 있는 자리였습니다.
자기의 견해와 자기의 실력을 가지고
부처님에 관한 이야기를 할 수도 있었고
부처님께서 하신 일에 대해
주석을 달수도 있는 자격을 갖춘 어른이셨습니다.
하지만 법상에 올라갔을 때의
아난존자의 첫말씀은 여시아문 이었습니다.
여시아문!
이 '여시아문'이라는 단어 속에는
어떠한 뜻이 간직되어 있습니까?
완전히 믿습니다.
저는 그 말씀을 믿고 따를 뿐입니다 라는 뜻입니다.
부처님을 믿고 있는
우리들은 지금 여시아문이 되고 있습니까?
불교뿐만이 아닙니다.
이 이사회 전체가 여시아문이 잘 되지 않습니다.
과연 얼마나 많은 분들이 부모의 말씀에 대해
여시아문 하는 자세로 믿고 순종하고 있습니까?
또 스승의 말씀에 순종하는 제자는 얼마나 됩니까?
지금의 사회는 여시아문이 참으로 많이 끊어졌습니다.
한번 스스로에게 물어보십시오.!
우리 불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여시아문이 되는 것입니다.
이유없이 순종합니다.
여기에 더 이상 나는 말을 붙이지 않고 순종합니다.
그대로 받들어 가집니다 라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마음을 가질 때 더욱 성불의 길로 다가설 수 있겠지요.
팔정도에 관한 부처님 말씀 ___________
< 남전상응부경전 분별경 >
1. 비구들이여 정견이란 무엇인가 ?
인생은 고라는 것을 알고
고의 원인을 알고
고의 멸함을 알고
고의 멸진에 이르는 길을 아는 것
이것을 정견이라 한다.
2. 비구들이여 정사란 무엇인가 ?
미망의 세간에서 떠나려고 생각하고
나쁜 마음(惡業)을 지니지 않겠다고 생각하고
남을 헤치지 않겠다고 생각하는 것
이것을 정사라 한다.
3. 비구들이여 정어란 무엇인가 ?
거짓말을 하지 않고
남을 헐뜯는 말을 하지 않으며
거칠고 추한 말을 하지 않으며
상스러운 말을 하지 않는 것
이것을 정어라 한다.
4. 비구들이여 정업이란 무엇인가 ?
살생을 하지 않으며
남이 주지 않는 것을 갖지 않으며
청정하진 못한 행을 하지 않는 것
이것을 정업이라 한다.
5. 비구들이여 정명이란 무엇인가 ?
여기 한 성스러운 제자가 있어
부정한 생활을 끊고
바른 법을 지키며 산다.
이것을 정명이라 한다.
6. 비구들이여 정정진이란 무엇인가 ?
여기 한 성스러운 제자가 있어
아직 짓지 않은 악은 생기지 않게 하리라고
뜻을 세우고오로지 지키기를 힘쓴다.
이미 일어난 악은 끊겠다고 뜻을 세우고
오로지 그것을 지키고자 노력한다.
아직 짓지 못한 선을 짓겠다고 뜻을 세우고
오로지 그것을 위해 노력한다.
또 이미 지은 선은 오래 머물게 하고
잊지 않고 더욱 닦아
완전하도록 뜻을 세우고 오로지 노력한다.
이것을 정정진이라 한다.
7. 비구들이여 정념이란 무엇인가 ?
여기 한 비구가 있어
내 몸이라고 생가가하는 몸을 정밀하게 관찰하되
열심히, 정신을 차리고 일심으로 관찰하여
이 세간의 탐욕과 근심 걱정을 극복(調伏)한다.
또 내 감각이라 생각되는 감각을 세밀하게 관찰하되
열심히, 정신을 차리고 일심으로 관찰하여
이 세간의 탐욕과 근심 걱정을 극복한다.
이것을 정념이라 한다.
8. 비구들이여 정정이란 무엇인가 ?
여기 한 성스러운 제자가 있어
갖가지 욕망에서 떠나고 갖가지 악에서 떠나되
역시 대상에 마음이 끌리더라도
그 대상을 멀리 하는 데서
기쁨과 즐거움을 느끼는 경지에 이른다.
이 경지를 초선(初禪)이라고 한다.
마침내 그는 대상에 끌리는 마음이 진정되고
안으로 청정하여 아무 것에도 마음이 끌리지 않게 되며
오로지 삼매(三昧)에서 이는 기쁨과
즐거움에 머무는 경지에 이른다.
이 경지가 제 2선이다.
다시 그는 그 기쁨마저도 떨쳐내므로 마침내
마음이 평등하여 집착하지 않으며
단지 염(念)과 혜(慧)와 즐거움(樂)이 있는 경지에 이른다.
이 경지를 제 3선이라고 한다.
다시 그는 즐거움도 괴로움도 끊는다.
이미 즐거움도 근심도 걱정도 모두 멸했으므로
그는 이제 불고(不苦) 불락(不樂)
단지 사(捨)가 있고, 염(念)이 있는
청정한 경지에 이른다.
이 경지를 제 4선이라고 한다.
이것을 정정이라고 한다.
처음 가졌던 소중한 마음 ___________
우리가 무언가에 싫증을 낸다는 것은
만족을 못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처음 가졌던 나름대로 소중한
느낌들을 쉽게 잊어가기 때문이죠.
내가 왜 이 물건을 사게 됐던가?
내가 왜 이 사람을 만나게 됐던가?
내가 왜 그런 다짐을 했던가?
하나 둘 곱 씹어 생각하다 보면
그 처음의 좋은 느낌들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습니다.
생각은 변화합니다.
늘 같을 순 없죠. 악기와도 같아요.
현인들은 말합니다.
가장 소중한 것은 언제나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가까이 있다
행복은 결코 누군가에 의해
얻어 지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우리가 무언가에 싫증을 낸다는 것은
만족을 못하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처음 가졌던 나름대로 소중한
느낌들을 쉽게 잊어가기 때문이죠.
우리는 늘 변화를 꿈꾸지만
사소한 무관심과 나만 생각하는
이기주의에 이따금
불협화음을 연주하게 되지요.
지금 눈을 새롭게 뜨고
주위를 바라 보세요.
늘 사용하는 구형 휴대폰
어느새 손에 익은 볼펜 한 자루
잠들어 있는 가족들
그리고 나를 기억하는 친구들
사랑했던 사람과
지금 사랑하는 사람을
가까운 사람들에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먼저 선물해요
오늘 옷 참 잘 어울려요
라고 하면서 먼저 웃으며 인사해요.
우리가 소중하게
떠올렸던 그 마음
그들로 인해 잠시나마 가졌던 그 마음
볼펜을 긁적이며 고르던 그 마음
처음 휴대폰을 들고 만지작 거리던 그 마음
그 마음을 가졌었던 때를 떠 올리며
엷은 미소를 짓는 자신을 찾을줄 아는
멋진 우리의 모습을 스스로 선물해요
잊지 못할 추억들을 만들어 준 사람들에게...
< 옮긴 글 >
선근(善根)을 심는 불자(佛子)
부처님 제자임을 기뻐하라 ____________
< 정우 (頂宇) 스님 >
정월 보름날 해뜨기 전 집집마다 다니면서 오곡밥을 얻고 길거리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는 내 더위 네 더위라고 소리치며 한 여름날 더위를 피해 보려고 했던 아이들은 석양(夕陽) 무렵이면 깡통에 불을 지펴 쥐불놀이로 한바탕 굿판을 벌였던 추억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젠 정월 대보름날도 영험이 없게 되었습니다.
집집마다 에어컨에 선풍기가 있어서 더위를 피할 일이 없게 된 것입니다. 그것은 어릴 적 추억의 동심(童心)일뿐 정서적인 것들이 하나씩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오늘은 사찰에서도 삼동결제(三冬結制)를 회향(廻向)하는 날입니다. 결제(結制)는 맺는다는 것이고 해제(解制)는 푼다는 것인데 무엇이 있어 따로 묶고 무엇이 있어 따로 풀 것이 있겠습니까?
만해(萬海) 한용운(韓龍雲)스님은 조선총독부가 보기 싫다고 성북동에 북향집을 짓고 심우장(尋牛莊)이라 하였습니다. 심우장이란 소를 찾는다는 집입니다.
만해 스님은 별호(別號)를
목부(牧夫)라 하셨으니 소를 키운다는 것입니다.
어느 날 통도사의
경봉스님께서는 만해스님께 편지를 보내셨습니다.
심우장이라 하면 소를 찾는다는 것인데
만해 선사여. 어찌하여 목부라 하셨습니까?
소를 찾으십니까? 소를 키우십니까?
법거량으로 보여 집니다.
이에 만해 스님은 경봉스님께 답을 보내십니다.
늙은이가 할일이 없어서 번잡을 떨었으니 차(茶)나 한잔 드시오.
참 멋지고 여유로운 선사(禪師)의 경계를 보이셨다고 생각 됩니다.
삼일수심천재보 (三日修心千載寶)요
백년탐물일조진 (百年貪物一朝塵)입니다.
삼일수심의 지극한 마음은 천년을 덮고도 남을 보배로움인데 백년을 탐했던 물건은 아침녘 햇살에 비치는 분진 같은 허상의 그림자입니다.
오늘은 정월 대보름이라서 좋고 우수 경칩은 대동강 물도 녹인다는 봄기운이 만연해서 좋고 삼동결제를 마치고 자유로움을 찾아 운수행각(雲水行脚)의 길을 떠나는 수행자들을 지켜볼 수 있어서 좋습니다.
지금쯤이면 삼동결제 대중들은 해제를 하고 적적(寂寂)한 산사(山寺)의 비탈진 길을 걸어가는 걸망 진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그러나 출가자들이 조심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첫째, 머리를 기르는 것.
둘째, 손톱을 길게 기르는 것.
셋째, 옷을 단정하게 입지 않는 것.
넷째, 시간을 잘 지키지 않는 것.
다섯째, 말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보살본행경(菩薩本行經)에 보면 진리를 향해서 정진하는 삶이란 바른 믿음으로 일상적인 삶을 살다가 불교에 입문(入門)하려고 초발심(初發心)을 내는 그 순간부터 바른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이어야 한다. 그 사람들의 허물은 게으름이다. 게으름이란 모든 허물의 바탕이다.
불보살님의 도량(道場)이야 곳곳에 있지만 통도사는 금강계단(金剛戒壇)이요 적멸보궁(寂滅寶宮)입니다. 그런 통도사에서 마음을 내지 않았다면 어찌 구룡사가 이루어질 수 있었겠으며 구룡사에서 회향의 열매를 씨앗으로 심지 않았다면 어떻게 일산에 여래사 같은 절이 창건될 수 있었겠습니까? 신도시의 포교당도 해외 포교당도 또한 그러합니다.
모든 것은 다, 나로부터 시작되는 일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스스로 하는 것이요
둘째는 상대를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이며
셋째는 모르는 이에게 가르쳐주기 위한 일입니다.
수행 정진도, 시주와 보시도, 법공양의 보살행도 그렇습니다.
긍정적인 씨앗을 심고 가꾸면 행복(幸福)이라는 열매를 맺고 부정적인 씨앗을 놓아두면 불행(不幸)이라는 열매를 맺는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행복도 불행도 심전心田의 마음 밭에 있는 것을 보면 논에 있는 벼와 공생共生하는 잡초인 피와 비슷해 보입니다.
농사철이면 농부들이 논에서 잡초를 뽑아내는 것을 봅니다. 잡초인 피는 살아남으려고 변이현상으로 논에 모내기를 할 때부터 벼와 비슷하게 자라고 있으니 분간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농부들은 그것을 찾아내 뽑아버립니다. 그렇게 피사리를 하다보면 피는 벼보다 뿌리는 견고하고 줄기가 많이 나와 있는 것을
욕심이 일어나는 원인은? ___________
< 서암 스님 >
욕심이 일어나는 원인불교에서는
모든 잘못을 행하고 고통 속에 사는 그 근본 원인을
탐욕(貪)·성냄(瞋)·어리석음(癡) 이렇게 세 가지를 들고 있습니다.
이 세 가지는
몸과 마음을 해치는 독약과 같다고 하여 삼독(三毒)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탐욕(욕심)이란
좋아하는 대상에 대한 집착을 말하고
성냄이란 좋아하지 않는 대상에 대한 반감이나
혐오 등을 말하며 어리석음이란 바른 도리에 대한 무지를 말합니다.
이 세 가지가 불길이 되어
수많은 고통이 우리에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수많은 고통과 감당하기 힘든 어려움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런 고통과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면 그 원인이 무엇인가
살펴보고 나름대로 판단하여 처신하기도 하고 후회하기도 합니다.
그때 좀더 일찍 내가 알았더라면
이렇게까지 크게 확대되지는 않았을 텐데....
내가 그때 욕심만
부리지 않았어도 이렇게 되지는 않았을 텐데...
내가 좀 참았더라도
모든 것이 순조롭게 되었을 텐데...... 등등.......
이처럼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한 순간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여 더 큰 화를 초래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좀더 사정을 잘 알았다면 욕심만 더 부리지 않았다면
좀더 참았다면 쉽게 넘어갈 수 있는 일들을
해결하기 힘겨운 상태로 만든 경우가 많습니다.
탐욕 성냄 어리석음의 독을 들이마시고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여 점점 감당하기 힘든 수많은 잘못을 짓게 됩니다.
물론 이 이외에도 많은 번뇌가 우리의 삶을 어지럽게 하지만
탐욕·성냄·어리석음으로 인하여 모든 번뇌가 일어나고
모든 고통과 어려움이 발생하기 때문에
그 근본이 되는 탐욕·성냄·어리석음을 열거하여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라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강물이 원래 조그마한 샘물에서 시작하여 끊이지 않고
흐르면 시내를 이루고 마침내는 만경 창파를 이루게 되지만
어떤 사람이
그 물줄기의 근원을 끊으면 모든 흐름이 다 쉬게 되는 것처럼
모든 악의 근본이 되는 탐욕·성냄·어리석음을
다스리면 그 모든 악이 그치게 되기 때문입니다.
다시 한 번 일상 생활에서 느껴지는 고통을 살펴보더라도 그 대부분이 탐욕·성냄·어리석음을 그 원인으로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잠깐 부처님이 남기신 말씀을 들어 봅시다.
여러 비구들이여 욕심이 많은 사람은 이익을 구함이 많기 때문에
번뇌도 많지만 욕심이 적은 사람은 구함이 없어 근심 걱정도 없다.
욕심을 적게 하기 위해서라도 힘써 닦아야 할 텐데
하물며 그것이 온갖 공덕을 낳게 함에 있어서랴.
욕심이 적은 사람은 남의 마음을 사기 위해
굽혀 아첨하지 않고 모든 감관에 이끌리지 않는다.
또 욕심을 없애려는 사람은 마음이 편안해서 아무 걱정이나
두려움이 없고 하는 일에 여유가 있어 부족함이 없다.
그래서 열반의 경지에 들게 되는 이것을 가리켜
욕심이 적음(少欲)이라 한다.
만약 모든 고뇌를 벗어나고자 한다면 만족할 줄 알아야 한다.
넉넉함을 아는 것은 부유하고 즐거우며 안온하다.
그런 사람은 비록 맨땅 위에 누워 있을지라도 편안하고 즐겁다.
그러나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설사 천상에 있을지라도
그 뜻에 흡족하지 않을 것이다.
만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부유한 듯하지만 사실은
가난하고 만족할 줄 아는 사람은 가난한 듯하지만 사실은 부유하다.
만족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항상 오욕에 이끌려 만족을 아는 사람들이 불쌍하게 여긴다.
이것을 가리켜 지족(知足)이라 한다.
이상의 말씀은 <<유고경>>에 나오는 말씀 입니다.
모욕을 당하고 화내지 않기 어려우며 참을 인(忍)자 세 개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자신에게 부딪쳐 오는 좋지 않은 상황에 대하여 잠시
여유를 가지고 그 것을 지켜본다면 합리적인 방법이 있을 것인데
우리는 그
칭찬여래를 실천하라 ___________
< 광덕 스님 >
행원을 실천하는 것 가운데 칭찬여래
즉 부처님을 칭찬한다는 대목이 행원품에는 두 번째로 나오지요.
여기에 보면 부처님은 일체 세계마다
불가설 불가설 극미진수의 부처님이 계신다고 합니다.
이것은 곧 처처에 부처님이 계신다는 뜻입니다.
처처에 부처님이 계신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부처님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사람의 참모습과 그 지혜덕상이
부처님과 다름없다는 것은 여러 번 말씀 드린 바 있습니다만
이것을 실지로 활용하는 것입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존경을 다해서
예경을 하고 그 덕성을 칭찬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에게서 부처님 공덕의
원만구족을 깊이 믿고 아름다운 장점을 발견해서
인정하고 존중하고 칭찬하는 말
이것이 부처님의 공덕을 참으로
우리 주변에 실현시키는 방법이란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겠습니다.
거듭 말해서 「행원품」에서 가르치는 바
일체 세계의 구석구석에 부처님이 계시다는 이 가르침
이는 바로 일체 중생이 부처라는데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특히 내 주변에 오시어 아버지가 되시고
어머니가 되시고 아내가 되고 남편이 되고
형제가 되고 자손이 되어서 내 집안에 와 계시는 부처님
우리는 이 부처님을
참으로 공경하고 칭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꾸짖고 나무라고 잘못하였다고
지적하기 이전에 원천적으로 거룩한 존재라는 것을 깊이 믿고
잘하는 점을 인정하고
칭찬하고 공경해서 공덕을 우리 눈앞에 현전시켜야 하겠습니다.
이렇게 할 때 비록 잘하는 것이
적다 하더라도 이 적은 것이 커져서 불행을 덮어버리고
평화와 만족만이 집안에 넘쳐나게 됩니다.
서로 장점을 보고 서로 밝은 면만 보아
위해주는 말만 할 때 집안에 기쁨이 넘쳐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칭찬하는 말을 아끼지 말고
사용해서 집안에 평화와 만족이 가득하도록 합시다.
긴 설법보다도 우리 생활주변에
이것을 실천하는 것이 집안에 부처님의 따뜻한 기운이 돌게 하고
마음을 쉬게 하고 영혼의 안식처가 되게 하는 길입니다.
잘하려고 한다고 해서
잘못된 것 부족한 것 불만스러운 것 불평스러운 것
이런 것들만 나열하기 시작하면 그 집안은 가시밭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놓고 집안에 있을 수가 없습니다.
집안이 그러면 갈 곳이 없어집니다.
거리에 나가서도 집안에서도
직장에서도 처처에 인간의 영혼이 마음놓고 쉴 곳이 없어집니다.
할 수 없이 쉬기 위해서 딴 곳으로 빠지는 것입니다.
도락에 빠지거나 놀이에 빠지거나
무엇엔가 빠져서 적당히 마음의 휴식을 찾으려고 돌아 다닙니다.
그들은 참으로 외로운 사람들입니다.
가정에서 마음을 쉬지 못하기 때문에
외로운 혼들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면서 자기를 속이고
자기를 달래고 놀이로 우스개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입니다.
남보기에는 그 사람이 부산하다고 그럴지 몰라도
그 사람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쓰라린 데가 있는 것입니다.
불안함
무엇인가 받지 못한 피해의식 우울함 이루지 못한 자기 불만
그야말로 억압된 감정을 호소할 곳 없는 것을
가슴에 안고 헤매이다가 기회가 있을 때 터뜨리고 마는 것입니다.
왜 그런가? 그에게는 따뜻한 안식처 가정이 없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참으로 위해주고
칭찬해주고 공경해주고 자기편이 되어주고
따뜻이 감싸주면 사람들은 거기서 휴식을 얻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에 의지해서 행하면
그 집안은 부처님의 은혜를 받고
그 은혜를 통해서 그 집안의 생명이 커가는 것입니다.
바깥에서 어떤 고난과 어려움을 당하였다 하더라도
집에 와서 그런 것을 풀어 버릴 수 있다면
남자이거나 여자이거나 그는 집에서 새로운 정신적 힘이
충전되어 다음날 활기있고 용기있게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부디 우리 불자 형제들 집에 이와 같은 법등을 밝히고
부처님의 은혜가 항상 넘쳐나게 되어
그 집안 식구 한 사람 한 사람이
닦는 행(行) ____________
< 법정 스님 >
종교는
한 마디로 사랑의 실천이다.
이웃과 사랑을 나누는 일이다.
보살행 자비행은 깨달은 후에 오는 것이 아니다.
순간순간 하루하루 익혀 가는 정진이다.
하루하루 한 달 한 달 쌓은 행의 축적이
마침내는 깨달음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새삼스럽게 몰랐던 것을 아는 것
이것은 깨달음이 아니다.
본래 자기 마음 가운데 있는 꽃씨를
일상적인 행을 통해서 가꾸어 나가면
그것이 시절 인연을 만나 꽃 피고 열매 맺는 것
이것이 진정한 깨달음이다.
본래 우리 마음 가운데 깨달음이 갖춰져 있다.
본래 밝은 마음이다.
헛눈 파느라고
불필요한 데 신경 쓰느라고 제 빛을 발하지 못할 뿐이다.
참선도 행이다.
참선을 하든 염불을 하든 경을 읽든 모두가 일종의 행이다.
닦는 행인 것이다.
행을 통해 본래 자기 마음의 빛이 드러난다.
행하면서 하루하루 살다 보니까
그 결과가 깨달음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경제가 어려울수록
서민들이 고통받습니다 ____________
< 법정 스님 >
우리 주변에
누군가 가난한 것은 나눔이 부족하다는 뜻입니다.
어려울수록 물질뿐 아니라
말 한마디 표정 하나라도 나눠야 합니다.
나눌 수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또 한 가지
모든 것은 변하고 유동합니다.
고통스러운 일도 한때일 뿐입니다.
우리가 100m 달리기 할 때
30~40m에서 장애물을 만났다고 포기하면 안 됩니다.
남은 세계가 있는데
이 한때를 극복해야 합니다.
그러면서 내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깨달아야 합니다.
저는 늘 행복할 때는 매달리지 말고
불행할 때는 받아들이라고 강조합니다.
대신 늘 주시해야지요.
그러면 행복과 불행에 좌우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마음으로 보고 듣는다 ___________
< 보조국사 수심결 >
저의 입장에서 본다면 어떤 것이 고요하고
신령스럽게 아는 영지의 마음(空寂靈知之心)입니까?
그대가 지금 나에게 묻는 바로 그 마음이
그대의 공적(空寂)하고 신령스럽게 아는(靈知) 마음이다
어째서 안으로 돌이켜 보지 않고 밖에서 찾는가
내가 이제 그대의 능력과 근기에 따라
바로 본래 마음을 가리켜 깨닫게 할테니 그대는
마음을 깨끗이 하고 내 말을 잘 들어라.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보고 듣고 웃고 말하며 성내고 기뻐하고
옳고 그른 온갖 행위와 동작은
필경 무엇이 그러게 하도록 하는가 말해 보아라
만일 육신이 그렇게 한다면
사람이 갑자기 죽어서 몸은 아직 썩지 않았는데
어째서 보지 못하고 귀는 듣지 못하고
코는 냄새를 맡지 못하고 혀는 말하지 못하고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손은 잡지 못하고 발은 걸어 다니지 못하는가?
그러므로 보고 듣고 움직이는 것은
그대의 본래 마음(本心)이지 육신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이 육신을 이루고 있는
흙(地)·물(水)·불(火)·바람(風) 등의 네 가지 요소인
사대(四大)는 그 성질이 실체가 없고
여러 가지 요소가 인연화합(因緣和合)으로
잠시 모습을 갖추고 있는 공(空)의 상태이므로
마치 거울 속에 비친 영상과 같고 물위에 비친 달과 같이
잠시 모습을 나타내다가 없어질 허망한 것이다.
이러한데 어떻게 육체가 항상 뚜렷이 알고
밝아서 한량없는 묘한 작용을 일으킬 수 있겠는가.
견고한 감옥 ___________
< 법정 스님 >
가장 견고한 감옥은
우리 스스로 만드는 것이다
어떤 일을 망치게 하는
가장 큰 원인은 두려움이다
이 두려움이
갖가지 변명거리를 만들어 내며
우리를 뒷걸음치게 만든다
이 두려움은
누가 만들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마음의 세계 ___________
< 청화 스님 >
우리는 흔히 말하기를 너그럽고 밝아서 트인 마음을 하늘같이 넓은 마음이라 찬양하고 옹졸하고 막막한 마음은 바늘귀만도 못한 마음이라고 꾸짖고 빈축하곤 합니다.
그런데 우리 인간이 느끼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일체 인식작용이나 무의식 등 그 무엇이든 마음을 떠나서는 아예 이루어 질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화엄경에도 일체 만법이 오직 마음뿐이요
마음 밖에 따로 아무것도 있을 수 없 거니
마음과 부처님과 중생의 이 세가지가 차이가 없느니라.
(三界唯一心 心外無別法 心佛及衆生 是三無差別) 고 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비단 사람뿐 아니라 일월성수(日月星宿)나 삼라만상 일체 존재가 마치 바람따라 물 위에 맺혀지는 거품과도 같이 마음 위에 이루어진 현상에 불과하기 때문에 경(經)에도 우주만유는 오직 마음으로 이루어졌다고 하여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하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 중생이 무지와 무명(無明)에 가리어 일체만유의 실상(實 相)인 마음 곧 불성(佛性)을 깨닫지 못하고 그 현상인 상대적인 물질세계만이 실재(實在)한다고 집착하기 때문에 한량없는 번뇌망상을 일으켜 현대와 같이 불안하고 혼란한 사회현상을 자아내게 되는것 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중생들이 생활하는 경계를 법화경에서는 그 번뇌의 정도에 따라서 십법계(十法界)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우선 번뇌와 업장이 가장 무거운 지옥세계로부터 일반 동물인 축생세계
매양 굶주리고 헤매는 귀신세계
힘이 세고 싸움만을 일삼는 아수라(阿修羅)세계
그리고 선악(善惡)이
거의 상반되고 사뭇 분별이 많은 우리 인간세계
선량하고 안락한 천신(天神)들의 천상세계 등
아직 마음의 진리에 어두운 여섯갈래(六道)의 범부세계와
마음의 실상을 깨달은 성자(聖者)의 세계로서 스승에 의지하여 깨달은 성문(聲聞)세계
스스로 명상을 통하여 깨달은 연각(緣覺)세계
자기 뿐 아니라 모든 중생을 깨닫게 하기 위하여
육바라밀
(六波羅蜜: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을 닦는 보살세계
그리고 지혜와 자비 등 일체공덕을 원만히 갖춘 바로 진여불성(眞如佛性) 자체인 부처님 세계들입니다.
그러나 이와같은 구분은 우리 인간의 차원에서 분별한 방편적인 구분에 지나지 않으며 마음의 본성인 불성(佛性) 곧 우리의 본래 면목을 깨달은 성자의 청정한 안목에는 위에서 열거한 지옥에서부터 부처님의 세계까지가 다 한결같이 미묘 청정한 불성으로 이루어진 불국토(佛國土) 아닌데가 없습니다.
그것 일체물질의 근본요소인 전자(電子)나 양자(陽子)나 중성자(中性子) 등과 소립자(素粒子)로부터 동물과 식물과 광물 그리고 하늘의 뭇별들에 이르기까지 모두 한결같이 마음이라 하는 가장 순수한 생명 에너지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일체존재의 근본에 통달한 대아(大我:성자)의 경계에서는 천지만물이 오직 마음뿐이요, 그 마음이 바로 부처님 (진정한 의미의 하나님이기도 함)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법화경 비유품에 이르기를
어떤 가난한 사람이 부자인 친구집에 가서 술에 취하여 잠이 들었는데 주인 친구는 요긴한 일이 생겨 외출하게 되자 그는 친구의 옷속에 보배를 매어주고 떠나게 되었다.
이윽고 잠을 깬 가난한 사람은 그 사실을 모르고 하릴없이 유랑하면서 간신히 세월을 보내다가 얼마 후에 우연히 옛 친구를 만나게 되어 그 말을 듣고 그 보배의 덕택으로 단번에 빈궁한 신세를 벗어나
행복하게 되었다 는 법문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리 인간이 무지와 번뇌에 사로잡혀 그지없이 헤매다가 다행히 성자의 가르침을 만나서 자기가 본래부터 갖추어 있는 불성을 깨닫고 애꿎은 인생고(苦)를 벗어나 영생의 안락을 얻게되는 간곡한 비유담인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 인간의 본성은 완전 무결한 불성이기 때문에 우리들이 본래 성품인 불성을 등지고 현상적인 물질만을 집착하여 탐내고 증오하는 생활을 되풀이하는 한 마치 그리이스 신화에 나오는 사뭇 허기진 탄타로스(Tantalos)의 사무친 기갈과도 같이 인간존재의 처참한 고난의 형벌은
생활 수행법 ___________
Note
불교 수행의 요체는 나를 변화 시키는 것이다.
부처님 가르침과 수행법의 핵심을 뽑아 다섯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첫째 - 一切(일체)를 다 받아 들이라.
수용하라. 내 삶에 등장하는 그 어떤 사건도
사람도 모두 온전한 진리의 목적을 가지고 온다.
이 세상에는 정확히 필요한 일만이
정확히 필요한 바로 그때에 찾아온다.
또한 그 모든 것들은 좋은 것이든 싫은 것이든
모두가 나를 돕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온다.
그 모든 일들이 부처의 크나큰 자비이다.
그렇기에 모든 것을 대 긍정으로 받아들일수 있어야 한다.
좋다고 너무 붙잡지 않고 싫다고 버리려 애쓰지 않고
다만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면 괴로울 일이 없다.
삶을 전체적으로 받아 들이라.
둘째 - 執着(집착)을 버려라.
놓아라 비워라 모든 괴로움의 원인은 집착에 있다.
집착이 있으면 반드시 그곳에는 괴로움의 씨앗이 있다.
돈도 명예도 사랑도 소유도 성공도 가치관도 집착할 것이 못된다.
모든 수행의 핵심 모든 행복한 삶의 핵심은 무집착에 있다.
변한다는 이치를 받아들이면 집착할 것이 없음을 알게 된다.
아상을 집착을 욕망을 소유를 생각을 놓고 비워라.
비우면 채워지고 놓으면 잡히며 버렸을 때 전체를 잡을 수 있다.
텅비면 충만하다.
셋째 - 지금 이 순간에 깨어 있으라.
觀(관)하라. 생각을 과거나 미래로 내보내지 말라.
오직 지금 이순간을 지켜라.
내 생각 느낌 몸 호흡 그리고
대상을 아무 판단없이 다만 지켜보고 관찰하라.
지금 이 순간에 깨어 있을 때
비로소 내 안 깊은곳의 佛性을 일깨우게 된다.
깨어있는 관수행이야말로 깨달음의 요체다.
넷째 - 부처님께 모든것을 맡긴다.
자연의 흐름에 맡긴다.
내가 무엇을 한다는 생각을 버려라.
나는 없다. 오직 본연의 성품이 있을 뿐
내가 한다고 하면 내가 괴롭고 즐겁지만
모든 것을 맡기면 괴로울 것도 즐거울 것도 없다.
늘 여여하게 살수있다.
모든것을 맡기고 자연스럽게 살자.
자연의 흐름 진리의 흐름에 네 몸을 맡기라.
일을 할 때도 자유스런 분위기와 흐름을 타고
자연스럽게 되어지는 것이 가장 좋다.
다섯째 - 사랑과 자비를 베풀라.
나누어 주라. "내것"이란 없다.
잠시 나에게로 흘러왔다가 흘러갈 뿐이다.
그것을 흐르도록 두라. 내 안에 가둬 쌓아두지 말라.
소유든 사랑이든 마음이든 가르침이든 이웃과 함게 나누라.
끊임없이 자비와 사랑을 베풀라.
베풀어도 사실은 베푼 것이 아니라
잠시 이쪽에서 저쪽으로
인연따라 정확히 필요한 곳에 가 닿을 뿐이다.
참된 앎은 곧 존재를 변화시킨다.
회자정리(會者定離) ___________
<안병욱 명상록>
인생(人生)은
너와 나와 만남인 동시에
너와 나와의 헤어짐입니다.
이별 없는 인생이 없고
이별이 없는 만남은 없습니다.
살아 있는 자에게는
반드시 죽음이 오고
만나는 자는
반드시 헤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 아닙니다.
떠난다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정든 가족 정든 애인
정든 친구 정든 고향 정든 물건과
영원히 떠난다는 것은
참으로 괴롭고 슬픈 일입니다.
우리는
살아가는 동시에 죽어가는 것입니다.
죽음은 인간 실존의 한계 상황입니다.
피하려야 피할 수 없고
벗어나려야 벗어날 수 없는
운명적 상황이요 절대적인 상황입니다.
그래서 누구나
죽음 앞에서면 숙연해지고 진지해집니다.
우리는 이 세상을
언제고 떠날 준비를 하면서 살아야합니다.
언제 죽더라도 태연자약하게 죽을 수 있는
마음의 준비는 얼마나 중요한 일입니까?
언제 떠나더라도 조용하게 떠날 준비를 하는
생사관을 확립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 합니다.
우리는 영원히 사는 인생이 아닙니다.
그리고 죽음은 예고 없이
그리고 예의 없이 우리를 찾아옵니다.
죽음의 차가운 손이
언제 나의 생명의 문을 두드릴지는 모릅니다.
그때는 사랑하는
나의 모든 것을 두고 혼자 떠나야 합니다.
인생에 대한 집착과
물질에 대한 탐욕을 버리고
지상의 것에 대한
맹목적인 욕심을 버려야합니다.
오늘이 어쩌면
나의 삶이 마지막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주어진 오늘에 감사하며
최선을 다하는 삶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비워야 채우지 ____________
서경(書經)에 이르기를
가득 차서 넘쳐 흐르면 손실을 가져오고
겸손하면 이익을 얻게 된다.
차면 기울고 기울면
다시 차는 게 세상의 이치다.
모든 것을 다 가지겠다고
꿈꾸는 사람이 있다면
먼저 무엇이건 비워져야
다시 찰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기 바란다.
옛날에 수탉 두 마리가
암탉 한 마리를 서로 차지하려고 싸우고 있었다.
얼마 후 약한 놈이
힘센 놈에게 쫓겨 덤불 속에 숨어버렸다.
의기양양해진 힘센 수탉은
높은 담에 날아올라 활개를 치면서 큰소리로 울었다.
이때 갑자기 독수리
한 마리가 나타나더니 그 놈을 채어가 버렸다.
덤불 속에 남은 수탉은
절로 암탉을 얻어 같이 살게 되었다고 한다.
성(盛)하고 가득 찬 것이
반드시 좋은 것만은 아니다.
모르고 사는 인생 ___________
우리의 삶은 어떤 것일까?
우리는 인생을 궁금해 하며
해답을 찾아 헤매다 일생을 마칩니다.
한 평생을 목숨 걸고
그 해답을 찾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우리의 삶은
나고 늙고 병들어 죽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일대사 인연을 해결하는 과정이라고 말합니다.
말은 쉽게 하지만
태어난다는 일만을 생각해도 고생스럽고 힘든 일입니다.
우리가 살아 가면서 겪는
작은 상처에도 사느니 못사느니 합니다.
그리고 큰 병고에 시달리든가
평생을 함께 의지하던 이의 이별과 죽음에 부딪쳤을 때
오는 고통과 마음의 아픔은 눈물로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돌아보면 인생의 많은 시간은
즐거움 보다 괴로움과 고통으로 얼룩진 나날입니다.
환희의 시간은 기억에 없고
오늘도 정해진 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왜 사는지
이 길을 왜 가야하고 그 끝에는 무엇이 있는지
끝도 모를 인생을 그저 안개 낀 다리를
건너는 사람과 같이 어림 짐작으로 살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인생이 무엇인지 모르면서
인생을 다 알고 있는 듯이 웃고 즐기며 삽니다.
이렇게 인생을 모르면서도 그저
살아가기만 하는 인생 역정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닐 것입니다.
모르고 사는 삶을 알고
살아가는 삶으로 바꾸어 주는 가르침이 바로 불교입니다.
즉 죄를 지어도 그것이 죄인 줄
모르는 사람은 계속 그 행동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죄를 저지르면 벌을 받고 나와 남에게
아픔을 준다는 사실을 알면다시는 그 일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불교는
우리에게 어떻게 태어났고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해답을 주고 있습니다.
부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조용한 광야를 걷고 있었다.
그 때 갑자기 뒤에서 성난 코끼리가 달려왔다.
그는 코끼리를 피하기 위해 마구 달리기 시작했다.
한참 달리다 보니
몸을 피할 작은 우물이 있어 급한 나머지 그 속으로 들어갔다.
우물에는 마침 칡넝쿨이 있어 그것을 타고 밑으로 내려갔다.
한참 내려 가다가 정신을 차리고 아래를 내려다 보니
밑에는 다시 무서운 독사가 입을 벌리고 있었다.
그래서 다시 위를 쳐다보니
코끼리가 아직도 우물 밖에서 성난 표정으로 서 있었다.
그는 할 수 없이 칡넝쿨에만 매달려 목숨을 부지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달그락 달그락 소리가 나서 주위를 살펴보니 위에서
흰 쥐와 검은 쥐가 번갈아 가며 칡넝쿨을 갉아 먹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뿐만 아니라 우물 중간에서는
작은 뱀들이 왔다갔다 하면서 사람을 노리고 있지 않은가.
온 몸에 땀이 날 정도로
두려움에 떨며 칡넝쿨을 잡고 위만 쳐다보고 있는데
마침 어디선가 벌 다섯 마리가 나타나 칡넝쿨에 집을 지었다.
그러면서 꿀을 한 방울씩 떨어뜨려 주는데 그는 꿀 맛에 취해 왜 꿀을 더 많이 떨어뜨려 주지 않나 하는 생각에 빠져 자신의 위급한 상황을 잊고 말았다.
이 이야기에서
코끼리는 무성하게 흘러가는 세월을 의미하고 칡넝쿨은 생명
검은 쥐와 흰 쥐는 밤과 낮을 의미합니다.
작은 뱀들은 가끔씩 몸이 아픈 것이고
독사는 죽음을 의미하며,
벌 다섯 마리는 인간의 오욕락(五慾樂)을 말합니다.
오욕이란
재물에 대한 욕망
이성에 대한 애욕
먹을 것에 대한 탐욕
명예에 대한 욕망
편안함의 추구를 말합니다.
이와 같이 자신의 처지를 모르는 채
탐욕의 꿀맛에 취해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욕망이 없다면
인생의 의미가 없지 않느냐고 할 것입니다.
인생에서 욕망으로 인해
성취하는 것보다 욕망 때문에 잃는 것이 더 많습니다.
눈 앞의 이익에 집착하는 욕심은 지혜를 흐리게 합니다.
이러한 장애를 없애고 참된 지혜를 발현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 글을 읽는 그대와 인연 ___________
지금 이 글 속에 나도 있고
이 글을 읽는
그대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글 속에서 그대는 꽃이 되고
나는 한 마리 나비가 됩니다.
이 글을 읽는 그대는 나무가 되고
나는 그대를 휘감는 바람이 됩니다.
글 속에서
그대는 그리움이 되고
나는 그대를
그리워하는 기다림이 됩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나를 느끼고
그대의 가슴속에 담아둘 수 있다면
난 그대의
시상이 될 수 있을 겁니다.
지금 이 글을 적으면서
이 순간만이라도
그대와 나는 함께 하는 것입니다.
그대를 사랑해서
인연이라 말하며
보이지 않는 곳에서
그리움 하나 만들어 갈 뿐입니다.
글 속에서
우리는 사랑을 하고
그리워하고
보고파 할 수도 있습니다.
하늘이 허락한
인연이 아니라면
만남 또한 없을 겁니다.
만약에
흐르는 시간 속에서
인연이라 한다면
내 영혼을
불사른다 해도 아깝지 않을
그런 사랑을 할 수 있을 겁니다.
가난한 사랑이라 해도
좋은 그런 사랑이라면
우린 글 속에서
행복해 할테니까요.
글 속에서
그대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을지라도
마음 하나만은 언제든
그대에게 달려갈 수 있습니다.
글 속에서
그대를 그리워하며
그대 사랑을
가슴으로 느껴도 될런지요?
아무도 모르게
소리 없는 미련이지만
글 속에서
그대를 사랑하고 싶습니다
글 속에서는
그대와 나 함께 하면서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싶습니다.
인연이라 말하며
이 글을 읽는 동안이라도
나의 그대가 되어 주셨으면 합니다.
내가 언제나 그리워 할
그런 님이 되어 주시기를 .......
< 옮긴 글 >
우리의 자리는 어디인가? ___________
< 함께 나누는 기쁨과 슬픔 >
며칠전에 친구 하나를 저세상으로 보냈다.
나는 친구라 생각했는데
그사람은 나를 친구라 생각하지 않았나 보다.
맘이 아프다 못해 미어진다.
항상 뱅긋이 웃고 다녀서
즐겁게 행복하게 사는 줄 알았는데
그 친구는 속으로 병이 들어
그 병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세상을 등진것이다.
몇 해전 나 역시 그친구와
같은 증상으로 많이 괴로웠던 기억이난다.
다른 사람들은 죽을 각오로 살면
이 세상 왜 못사냐고들 위로아닌 위로를 하지만
막상 본인들이
그 증상이 된다면 다 같은 맘을 먹게 될것이다.
남에게 하는 말은 다 들 그렇게 쉽게 표현하지만
오죽했으면 죽음이라는 긴 여행을 떠났겠는가?
나도 아파트 베란다에 여러번 나가보았다.
이 세상을 등져 볼려고.....
하지만
내가 낳은 토끼같은 내 자식
그애들이 무슨 죄가 있는가.
이 엄마가 가고 나면
살아서도 최선을 다해 사랑해 주지 못했는데
죽어 없어지면 그 애들은 다시는
이 엄마의 덜된 사랑이라도 못받게 되는게 아닌가.
아무 생각없이 간다면야 무슨 미련이있겠는가?
한 가정이라는 함정이
행복하진 못하더라도
그럭저럭 순탄한 항해를 해 간다면
자식들에게는 큰 충격은 주지 않고
언젠가 가고자 하는 목적지에 도착하지 않는가.
토끼같은 내 새끼들 학교 다녀오면서
엄~마 하고 부르면서 현관문을 박차고 들어올때의
엄마들의 행복한 맘을 그친구는 다시는 못 본다.
그 자식들 역시 엄마라는 단어를
불러보지만 허공에서 맴도는 메아리일게다.
큰 녀석이 학교갔다오면서 그런다.
그친구 아들이 내 아들의 친구인데 너무 외로워 보인다구...
이제 겨우 일주일 엄마의 자리가 비었을 뿐인데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표가 난다는것을
난 지금 절실히 실감을 하고있다.
그 친구의 뱅긋이 웃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부디 이승에서의 슬픔을 저승까지 가지고 가지말고
좋은 곳으로 가서 편히쉬도록 빌어 주고싶다.
그리고 그 자식들을 영혼으로나마 잘 보살펴 주길 바래본다.
사람들은 그런다.
산 사란은 어떻게든 살아간다고. 맞는 말이다
가끔씩 그사람의 빈자리는 있겠지만
살아있는 자는 어떻게든 살아가게 돼있다.
내가 요 며칠 사이에 정신이 번쩍든다.
내아이들 그 이쁜 놈들이 내눈에 들어 온다.
그 녀석들이 투정하는것들도
이쁘게 보이니 이게 에미의 맘인가보다.
내가 괴롭다고 내 이쁜아이들에게 소홀해서는 안되겠다.
공부야 좀 덜하면 어떠랴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자라면서
이 엄마를 필요로 하고 있는데 .... 최선을 다해야겠다.
가정이라는 이 함정이
그 어떤 폭풍우와 장애물을 만나더라도
난 훌륭히 극복하여 마지막 종착지에 깃발을 꽂으리라.
15년이라는 세월의 결혼 생활동안 마냥 행복하진 않았지만
이 정도면 나는 무난한 삶을 살았다고 자부한다.
무뚝뚝해서 가끔씩은 불만이지만
가정을 소중히 생각하는 남편이 있고
달덩이 같은 내 두 아들이 있어 난 든든하다.
나 역시 100점짜리 주부는 아니었을게다.
내 허물은 묻고 남의 헛점만 본다면
우리는 영원히 행복할수 없을게다.
내가 조금만 노력한다면
우리식구 모두가 행복해 한다면 난 열심히 노력하리라.
어제 다르고 오늘 다른
가을 들판의 바람과 산등성이의 단풍을 보면서
나도 인생의 황혼에는 멋진 단풍으로 남고 싶다.
가화만사성이라는 말을
머리속 깊이 생각하면서내 가정을 지키리라.
지금까지의 맘속의 방황에서
이제는 내 가정에 안주하리라.
내 가족을 사랑하리라.... . . .
< 이글은 MBC라디오 여성시대에서 스크랩한 글입니다 >
소 유 ___________
< 법정 스님 >
크고 많은 것
그것은 허(虛)한 것이다
소유를
꼭 없어서는 안 될 것으로
자제하고 제한하는 것이
우리의 정신을
풍요롭게 하는 길이다
적게 가져야만
더 많이 얻게 된다.
완벽주의 ___________
< 법정 스님 >
완벽주의 자
그에게는 인간성이 없다
일에서는 완벽주의 자가
빛을 발할 수 있겠지만
인간관계에서는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그래서 완벽주의 자는
함께 일하는 동료로서는 좋겠지만
친구와 연인으로는
그가 꺼려지는 법이다.
부처님 최후의 유훈 ___________
부처님은 80세로 열반에 드시기까지
만 45년 동안 갠지스 강의 중허리 부분을 중심으로
광막한 인도 대류을 누비면서 위대한 가르침을 전파하였다.
부처님은 열반에 드시기까지 설법
교훈적 행동 또는 무언의 가르침으로써
광막한 인도대륙 곳곳의 많은 중생들을 교화하였다.
어느때 부처님은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앞으로 석달 후 여래는 열반에 들리라.
제자들은 슬퍼하였다.
슬피 우는 제자들을 뒤로 하고
부처님은 바이 샬리에서 최후의 여름 안거를 지냈다.
그곳에서 모진 여름 더위를 지내고
발걸음을 쿠시나가라로 옯겼다.
쿠시나가라는 인도 중북북에 있는작은 도시로
부처님께서 그곳으로 가시는 도중에
바카리와 춘다를 교화한 일은 유명하다.
바카리라는 제자가 임종을 앞두고
부처님을 꼭 뵙고자 청했다.
그래서 부처님은 바카리의 집으로 갔다.
바카리는 감격하였다.
부처님, 저는 이제 이 세상을 하직할 모양입니다.
이렇게 누추한 곳에 왕림해 주시니
정말 저로서는 더없는 영광입니다.
이렇게 말하고 기븜의 눈물을 흘리자,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바카리여, 나의 늙은 몸을 본다 한들 모슨 소용이 있으랴
너는 이렇게 알아야 한다.
나를 보는 자는 진리를 보고 진리를 보는 자는 나를 본다고...
부처님이라는 인격은 진리와 동일하다.
그래서 깨달음이 있는 곳이 부처님이 있는 곳이다.
다시 말하면, 부처라는 인격이 따로 있지 않다는
선언이라 할 수 있으며 또한 부처라는 인격을
신격화하지 않는 인격적 표현이기도 하다.
대장장이 춘다가 올린 공양은
독버섯이 었다고 불전이 전한다.
물론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고
부처님께 맛있는 공양을 대접한다는것이 잘못되어
부처님이 심한 고통을 겪은 흔적들이
<<대반열반경>이나 <<열반경>등에 나타난다.
그때 아난이 부처님 곁에 있었는데
부처님이 혼절하여 당황했었던 흔적들이 불전에 보인다.
그러나 부처님은 그 고통을 극복하고
묵묵히 쿠시나가라로 발걸음을 옮기셨다.
부처님은 그림자처럼
부처님 주변을 맴돌던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아난이여, 저 사라쌍수 밑에 침상을 만들어 다오.
등이 몹시 아프구나.
아난 존자는 슬피 울면서 부처님을 위해 침상을 마련하였다.
너무 밑에 낙엽을 깔고 그 위에 담요를 덮은
초라한 침상을 만들었다.
<열반경> 에서는 그때의 광경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부처님은 마치 늙은 사자처럼
오른쪽으로 옆구리를 땅에 대고 누우셨다.
쿠시나가라 주변의 마을 사람들은
이 위대한 성인의 최후가 멀지 않았다는 소식을 듣는다.
많은 제자들이 슬피울면서 부처님의 주변에 모여들었다.
그때 부처님은 말씀하셨다.
나는 알고 있는 모든 것
내가 가르칠 수 있는 모든 것을
그대들에게 보여주고 가르쳤노라.
그래도 아직 미심쩍은 것이 있으면 내게 서슴지 말고 물으라.
그러나 제자들은 차마 물을 수가 없었다.
모두들 슬픔을 삼키면서 부처님 주위에 옹립하고 있었다.
아난이 말씀드렸다.
부처님이시여, 이 자리에 있는 저희들은 모두
한 점 티끌도 없이 부처님의 가르침을받들고 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최후의 유언을 하였다.
비구들아. 너희들은
물과 기름처럼 서로 겉돌지 말고 물과 물처럼 화합하라.
만약에 내가 간 후에
교단의 지도자가 없어졌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너희들은 저마다 자기 자신을 등불로 삼고
내가 가르친 진리를 등불로 삼아 이 세상을 살아가야 하리라.
모든 것은 덧없다
부지런히 열심히 정진하라
위의 마지막 구절은
자등명 법등명(自燈明 法燈明) 이라고 한역되는데
이것이 부처님 최후의 유훈이었다.
부처님의 최후 이것을 열반이라고 부른다.
불가에서의 열반 즉 니르바나(nirvana)는
단순히 죽음을 의미한다기보다는 궁극적인 경지를 의미한다.
열반 자체가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완벽한 경지의 체득이라는 말로 쓰인고
인생의 세가지 여유로움 ___________
사람은 평생을 살면서
하루는 저녁이 여유로워야 하고
일년은 겨울이 여유로워야 하며
일생은 노년이 여유로워야 하는
세 가지 여유로움이 있어야 한답니다.
그것을 3여(三餘)라고 말한답니다.
농부의 삶을 예로 들면
고된 하루 농사일을 끝내고
저녁 호롱불 아래 식구들과 도란도란
저녁상을 받는 넉넉함이
첫 번째 여유로움이고
봄부터 부지런히 밭을 갈고 씨앗을 뿌려
풍성한 가을 걷이로 곳간을 채운 뒤
눈 내리는 긴 겨울을 보내는 충만함이
두 번째 여유로움이며
아들 딸 잘 키워 결혼을 시키고
경제적으로 넉넉한 여유로움 속에서
부부가 함께 건강하게 지내는
노년의 다복함이
세 번째 여유로움이라고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행복하길 원합니다.
행복의 기준은 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행복의 기준은 달라도
여유로운 마음이
행복의 지름길이라는 것은 누구나 다 압니다.
여유를 모르는 사람은
배려하는 마음이 그만큼 적다고도 합니다.
< 옮긴 글 >
고집스런 생각이 삶을 제한시킨다 ___________
이것만은 전적으로 옳다고 생각하며
절대적으로 고수할 수 있다고 여기는
신념이나 생각 심지어 종교적 교리가 있다면
그것은 당신의 삶을 제한하며 구속시키고 만다.
강하게 옳다고 집착하는 생각들은
그것이 아무리 정말 옳을지라도
당신의 삶을 그 틀 속에 가두는 역할을 할 뿐이다.
특정한 신념과 틀에 박힌 생각들로 인해
당신의 삶은 그 생각들에 가두어진다.
스스로 자신의 삶을
제한하고 구속하며 가두는 것이다.
모름
불확실함
열어 놓음
집착 없음
안정적이지 않음
정해진 것 없음
모든 가능성을 받아들임이라는 덕목들이
자칫 불완전해 보이고 위태로와 보일지 모르겠지만
이런 것들이야말로
우리 삶에 꼭 필요한 것들이다.
보통 사람들의 삶은 큰 변화 없이
비슷비슷한 상황들의 연속인 경우가 많다.
왜 그럴까?
스스로 그것을 선택했기 때문이다.
새로운 변화의 가능성과
놀라운 삶의 신비로운 경험들을 스스로 닫아 버렸기 때문이다.
생각이 고착되어 있거나
특정한 신념 속에 갇혀 있게 되면
그것이 삶의 경험을 제한하고 축소하며
늘 그렇고 그런, 똑같은 삶만을 보여주는 것이다.
내가 안다고 여기는 것들 속에 스스로 갇히게 되고 만다.
안다는 생각 대신에
겸손하게 모른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게 될 때
그동안 내가 전혀 알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삶의 경험과 지혜가
끊임없이 나를 깨닫게 해 주기 위해 다가온다.
안다고 고정지어 놓고,
그 아는 생각들 신념들의 틀 속에서만 살아가게 되는 삶은
얼마나 지루하고, 반복적이며, 나약해 지고 말 것인가.
자신의 무한한 잠재적 힘과 지혜와 사랑을 스스로 가두지 말라.
앞으로의 당신 삶에 등장하게 될
모든 가능성을 향해 마음을 열어 놓아 보라.
삶이 확정적이고 안정적으로
계획 가능한 설계 가능한 영역 속에 머물기를 바라지 말라.
삶의 불확실성이 내포하고 있는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성을 보라.
삶이 명료하고 분명하며 상상 가능할 필요는 없다.
삶을 계획하고 설계해 나가고 있는
그 순간에 조차 사실 그것은 분명한 것들일 수 없다.
모든 삶의 계획과 설계는 임의적인 것이지
실제 그렇게 될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 않은가.
단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던
감히 꿈꾸지도 못한 그 모든 놀라운 삶의 신비들이
당신 삶을 환하게 비추며
들어오는 것들을 다만 막지만 않으면 된다.
그저 우리는 가슴을 활짝 열고 닫아 두지 않은 채
모든 가능성들이 파도쳐 들어오고 나갈 수 있도록
허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뿐이다.
어떤 생각도 절대적으로 사수하려 하지 말고
안다는 어리석은 착각에서 놓여나며
특정한 삶의 계획에 스스로를 가두지 말라.
바로 그 때
불확실함을 받아들일 때
근원적 삶의 방향은 가장 확실해지고
모른다는 것을 인정할 때
깊은 내면에서는 아는 지혜의 빛이 환하게 비추어지며
무집착과 생각 없음의 공간으로 저어갈 때
사실 당신은 가장 강력해진다.
나이 들수록 아내에게 조심해야 할 13가지 ___________
1. 음식이 짜네 싱겁네 함부로 말하지 마라
그나마 계속 얻어먹으려면 주는 대로 먹어야 하느니라.
2. 운동을 게을리 하지 마라
아내가 하라는 대로 매일 산책도 하고 계속 움직이면
애완견 대신 데리고 다녀줄지도 모른다.
3. 수염을 자주 깍아라
노조 조합장이냐고 쫑코 듣기 전에.
4.머리를 자주 감고, 빗어라
까치집 지었다고 머리칼 잡아당기기 전에.
5. 우물이 말랐느니 어쩌니 투덜거리지 마라
두레박 줄이 짧은 줄은 모르고 뭔 헛소리냐고
다시는 우물 근처에 오지도 못하게 한다.
6. 화장실 변기에 서서 소변 보지 마라
집 화장실 못 쓰게 하고 마트 화장실이나
공중뒷간으로 출장 보내는 수가 있다.
7. 가급적 소변 줄기를 강하게 해야 하느니라
한물간 표를 내지 않기 위해.
8. 국이나 찌개 국물을 흘려서 오지랖 더럽히지 마라
국도 찌개도 없는 마른반찬으로 메뉴가 바뀔 수 있다.
9. 가급적 침묵하며 살아야 한다
특히 마님 TV 연속극 볼 때는 신경쓰이지 않게
조심해야 하느니라.
10. 가급적 세 끼를 마님 신경쓰지 않게 해결해야 한다
아침은 직접 차려먹고, 점심은 나가 먹고
저녁은 일찍 들어와 있다가 먹으랄 때 얼른 들어앉아 먹고….
11. 전깃불을 함부로 켜지 마라
돈 얼마 벌어오느냐고 불평 듣기 전에.
12. 있는 듯 없는 듯, 죽은 듯이 살아야 하느니라
주면 먹고 안 주면 안 먹는 게 오래
버티는 상책이기 때문이니라.
13.목욕자주해서 정갈하게 하고 향수 살짝 풍기고
칫솔질 식후에 꼭 해야 하느니라.
항상 몸을 깨끗이 하지않으면 옆에도 못오게한다.
< 옮긴 글 >
마무리는 무슨 뜻입니까 ? ___________
< 법정 스님 >
마지막이 마무리가 아닙니다.
순간순간 마무리하고 새 출발해야 합니다.
산다는 것은 순간순간입니다.
행복과 불행도 순간이고
선한 생각과 악한 생각도 순간에 일어납니다.
순간을 참지 못해 뛰어내리기도 하지요.
그래서 순간을 놓치지 않아야 합니다.
순간순간 자신답게
자기 삶의 주인이 돼야 합니다.
육신은 정신세계의 심부름꾼 ___________
누가 말을 하게 하고 누가 가고 오게 하는지
생각해보면 자기의 근본 믿지 않을 수 없어 ...
[ 문 ]
마음공부의 길
스님, 속가에서 불법을 실천을 해나가다 보면 왠지 나만 손해를 보는 것 같고 남들로부터 어리석은 사람이 되는 것 같습니다. 나와 남을 둘로 보지 않고 모든 것을 내 탓으로 돌리고 살아가야만 하는 이 마음공부의 길을 언제까지나 끝없이 가야만 하는 것입니까? 스님께서 가르쳐주신 가르침을 실천하면서 살아가는 이 길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가르침 바랍니다.
[ 답 ]
그래서 옛날에 길을 만들어놓고 거기다 써 붙이기를, 하나는 길이 험 돌 사닥다리 골짜기로써 험하다고 써놓고 한 군데는 아주 대로(大路)로 좋은 길이라고 써놓고 또 한 군데는 가다보면 그냥 춤도 추고 술을 마시는 주막도 있고 쉴 자리도 많고 좋은 길이라고 써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 세 길을 가만히 보면은 공부에 뜻도 없는 사람이 볼 때는 대로가 좋다고 갈 거고 또 공부에 뜻이 있는 사람은 내가 대로를 찾으려고 왔느냐? 험하더라도 내가 갈 길은 꼭 가야만 하지 하고 험하지만 바른 길을 택해서 갈테고, 또 그냥 논다니처럼 그런 사람은 뭐 젊음이 십일홍 넘어가면 다 없어질 텐데 아니 놀고 어떻게 가랴 그러고선 험한 길을 되돌아서 가고 그럴 거예요.
그렇게 세 길로 나누어져 있는데 수행자가 택한 길은 아주 험악하고 불쌍한 사람들이 죽은 해골도 그냥 널비하게 있고 불쌍하게 죽은 축생들의 해골도 널비하게 늘어져 있고, 귀신도 많은 그런 길이에요
아주 소로(小路) 그런 길을 걷고 있는데 가면서 모조리 집어먹지 않고는 해결할 수가 없지요. 둘이 아니다 하면 집어먹는 거니까. 둘이면 집어먹을 수가 없어요. 안 그래요? 그러니까 모조리 집어먹고 가다보면은 길은 빨라지고 정말 나를 수도 있는 길, 그냥 떠서 가는 길이 생기지요.
그렇듯이 만약에 지금 우리 앞길에 별의별 것이 다 쌓여있다고 한다면 축생이나 아귀 축생 아수라 차원이 낮은 것들이 죽어서 쭉 있으면은 이걸 치우고 길을 가야만 하겠죠?
그래서 정말 참 선의 길은 아주 좁고 천야만야하고 좁은 골짜기고, 길이 험해도 가는데 사람이 죽어서 해골이 이리저리 구르고 그러는 데가 바로 우리 지금 공부하고 가는 길이죠.
그러니 속지 마십시오.
어디까지나 자기 자신에 자기가 속지 마시고.
우리가 지금 공부하는 것은
말 하면도 하지 않는 법
눈으로 보면서도 보지 않는 법
귀로 들으면서도 듣지 않은 법
길을 걸어 다니면서도 걷지 않는 법
이 네 가지를 다 한데 합쳐서 놓는 법이며 바로 이것이 삼매에 드는 법이며 참선이며, 참 행이며, 도 행이며, 이것이 바로 인간이 자기를 깨우쳐서 광대무변한 무쌍한 법을 들이고 내는데 손색이 없고 걸림이 없고 여여함을 뜻하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가 때에 따라서는 꿈에 뭐가 보이든 낮에 서로 상대가 생기든 어떠한 것을 보더라도 굴하지 말고 어떠한 걸 보더라도 속지 마시고 아! 저것도 모를 때 내 모습이겠지 하고 이해를 하시고 또 때에 따라서는 꿈을 잘못 꾸었다 해도 화해서 모습을 보이는 게지 저것도 내 모습이겠지
이렇게 자꾸 하나로 돌린다면 우주도 바로 축이 있어야 돌아가고 지구도 축이 있어야 돌아가듯이 맷돌도 축이 있어야 돌아가고 모든 기계도 축이 있어야 돌아가듯이 우리 인간도 축을 빼놓고는 안됩니다.
그 축으로 인해서 비행기 프로펠라가 돌아가듯이 말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지금 그 도리를 배워서 생활이나 일체만법을 운용하고 나가면서 영구적이고도 영원하면서 윤회에 끄달리지 않고 여여하게 활용할 수 있는 중용의 중심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길이요 진리요 도입니다.
[ 문 ]
병과 둘이 아닌 이유
스님의 자유인이 되는 길을 읽고 그 중에서 가장 의문나는 점이 있어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제가 10년 이상을 아파서 그런지는 모르겠으나 병과 내가 하나가 되라는 말씀 둘이 아니라는 말씀이 어렵습니다. 병은 내가 반드시 물리쳐야하는 존재가 아닌가 싶기도 하고 내가 죽어야 병과 둘이 아니라고 어느 스님께서 말씀해
다가온 인연은 소중하게 ___________
한 생애 사는 동안
우리는 우연이든 필연이든
많은 사람과 끊임없이 인연을 맺고 살아갑니다.
비단 사람과 사람의 인연이 아니어도
기르는 애완동물이나 화초 등
동식물과의 인연 또한 예사롭지 않은 만남입니다.
하물며 수 없이 많은 사람을 만나며
끊임없이 관계를 맺고 살아가는
사람과 사람의 인연이 어찌 소중하지 않을까요.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이 영웅이 될 수도 있고
범죄자가 될 수도 있을 만큼
만남의 인연이
우리 삶에 끼치는 영향은 매우 크므로
다가온 인연은
소중하고 아름답게 가꾸어 갈 줄 알아야 합니다.
스치고 지나가는 한 줄기 바람처럼
잠시 잠깐 머물다 헤어질 인연일지라도
결코 가볍게 여긴다거나 함부로 대할 수는 없습니다.
다가오는 모든 인연들을
진실하게 대하고 소중히 여기며
깊은 배려와 사랑으로
한 번 맺은 인연을
아름답게 가꾸는 노력을 게을리해서는 안 됩니다.
살아 숨 쉬는 날까지
끊임없이 인연을 맺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삶이기에
내게 다가온 인연은 오래도록 소중하고 아름답게...
중년의 사랑은 의리입니다 ____________
중년을 넘어선 이들에게 사랑은 의리랍니다.
젊은 시절의 사랑이
뜨겁고 애절한 정열이었다면
중년에게 느끼는
사랑하는 사람이란 존재는
살아오며 서로에게
좋으나 싫으나 함께하고
화창한 날이나 궂은 날이나
곁에 있다는 존재의 이유만으로도
위로가 되어주며
역경과 고난속에서도
손을 맞잡고 기대어주며
은은한 미소를 보여주던 등대이자
어두운 밤길을 환히 비추어주는거친 비바람과
세상의 중심에서도
쓸쓸히 고독과 맞서온 빛나도 빛나지 않는
푸른 빛 가로등입니다.
사랑의 빛깔이 붉은 정열의 빛에서
은은한 분홍빛으로 바뀌었다고 해서
사랑이 퇴색된 것은 아닙니다
외려
한 겨울밤 사랑방에 온기를 불어넣는
화로의 숯불처럼 은은하되 꺼지지않는
참 사랑으로 거듭남일 뿐입니다.
다만
인생의 황혼길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동안에
데일만큼의 뜨거운 사랑은 아닐지라도
서로의 어깨를 기댄 체 보듬어주며
손잡고 세월이 허락할때까지 함께할
사랑이란 아름다운 마차를 이끌어줄
끈끈한 의리가 필요할 때입니다.
그래서 중년의 사랑은
심연 깊은 곳에서 솟아나
맑은 영혼의 메아리가 들려주는
믿음이란 이름의 의리입니다.
< 옮긴 글 >
자비(慈悲) ___________
< 숫타니파타 >
산 것을 몸소 죽여서도 안된다.
또한 남을 시켜서 죽여서도 안된다.
그리고 죽이는 것을 보고 묵인해도 안된다.
난폭한 것을 두려워 하는 모든 생물에
대해서 폭력을 거두어야 한다.
마치 어머니가 목숨을 걸고 외아들을 아끼듯이
모든 살아있는 것에 대해서 한량없는 자비심을 내라.
또한 온세계에 대해서 한량없는 자비를 행하라.
위 아래로 혹은 옆으로
장애와 원한과 적의가 없는 자비를 행하라.
서 있을 때나 걸을 때나 앉아 있을 때나
누워 잠들지 않는 한 이 자비심을 굳게 가지라.
이 세상에서 이러한 상태를 신성한 경지라 이른다.
한번 태어나는 것이거나 두번 태어나는 것이거나
이 세상에 있는 생물을 해치고 동정심이 없는 사람
그를 천한 사람으로 알아라.
모든 생물은 다 행복하라 태평하라 안락하라.
어떠한 생물일지라도
두려워 떨거나 강하고 굳세거나 긴 것이건
큰 것이건 중간치건 짧고 가는 것이건
또는 조잡한 것이거나 거대한 것이거나
눈에 띄는 것이나 눈에 띄지 않는 것이나
멀리 혹은 가까이 살고 있는 것이나
이미 태어난 것이나 앞으로 태어날 것이거나
모든 살아있는 것은 다 행복하라
태평하라 안락하라.
자연의 신음소리 ____________
< 법정 스님 >
들짐승들은
자신의 사는 둥지를
결코 더렵히지 않는다
사람들만이
소위 문명인이라는 인간들만이
자신들의 생활환경을
끝없이 허물고 더럽힌다
만신창이가 되어 앓고 있는
자연의 신음소리는 곧
우리들 자신의 신음소리인 것이다.
보람있는 말년을 위하여 ___________
노후는 인생의 마지막 황금기이다.
값지게 보내라.
나이 듦은 죄가 아니다.
배움에는 정년이 없으니 쉬지 말고 배워라.
즐겁게 하루를 시작하고 마감하라.
그래야 여한없이 살게 된다.
좋은 친구와 만나라.
외로움은 암보다 무섭다.
비상금을 가지고 있어라.
무일푼이면 서러움을 당한다.
덕을 쌓으며 살아라.
좋은 사람이 모여들고 하루하루가 값지게 된다.
좋은 말을 써라.
말은 자신의 인격이다.
미움과 섭섭함을 잊어버려라.
그래야 평화가 온다
좋은 글을 읽어라.
몸은 늙어도 영혼은 늙지 않는다.
내 고집만 부리지 말라.
노망으로 오인 받는다.
말을 적게 하라.
말이 많으면 모두가 싫어한다
모든 것을 수용 하라.
배타하면 제명대로도 살지 못한다.
마음을 곱게 써라.
그래야 곱게 늙는다.
병과 친해져라.
병도 친구는 해치지 않는다.
날마다 샤워를 하라.
몸이 깨끗해야 손자들이 좋아한다.
틈만 있으면 걸어라.
걷는 것 이상 좋은 운동이 없다.
나만 옳다는 생각을 버려라.
고집 센 사람 모두가 싫어한다.
자녀에게 이래라 저래라 간섭하지 말라.
그러다가 의만 상한다.
물을 많이 마셔라.
물처럼 좋은 보약도 없다.
콩과 멸치 마늘을 많이 먹어라.
최고의 건강식품이다.
낙천가가 되라.
하루가 즐거우면 열흘이 편안하다.
어제를 잊고 내일을 설계하라.
어제는 이미 흘러갔다.
시간 관리를 잘하라.
주어진 시간이 끝나면 쉬라.
충분히 잠을 자라.
수면에 비례해서 수명도 늘어난다.
매일 맨손 체조를 하라.
돈 안 들이는 최고의 건강법이다.
세상을 아름답게 보아라.
보는 것만 내 몫이다.
쉬지 말고 움직여라.
흐르는 물은 썩지 않는다.
욕심을 버려라.
남 보기에도 좋아 보이지 않는다.
작은 배려에도 감사의 표현을 하라.
그래야만 존경 받는다.
주어진 날들을 즐겁게 지내라.
세상은 즐기기 위해 나온 것이다.
적극적인 자세를 잃지 말라.
무엇을 하기에 늦은 나이란 없다.
여행을 즐겨라.
하루하루가 즐거움의 연속이다.
사람을 믿어라.
내가 믿으면 그도 나를 믿는다.
사랑의 눈으로 만물을 보라.
사랑이 가득한 세상이 펼쳐진다.
취미를 살려라.
취미는 삶의 활력소 이다.
< 옮긴 글 >
세상을 올바르게 살아가는 지혜 ___________
남의 허물을 보지 않는다
혹 보더라도 마음에 담아두지 않는다.
자신의 허물을 보는 것이 지혜요
남의 허물을 지나쳐 버리는 것이 덕(德)이다.
자기를 해롭게 하는 이들에게 앙심을 품지 않는다.
앙갚음을 하지도 말고 보복도 꾀하지 않는다.
욕설을 퍼붓더라도 끝까지 참는다.
어떠한 경우에도 뼈있는 말로써
남에게 괴로움을 안겨주지 않으며
자신의 책임이나 부담을 남에게 떠넘기지 않는다.
남의 부덕한 행위를 기뻐하는 것이
부덕(不德)한 행위 그 자체보다 더 나쁘다.
적(敵)의 고통과 불행을 즐거워해서는 안 된다.
남을 도우면서 자랑해서는 안 된다.
마땅히 해야 할 일로 여길 뿐 아니라
그러한 기회를 준 그들에게 고마워해야한다.
면전에서 비난 받더라고 성내지 않고
능히 자신을 다스릴 줄 알아야한다.
모든 번뇌 가운데서 증오(憎惡)가 가장 파괴적이다.
증오는 이제까지 쌓아온 모든 공덕을
한꺼번에 소멸시켜 버린다.
자비와 연민을 개발한다.
특히 자신과 가까운 사람들의 고뇌를 위로하는데 눈뜬다.
자주 접촉하는 사이일수록
화내고 신경질 낼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만일 사람들이 그대를 나쁘게 말하거든
오로지 자신을 들여다보라
그들이 틀렸다면 그들을 무시해 버려라
만약 그들이 맞다면 그들에게서 배워라
어느 쪽이든 화를 낼 필요는 없다.
타인이 잘못 행동해서 무엇이 정확한가를
지적해 주었는데 그들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쯤에서 그대로 놔두어라.
비리로서 모은 재산은 오래가지 못하며
쥐꼬리만한 권세와 재산을 가지고
남용하는 사람은 패망을 자초한다.
< 옮긴 글 >
그대에게 던지는 사랑의 그물 ___________
사랑하는 사람을 지상에서
가장 높은 존재로 평가할 때
그대의 사랑은 천상에 이르게 되고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을
지상에서 가장 낮은 존재로 평가할 때
그대의 사랑은 파멸에 이르게 된다
그대가 사람을 존중하지 않으면
그대가 간직하고 있는 사랑이 깊어지지 않고
그대가 간직하고 있는 사랑이 깊어지지 않으면
그대가 소망하고 있는 행복은 영속되지 않는다.
밥 먹는 이치를 아는가 ? ___________
밥을 왜 먹어야 하는지
그 이치를 모르는데
무엇을 안다는 말입니까.
자기 분야에서
허망한 꿈속에서 배운 것을 안다고
시비를 할 뿐
하나도 아는 것이 없습니다.
행복이라는 것은
말만 있지 참 행복은 없습니다.
내 마음을 알아야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겁니다.
돈이 있어도
내 마음이 나를 더 괴롭게 만듭니다.
무선전화가 있고
텔레비전이 있어도 복잡하고 일만 많지 않습니까.
자동차가 있으니
서울로 부산으로 왔다갔다 분주하기만 합니다.
문명이 발달할수록 더 바쁘고 괴로운 일만 있습니다.
어찌 이런 것을 모릅니까.
스님네 들은 법복 하나 바릿대 하나
지팡이 하나가 살림살이의 전부입니다.
그 밖에 아무 필요가 없어요.
바릿대 하나 있으면
어디 가서도 밥을 얻어먹을 수 있고
법복을 입고 있으면
인증을 받으니 절에 가 한 철 지낼 수 있으니
이 세 가지 말고는 소용없다 하고
저장을 안 하는 스님네 들이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가난해야 도가 성하답니다.
생활에 여유가 있다 하더라도
그런 것에 속지 않고 살면 허물이 없습니다.
큰절을 맡은 사람을 부러워하고
감투를 쓴 스님 네를 부러워하고
법문을 잘하는 스님네를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어리석은 사람들입니다.
공부 하나 잘하려고 하는
사람들은 그런 것이 아무 필요 없습니다.
이런 이치를 안다면
남을 부러워 할 일이 없어집니다.
내가 어쩌다
이렇게 살길을 만났는지
만족하고 감사한 생각이 납니다.
사람이 곧 죽을 것 같아도 죽지 않습니다.
제석천왕이
착한 사람을 위해서 이런 원을 세웠답니다.
전생에 복이 없어
입고 먹을 것이 없을 팔자를 타고났더라도
올바른 마음을 가지고
입을 것이 없으면 없는 대로 죽어 버리고
먹을 것이 없으면
배고파 죽어 버리고
집이 없으면
얼어죽어 버리고 되는대로 살아야겠다
그런 착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다면
내가 그 사람을
따라다니면서 옷도 주고 집도 주고
다 주겠다고 원을 세웠답니다.
우리가 나올 때는
인과에 따른 죄를 받으러 왔겠지만
먹고 입을 것을 다 가지고 나왔습니다.
그러니 그런 것에 지나치게 신경쓸 것 없고
인연 따라 공부만 잘 하다가 가야겠다 생각하면
하나도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내 마음은 하나 ___________
마음이란 이 우주를 지배하는 무한안 힘이요.
자연의 길입니다. 이것처럼 참되고 묘한 것도 없지요.
사람들은 그것을 어떻게 생각한들
그런 일에는 전혀 아랑곳없이 질서 정연하게 마음은 움직이고 있습니다.
헤매임과 깨달음 지옥과 극락과 같은 것을 완전히 초월한 존재입니다.
이 순간에도 무수한 생명이
그 생에를 마치고 마음이 지어낸 대자연 속으로 스며들어가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신앙을 가진다는 것은
어두운 밤에 등불을 들고 걸어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러나 종교를 믿음에 있어서도 바르게 믿는 일(正言)과
그릇되게 믿는 일(迷信)이 있으니 지혜가 없는 자는 사악한 가르침을 믿습니다.
사악한 가르침은
그 신앙 형식이 맹신(盲信)에 빠지기 쉽고
지혜를 갖춘 신앙이야말로 참된 신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인간은 마음의 안정과
삶의 보람을 찾기위해 끊임없이 참회하는 기도를 해야 합니다.
인간은 잘못을 부끄러울줄 아는
마음이 가장 으뜸가는 장엄입니다.
경정에 말씀을 사무치게 되새겨야 합니다.
그렇게 살아갈 때
처음으로 자기가 하는 일의 참뜻을 께닫는 보람있는 삶이 될 것입니다.
慈悲喜捨(자비희사) 사무량심 ___________
불교에서의 자(慈)라는 것은
너와 내가 동일하다고 하는 정도를 넘어
남을 나의 진실한 동반자 또는
친구로 볼 수밖에 없는 것을 말합니다.
비(悲)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이웃을 나의 친구로 받아 들였기 때문에
그 사람이 괴로워하게 되면 내가 견딜 수가 없는 것입니다.
진실한 친구일수록 그 친구가 괴로워할 때 그 괴로움을
나도 함께 나누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같이 함께 느끼는 슬픔을
비(悲)라는 말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다음에 희(喜)라는 말이 따라옵니다.
기뻐해 준다라는 뜻입니다.
친구가 괴로워할 때는 같이 슬퍼해 줍니다.
그렇다면 친구가 잘 되었을 때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친구가 잘 되면 공연히 질투심이 납니다.
사촌이 논 사면 배 아프다는 말
중생들의 견해에서 보면 당연한 일입니다.
친척이고 뭐고 없습니다.
전부 생존을 위한 경쟁자로 받아들입니다.
그런데 업의 원리를 바로 이해한다면
친구가 잘 되었을 때
흔연히 기뻐해 줄 수 있는 마음이 비로소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희(喜)의 무량심입니다.
그 다음에 사(捨)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바릴 사 자입니다.
사라는 것은 마음이 항상 평정하다라는 뜻입니다.
마음이 담담한 상태를 말합니다.
모든 중생을 친구로 받아들인 이상 그 친구가
나에게 잘해줘도 그저 그만이고 못해줘도 그저 그만입니다.
항상 나는 변함없는 우정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그러한 평정한 마음을 사(捨)자로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버릴 사(捨)자는
집착을 버리고 세상을 담담하게 본다는 뜻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네 가지 마음(四無量心)을
마음 가득 채워가지고 세상을 살아가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시방(十方)을 사무량심으로 가득 채워서
그곳에서 노닐어라 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사무량심 가운데서 가장 중요한 것이 자(慈)입니다.
자신감을 높여주는 4개의 ‘혈(血)’ ___________
< 건강 365일 >
흔히들 음식을 먹다가 체하거나 배가 아프면
엄지손가락과 집게손가락 사이를 눌러주는 행동을 취한다.
한의사들이 소화불량 환자에게
침을 놓는 이 위치는 합곡(合谷)이라는 혈 자리이다.
이같이 쉽게 찾을 수 있고 어렵지 않게 자극해서
효과를 보는 혈 자리를 직접 지압하는 경우가 많다.
대게 두통이나 소화불량이 있는 혈 자리는 잘 알지만
자신의 ‘정력’을 위한 좋은 위치를 아는 경우는 드물다.
◆ 죽은 사람도 벌떡 일어나게 하는 용천(湧泉)
발바닥에 위치한 용천은 기운이 샘솟아 오른다는 뜻으로 이 부분을 자주 자극해주면 신장의 기능이 좋아지는데 한의학에선 신장의 기능이 원활하여지면 정력도 좋아진다고 한다. 과거 결혼 풍속 중 신혼 첫날밤에 신랑의 발바닥을 때리는 것도 원만한 부부생활을 하여
건강한 아이를 가지라는 뜻이다.
◆ 신선도 했던 건강의 명혈, 관원(關元)
관원은 배꼽과 치골의 중간 부위에 있으며 남성의 양기가 뭉쳐 있는 곳으로 전신의 양기가 원활하게 순환하여 강해져 정력에 좋다. 관원은 예부터 신선의 호흡법으로 알려진 단전호흡을 하는 혈 자리로 콩팥의 기능을 조절하며 노폐물의 신진대사를 활발하게 하여 생식과 배설을 도와준다. 남자는 정력에 좋고 여자는 속병에 좋다.
◆ 백 가지 경락이 모여 시작하는 백회(百會)
머리의 정 중앙선과 양 귀의 가장 윗부분(이첨)을 이은 선이 만나는 곳이 백회이고 백 가지 경락이 모여서 시작하는 곳이라는 뜻이다. 백회에 뜸하면 뇌를 깨어나게 하고 양기를 끌어올리는 효험이 있다.
◆ 하체를 튼튼하게 하는 족삼리(足三里)
피로회복 저항력증진 무병장수의 필수 혈로 알려진 족삼리는 무릎 외측으로 손가락으로 눌러보면 움푹 들어가 있는 자리에 위치해 있다.
중풍, 좌골신경통, 신경쇠약 등에도 사용되는 혈 자리다.
족삼리에 쑥뜸을 하지 않는 자와는 먼 길을 같이 여행하지 말라 라는 옛말이 있을 정도로 족삼리는 하체의 건실함과 깊은 관련이 있다.
특히 양기를 회복시키는 혈 자리인 정력혈은 조루나 발기부전 등의 성 기능 장애로 고민하는 남성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발기부전 치료를 위해서는 약을 복용하기도 하는데 전문의와의 상담을 통해 처방되는 치료제는 화이자의 비아그라 대웅제약의 누리그라츄정 등이 있다.
이처럼 건강을 위한 목적부터 피부미용과 학업 정력 등에까지 효과가 있는 혈 자리를 익혀 스스로 건강을 관리해보는 것은 어떨까?
인과응보(因果應報) ___________
< 지광 스님 >
인과의 보(因果의 報)
부처님께서 영산회상에 계실 때 아난이 물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남섬부주의 모든 중생들이
말법시대에 이르러 선근이 약하고 악업이 두터워서
불 법 승 삼보(三 )를 공경치 않고
계.정.혜 삼학(三學)을 귀중하게 여기지 아니하며
부모에게 효도를 행하지 않고
세상에 나서 인간으로 탈을 쓰고 살면서도 행할 바를 모르며
육근(六根)은 온전치 못하고
고통으로 한 평생을 마치는 사람들이
가득한 그들 가운데도 모든 사람들이 평등한
삶을 누리지 못하니 그 인연과 업보를 설명해 주소서
인과의 도리를 통달하신 부처님께서
자비를 베푸시와 저희들과
저 말법시대의 중생들을 위해 일러 주시옵소서.
우리가 삶을 살아가면서 전개되는
여러가지 상황들의 근본적인 이유를 물은 내용입니다
부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착하고 착하도다.
이 세상의 모든 남녀가 잘 살고 못 살고
귀하고 천하며 끝없이 받는 고통과 한없이 받는
행복들은 모두가 다 저 먼 다겁생래 전생으로부터
지은 인과의 보를 받는 것이니라.
인과라고 하는 말을
불교에서는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라고
하는 말을 수도 없이 많이 듣고 살지만
이 인과의 도리를 무시하고서는
삶을 온전히 살아 갈 수가 없습니다.
이 대 우주는 철두철미한 법칙이 좌우하는데
그 법칙은 바로 인과의 룰입니다.
불교 공부에서 가장 기본적으로 나오는 이야기인데
우리는 인과의 룰에 너무 무지해서
어리석은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라고 하는 것은 부처님 말씀대로
한없는 고통도 한없는 행복도 전부 다
자기가 지은 대로 그렇게 갑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상황조차도 우리가 창조해서
저 억겁으로부터 내려오면서 끊임없이 스스로
만들어서 지금 이와 같은 상황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외부 세계라고 하는 것은
마음의 그림자라고 하는 사실을
마음 가운데 철두철미하게 명심해야만 합니다.
이 우주는 이렇게 알 수 없는 법칙이 있어서
우리는 이것을 불법(佛法)이라 하고
무상심심미묘법(無上甚深微妙法)이라 합니다.
부처님께서 또 말씀하셨습니다.
"부하고 귀하고 행복의 운명은 전생에 닦은 바
인연의 씨앗이 되어 얻어지는 과보인 것이니라.
똑같은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서 같은 하늘 밑에
같은 공기를 마시면서 살되 복을 받는 사람
재앙을 받는 사람 착한 사람 악한 사람
잘사는 사람 못사는 사람으로 그 삶이 각양각색인
까닭은 자작자수요 인과응보이며 자업자득이니라.
우리가 지금 분명히 생각을 해야 되는 것이
이 광대무변한 우주는 자작 자수의 업이고
인과응보의 업이라는 법칙으로 철두철미하게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들어 지니면
세세생생 그 복이 한량없다고 합니다.
인과경에 계속 나오는 이야기 입니다.
법구경에도 그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또 장아함경에 보면
설사 백천 겁을 지날지라도 지은 업은
사라지지 않아서 인연이 모여 만날 때는
과보를 돌려 받으리라고 합니다.
우리가 항상 말하듯이 선인선과(善因善果)요
악인 악과(惡因惡果)입니다.
좋은 씨앗을 심으면 좋은 과보가 나오고
나쁜 씨앗을 심으면 나쁜 과보가 나옵니다.
금생에 자기가 받은 것은 자작 자수요 자업자득이며
인과응보인데도 불구하고 후회 막급한 삶을
또 다시 살아야만 하는 것인가!
시간이 나는 대로 능력이 닿는 대로 힘이 닿는 대로
끊임없이 정진하고 좋은 업보를 쌓고 선인선과
악인악과의 도리를 공부하는 것으로 그치는게 아니라
스스로 실천하고 진정으로 내 몸과 마음의 승화와
발전을 위해서 부
좋은 벗과 나쁜 벗 ____________
먼 길을 갈 적에는 좋은 도반과 동행하여 자주자주 눈과 귀를 맑게 하고 머무를 때에도 반드시 도반을 가려 때때로 아직 듣지 못한 것을 들어야 한다.
그러므로 속서(俗書)에도 이르기를
나를 낳아준 사람은 부모이고
나를 완성시켜 준 사람은 벗이다 라고 하였던 것이다.
착한 사람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마치 안개와 이슬 속을 가는 것 같아서
비록 당장에 옷이 젖지는 않아도 점점 촉촉하게 적셔진다.
한편 악한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 사람은
나쁜 지견(知見)을 길러서 아침 저녁으로 악한 짓을 하는데
가까이는 목전에서 과보를 받고 멀게는 죽은 뒤에 윤회에 들게 된다.
한번 사람의 몸을 잃으면 영원히 다시 인간으로 태어나기 어렵다.
충성스러운 말이 귀에는 거슬리나 어찌 마음에 새겨두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음을 씻고 덕을 길러 자취와 명성을 숨기고
정신을 깨끗하게 길러서 마음에 시끄러운 경계를 끊어야 한다.
만일 참선(參禪)으로 도를 익혀 방편(方便)을 단박에 초월하려 하면 마음을 현묘한 나루터에 두고서 정밀하고 묘함을 끝까지 파고 들어야 한다.
심오한 뜻을 결택하여 참 근원을 깨닫도록 해야 하며
선지식에게 널리 묻고 좋은 도반을 가까이 해야 한다.
업(業)에 관한 부처님 말씀 ____________
업과(業果)의 착하고 착하지 못함은
짓는 바를 따라 받는 것이 결정된다.
스스로 지어서 스스로 얽매이는 것은
누에와 다름이 없다.
쓰고 떫고 달콤한 모든 맛과 고통과 번뇌는
마치 그림자가 항상 형체를 따르는 것과 같고
독약을 마시고 자살함과 같다.
[묘법성염처경]
세 가지 업(三業)을
부처님이 말씀하셨으니
첫째는 몸으로 짓은 업(身業)이요
둘째는 말로 짓는 업(語業)이요
셋째는 뜻으로 짓는 업(意業)이다.
이 세 가지 업에
다시 두 가지가 있나니
하나는 착한 업이요
다른 하나는 착하지 않은 업이다.
무엇이 착한 것이나 하면
몸으로 하는 착한 짓과
입으로 하는 착한 짓과
뜻으로 짓는 착한 행위 등이다.
그리고 무엇이 착하지 못한 것이냐 하면
역시 몸으로 저지르는 좋지 못한 행위
입으로 하는 나쁜 말
뜻으로 범하는 옳지 못한 짓 등이다.
[불설대집법문경]
사람의 마음이란 독(毒)의 뿌리이며
입은 재앙의 문이다.
마음으로 생각하고 입으로 말하며
몸으로 그 재앙을 받는다.
선악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은
스스로 업을 지어 스스로 그 환난을 받나니
뜻으로 남을 해치려다가
수레에 머리 갈릴 줄을 깨닫지 못한다.
마음은 감로의 법이니
사람으로 하여금 천상에 나게 한다.
몸으로 그 복덕을 받는 것이니
선악을 생각하는 사람은
스스로 몸이 편할 근본을 만드니
마음으로 일체의 선을 생각하면
왕처럼 큰 지위를 얻으리라.
[변의장자자경]
착한 사람은 선을 행하고
선에서 시작하여 인자하고 효도하여
즐거운 곳에서 즐거운 데로 들어가고
밝음에서 밝은 곳으로 들어간다.
악한 사람은 악을 행하고
괴로움에서 괴로운 데로 들어가고
어둠에서 어둠으로 들어간다.
이 이치를 누가 잘 알겠느냐.
오직 부처님만이 보고 알아서 사람을 가르치지만
믿는 이가 적어서 나고 죽음이 그치지 않고
악취가 지속되는 것이다.
[무량청정평등각경]
지혜 있는 이가 업을 관찰하고는
다음에 업의 인(因)을 관찰하나니
업의 인은 무명(無明)과 촉(觸)이니
무명과 촉으로 인하여 중생이 유(有)를 구하고
유를 구하는 인연이 곧 애(愛)니라
애의 인연으로 몸 입 뜻의 세 가지 업을 짓느니라
[대반열반경]
모든 선(善)을 사랑하기를
마땅히 아버지처럼
또한 어머니처럼 해야 할 것이니
아름다운 선은 몸이 편안하고
능히 싸움과 다툼을 없애며
아름다운 선은 인천(人天)이 기뻐하고
선은 부지런하고 용기를 더하며
선에는 권속이 많고 선은 삼도를 떠나며
선은 모든 악을 그치게 하고
선은 번뇌를 여의게 하는 것이니
마땅히 말의 허물을 버리고
모든 선을 닦아야 할 것이다.
[묘법성염처경]
대개 사람이 세상을 살아갈 때
마음속에 독한 생각을 품고
입으로 독한 말을 내뱉으며
몸으로 독한 업을 실행하면,
세 가지 마음과 몸과 입에서 돌출된 그것들이
크게 악을 이룩하여 중생들에게 가해진다.
중생들은 그 해독을 입고 곧 원한이 맺혀
마음속으로 기어코 그것을 갚으려고 맹세한다.
혹은 그것을 지금 세상에서 갚기도 하고
혹은 죽은 뒤에 혼백과 영이 천상에 올라갔다가
곧 내려와서 갚기도 한다.
그리하여 인간세계의 축생과 귀신이
태산(太山)에서 서로 싸우고 해치게 된다.
이것은 다 숙명(宿命)으로 말미암은 것이지
그저 생겨난 것이 아니다.
[자애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