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목련
하얀 촛불 은밀하게 켜두고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시간에
곱다시 여린 속적삼 가만히 풀어내는
처연히 밤 안개에 젖은 여인이여
마음이 스산하지 몸이야 춥겠는가
오지 않을 님 기다리다 지새는 밤
기억 속의 님 향내는 어사무사한데
홀로 향기를 흘려 보내는 심사
어둠 속 창백한 불빛 심지 올리고
부끄럽지 않을 만큼만 흔들리고 있다
수줍게 떨리며 풀리는 여인의 옷섶
농염하게 익은 자태 은근살짝 훔쳐보다
깊은 밤 어둠 속으로 나꿔채가는 바람아
바람만 바람만 바라기하는 그 마음 알면
님 창가에 몰래 가져다 주려무나
*사진-펌
3월
냉이, 꽃다지, 봄까치꽃, 쇠별꽃, 꽃마리
찬바람에도 조르륵 달려나와 인사하는
어린 풀꽃들 키를 낮추어 피고
사방 자오록한 안개 에돌아 나갈 때
피가 돌아 발그레한 볼
웃음 수줍게 머금은 버들개지
보송보송한 수염을 만지면
빛이 가득 쏟아져 들어왔다
알싸한 버들꽃을 한 입 따 먹으면
그리운 사내의 입맞춤 맛일까
수액 물큰한 풋내가 고이고
가슴에 개울물 소리 흘러 다녔다
언 가슴 뭉근하게 틈이 벌어지고
숨은 것들이 일시에 기지개를 펴는
연둣빛 들판은 비단[綾紈]이다.
봄밤
검은 잉크를 쏟아버린 저녁이
개나리꽃 별을 데리고
밤마실을 왔다
바람에 별이 잘그락거리는 소리
뉘집 숟가락 부딪는 소리처럼
다정한 말을 건넸다
환한 등불이 켜진 집집마다
별이 가득한 어둠이 들고
둥근 식탁에 둘러앉은 식구들이
봄동, 미나리, 쑥, 돌나물이 향긋한
봄을 한 상 받고 있다
집안에 웃음꽃이 가득 피었으니
꿈자리가 비단금침 꽃자리다
꽃그늘 어룽대는 달빛 교교한 봄밤엔
밤새 등불은 꺼도 좋으리
*사진-펌
풍경 1
마른 겨울나무 가지에
작은 새가 잠시 머물다 간다
새는 부리로 날개를 고르다가
명상에 잠긴 듯 하늘 먼 곳을 보다가
두어 번 울음을 흘리고
후르르 허공으로 단호하게 길을 나선다
허공이 길인 새의 행선지는 어디인가
내가 잠시 주었던 관심은
날아가는 것이다
새는 제 온몸을 실어 힘껏 솟구치는데
나는 얼마나 열심히 세상을 향해 날았던가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며 망설였으며
핑계대고 주저앉기를 반복하지 않았던가
새가 떠난 나무는 선승처럼 느긋하다
새의 잔영을 이미 잊은 듯이
머물고 떠남에 연연하지 않는다
바람이 불지도 않는 창 안에서
잡생각이 많은 나는
오래도록 흔들리고 있다
*사진-펌
풍경 2
슬픔도 해빙하는 어느 봄날은
바람이 서녘으로 불어 노을이 붉었다
얼음에 실금 그어지는 소리 들으며
강물을 비껴선 나무들 묵상의 자세로
하루가 장엄하게 저무는 것을 지켜본다
하루종일 오직 내 생각의 직조는
날실 올실 그대와 나를 엮은 그리움
저무는 서녁하늘 서럽도록 붉으니
봄이 벌써 도착하였는지 꽃빛이라고
어스름 속에 서서 안부를 묻는다
겨울과 봄의 경계쯤에서
이승과 저승의 경계쯤에서
스스로 가둔 유배지에서 안녕하신가
스스로 풀어버린 구속에서 안녕하신가
시작도 끝도 없는 그 하늘에는
혼자 여행하는 시간
혼자 여행하는 시간은
제 자신을 들여다 보는 거울
낯선 사람과 만나서 또 다른 나를 발견하고
결국 혼자가 아님을 확인하는 과정이다
때로는 더 외롭고 쓸쓸해지기도 하지만
삶은 만나고 헤어짐의 연속인 걸
여기서 거기까지 거리가 얼마이던가
걸음걸음이 쌓여 이루어지는 길
그 길에 내가 있고 당신이 있다
곤고하고 괴로운 때일 수록 그리운
나와 비슷한 사람들을 만나고 오는 길엔
스쳐 지나는 풀 한 포기조차 소중한 님이다
힘들어도 울지 마라 다들 그렇게 살아간다
살아 숨쉬고 움직이는 것들은 모두 행복하다
없던 길도 만들며 천천히 걷다보면
텅 빈 가슴을 채우는 친구가 보인다
혼자 여행하는 시간은
내가 모르는 나를 만나고 다시 태어난다
당신과 함께 걸어가는 내가 보인다
*사진-범공천
통(通)
친구여, 그대는 어떤 사람인가
글쎄, 나도 나를 잘 모르겠으니
나는 어떤 사람인 것 같은가
자신도 잘 모르는 그대를 어찌 알겠는가
주관적인가 객관적인가에 따라 다르지
그러나 그게 뭐 그리 중요한가
꾸밈없이 있는 그대로인 그대와 나
소소한 이야기도 비밀인 양 나누는 우리
서로 찰방거리는 개울물처럼 정답지 않은가
서로를 안다는 것 착각일 수 있지만
무장해제한 그대와 나는 친구
그렇게 뭉근하게 스며드는 편안함이
서로 통하였다는 것 아닐까
*사진-펌
*오늘 나의 생각!
욕망을 구조조정 하라
버릴 것은 과감히 버리고 버린 것은 잊어라.
내 것이 아닌 것에 대한 집착을 버려라.
노력하지 않고 얻으려는 욕심은 도적의 심보와 같다.
가만히 저절로 주어지는 행운은 없다.
더 나은 자신의 삶을 위해
끊임 없이 공부하고 배우고 노력하라.
많이 읽고 많이 생각하고 많이 보고 많이 다녀라.
모르는 것을 부끄러워 하지 말고
누구에게든 묻고 배우고 아는 것은 실행하라.
생의 마지막 순간이 언제인지
당장 내일이 내게 올지 안 올지 아무도 모른다.
나의 금쪽같은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생각한다면
어느 한 순간도 헛되이 보낼 수 없을 것이다.
*사진-펌
잊지 말자 하고서는 이내 잊어버리고 다시 고민에 빠지는 어리석은 이가 사람이다. 그 어리석은 사람중에 나도 예외없이 끼어있다. 사실 사소한 , 별것 아닌, 지나고 보면 우습지도 않은 일들로 고민하는 것이 훨씬 더 많다. 큰 걱정꺼리도 나중에 보면 다 해결되었고 고통스러워하던 그때만큼 그다지 큰 것이 아니었음을 깨닫게 된다. 한발자국 물러나서 보면 보이는 것이 정작 닥치면 태산처럼 눈앞을 가려 총기가 흐려지고 좋은 글, 말등, 마음에 두고 읽었던 것을 다 잊고만다. 그래서 자주 읽고 되새기고 마음을 추스리는 것이다. 그래도 당장 내일 놓여있는 걱정을 내려놓지 못하는 것이 사람살이다. 내 걱정이란 것도 그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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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걱정
걱정의 40%는
절대 현실로 일어나지 않는다.
걱정의 30%는
이미 일어난 일에 대한 것이다.
걱정의 22%는
사소한 고민이다.
걱정의 4%는
우리 힘으로는 어쩔 도리가 없는 일에 대한 것이다.
걱정의 4%는
우리가 바꿔놓을 수 있는 일에 대한 것이다.
- 어니 젤린스키의 <모르고 사는 즐거움> 중에서 -
경칩(驚蟄)
겨울의 끝쯤이라고 하자
봄의 시작쯤이라고도 하자
그런 아침, 안개가 덮친다
의뭉스럽게
신비스럽게
몽롱하게
혼돈의 시간을 흔든다
봄의 자궁에서 터져나오는 양수
새로 태어나는 생명의 통과의례다
묻었던 희망의 싹을 밀어내고
메마른 허공을 핥아 촉을 틔운다
그런 아침, 몸이 가렵다
*사진-펌
봄맛
다압에 매화 만개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섬진강벚굴 한참 물올라 통통하다니
꽃소식을 듣는데 식욕이 물큰 돋는다
도다리쑥국도 끓이고 달래 냉이 미나리도 씻어
봄나물 한상 차려놓고 벗도 이웃도 다 불러라
홍어삼합에 막걸리도 두어 사발 들이키고
취흥이 오르면 노랫가락 구성지게 뽑아도 좋겠다
화전과 우전에 매화 한송이 띄워 향을 마시고
오래 못만난 먼 곳 지인들의 안부도 물어보자
앉아서 천리 만리 눈으로 귀로 먹는 봄
텔레비전에 비치는 그림으로 포식하는 아침
내집 오늘 식단은 무엇으로 올릴까
시 한 수 적는 사이 끓는 모시조개된장찌개
오늘은 시장 한바퀴 돌아 봄맛을 사와야겠다
*사진-광양 다압 청매실농장
춘삼월 경칩 아침, 섬진강에 매화 만개했다는 소식을 듣는다.창을 여니 바깥은 온통 안개밭이다. 밤낮의 기온차가 심한 이즈음에는 새벽 안개가 누리를 덮는다. 햇빛이 들며 곧 안개는 사라졌지만 그렇게 봄이 오고 있다는 신호를 감지한다. 촉촉한 허공의 습기로 인해 땅은 말랑거리고 그 땅에서 새순이 움틀 것이다.
벚굴이 맛이 들었다는 화면이 텔레비전에 뜬다. 식욕이 돋는다. 오늘은 시장에 들러 봄나물로 식탁을 차려야겠다. 아침 식사를 어제 먹다 남겨둔 아귀탕으로 간단히 먹었다. 역시 봄은 입맛이 도는 계절이다. 얼큰한 국물이 입에 감긴다. 점심은 모시조개를 넣은 된장찌개로 먹을 것이다. 식후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거울을 보니 내 머리에도 흰 매화가 피었다. 귀밑머리카락만 흰 줄 알았더니 겉은 멀정해보이는데 헤집어보니 머릿속이 온통 은발이 성성하다. 나이 쉰 하고도 몇 년을 살았으니 당연지사이건만, 늘 청춘이라 여겼던 것은 마음 뿐이었던가. 염색을 포기하고 그냥 이대로 자연스럽게 살자고 생각하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아릿해진다.
나이 들어간다는 것은 오래 사용한 기계처럼 몸이 낡아간다는 것이리라. 어디 몸뿐이겠는가. 정신도 그러하다. 젊어서부터 건망증이 좀 심하긴 했지만 이즘에 와서는 기억력이 현저히 감퇴되었음을 실감한다. 십 년 이상 친했던 지인들을 몇 년 만에 만났는데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던가, 단축번호에 익숙해져서 새로 바뀐 아들의 전화번호도 못 외운다. 서점에서 시집을 몇 권 사서 집에 와서 보면 같은 시집이 또 있다. 읽은 책도 다시 사온 것이다. 옛날에 봤던 영화도 다시 보다가, 어? 이거 내가 본 영화 같은데... 하고는 혼자 멋쩍어 피싯 웃기도 한다. 그렇게 몸도 정신도 나사가 빠진듯 헐거워져가는 것이다.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위안하다가도 서글픈 생각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나는 물건을 더러 잘 잃는다. 비오는 날 우산을 두고 잃어버리는 것으로부터 지갑도 가끔 잃는다. 안경, 머리핀, 손수건 등, 작은 것은 부지기수로 잃는다. 휴대폰도 몇 번 두고 왔다가 찾으러 간 적이 있다. 다행히 늘 손에 들고 다니는 것이라 금방 기억해냈으므로 찾을 수는 있었다. 꼼꼼하지 못하고 덜렁거리는 성격탓도 있지만 건망증이 더 큰 주범이다. 그럴 때 속상한 것을 합리화 하는 내 방식은 이왕이면 누군가 필요한 사람이 가져가서 유용하게 잘 썼으면 하는 것이다. 내게는 금쪽보다 아까운 몇 만 원부터 몇 십 만 원의 돈이지만 그것으로 인해 누군가는 힘든 한 고비를 잠시라도 넘어가는 힘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랬으면 좋겠다. 이것은 순전히 내가 편하자고 하는 위안이지만 내 허술한 기억과 습관으로 인해 내가 아까운 만큼 누군가는 즐거울 것이므로. 낙천적인 생각이 나를 더 편하게 한다.
봄은 모든 것이 새롭게 생성되는 기운이니 향긋한 봄나물로 나도 힘을 내야겠다. 마음이 늙으면 몸은 급속도로 늙어가는 것이니 마음이 새로워야 몸도 건강해지리라.
친구신청에 관해서...
친구신청이 매일 10명 이상씩 들어오는데 대부분은 승낙하는데 일부는 보류해둔다. 보류하는 사람들은 사진이 없거나, 프로필이 아무 것도 없거나, 게시물이 한 개도 없거나, 광고만 올려져 있거나, 페이스북 가입하고 몇 년 동안 활동이 전혀없거나, 남자의 경우 남자 친구는 없고 미녀들 사진만 가득 있는 친구들만 있거나, 금방 가입하고서 그 사람에 대해서 아무 정보도 없는 경우다.
프로필이나 사진이 미흡한데 잘 몰라도 승낙하는 경우는 내 페친들과 많이 공유된 친구일 경우나 문학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다. 또는 최소한 가족 사진이라도 있으면 승락한다. 다 같이 즐겁게 소통하는 공간에서는 최소한의 공개라도 해야 되지 않을까. 그것이 기본 예의라고 생각한다. 좋은 생각,좋은 글, 좋은 사진과 그림을 함께 나누고 함께 소통하는 것이 페이스북의 목적 아닐까? 적어도 남의 글을 훔쳐보는 수준만은 아닌 좋아요도 눌러주고 가끔 댓글도 달고 (좋아요는 잘 누르지만 나도 댓글에는 인색해서 이 부분은 좀 찔린다). 그리고 메시지로 가끔 인사나 안부 정도는 묻더라도 남의 사생활에 대해 메시지로 묻는 것은 좀 삼가했으면 좋겠다. 자기를 숨기고 서로의 소통이 아닌 그냥 남의 글만 읽을 생각이면 팔로우라는 것도 요즘 있던데 그게 좋지 않을까?
외국인들 친구신청도 종종 들어오는데 특히 외국인들은 내 글을 번역이나 하는지? 이해는 하는지 좀 궁금하다. 내가 알지도 못하는 나라의 말로 메시지 보내는 거...좀 그렇다. 이 상태로 친구가 1000명이 되면 한 번 정리를 할 생각이다.
동행
삶이 온통 진흙 투성이라 해도
연꽃을 피워 올릴 수 있지요
오래 안으로 여물어질 동안
당신을 가슴에 품고 길을 내지요
당신의 마음 하나 등대로 삼고
거친 항해라도 두려울 것 없지요
영혼의 집은 견고하여
내가 허물지 않으면 영원한 성곽
당신이 머무는 동안에는 천국이지요
삶이 온통 비바람 쳐도
당신의 영지에 있는 동안은
누구도 허물 수 없는 한 그루 나무
튼튼한 뿌리 내리고 웃고 있지요
당신이 햇빛이 되는 동안은
푸른 잎을 매달고 가지를 뻗어요
삶은 살아볼 만한 것이라고
진정 아름다운 세상이라고
감사의 꽃을 피우겠지요
고백
아무도 몰라도 돼
너만 알면 돼
세상 다 귀머거리라도
네가 알아들으면 돼
침묵이 전하는 말
마음의 문만 열어놓으면
전부 들리는
오직 한 번 너를 위하여
피었다 시드는 말
그 짧은 생의 사이
너만 알면 되는
영혼의 소리
중고나라에 물건을 아주 싼 가격으로 좀 내놨어요.
페친님들도 도자기 접시 구경하세요^^
카페 > 중고나라 | 예당
http://cafe.naver.com/joonggonara/152208356
중고나라에서 예당으로 검색하면 다른 물건들도 있어요.
밤안개
도시를 삼킨 안개가 느릿느릿
소걸음으로 걷다가 멈춰선 자정 무렵
시야가 가려진 세상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들이 불빛을 겨누며
또 소걸음을 흉내 내며 지나간다
그런 풍경을 내려다보는 나는 왠지 푸근하다
세상살이 근심걱정 하나 없는 아이처럼
내일 닥칠 어떤 일도 두렵지 않다
내일 일은 내일 닥치면 하고
오늘은 그저 안개의 숨바꼭질 놀이를 구경하면 된다
이렇게 단순한 것을
이렇게 천진스러울 수 있는 것을
뿌연 안개의 속을 가늠하느라
모르면서 아는 체 하느라 피곤했다
아는 것을 제대로 밝히고 살지 못해 힘들었다
남에게 뒤쳐지지 않으려 발버둥치며 사는 모습은
저 안개 속에서는 부질없는 짓이다
내일 아침엔 언제 그랬느냐는 듯이
환한 햇살이 내 이마를 비출 것이므로
나는 오늘밤 아무 걱정없이 잠드는 일이 최상이다
그런 행복이 내게 지금 충만해서 기쁘다
*사진-펌
어제 밤은 온통 안개의 밤이었다. 앞이 분간 안될 정도로 안개 속에 잠겨 장관이었다. 사는 동안에 그렇게 불시에 막막한 시간에 갇히는 일이 더러 , 아니 자주 있지 않던가. 그래도 그런 후에는 더 나은 시간이 기다리고 있음을 우리는 경험으로 안다. 다만, 그 시간을 잘 견디고 준비하고 산다면 말이다.
자고 일어나니 시야는 보이는데 온통 회색빛 허공이 가득하다. 아직 안개는 사방 깔려있다. 비가 더 올 참인가? 푸근하고 축축한 기온이 영락없는 봄이다. 그러고 보니 3월 하고도 여드레구나. 메마르게 굳었던 관절을 풀듯 부드럽게 누리를 적시는 습한 안개도 반가운 손님이다. 나의 생활에도 저런 윤활유 같은 생기를 불어넣어 꽃 피는 날을 만들어야 하리.
차 한 잔 마시고 오늘 하루의 일을 준비하는 시간, 또 하루를 즐겁게 시작하는 시간이 주어졌으니 감사하다. 잘 사용해야지! ^^
가지고 있던 도자기와 다기를 아주 싸게 내놨더니 사이트에 올린 이틀동안 거의 2/3가 팔려나갔다. 전화 받느라 정신이 없었다. 사진 올리고 전화 받고 물건 싸고 택배 보내느라 아무 일도 할 수가 없었다. 대충 정리는 좀 됐으니 내일쯤은 다 마무리하고 다음에 또 한 번 한가할 때 내놔야겠다. 얼마나 싸게 내놨는지 장사하는 사람들도 사갔다. 재판매 할 거란다. 아무튼 정리는 잘 되어가고 있다.
한 때는 나도 도자기와 다기에 마음을 빼앗겨 도요지를 찾아다니며 사 모았고 결국 가게를 열고 장사까지 했던 이력이 있다. 월간도예지를 구독하고 도예를 배우러 다니기도 했다. 아마 자리를 옮겨 이사를 하지 않았더라면 다도를 정식으로 공부해서 다도선생까지 했을 지도 모르겠다. 그때 어울렸던 친구 중에 다도 선생을 하는 이도 있고 지금도 대학에서 공부를 하는 이도 있다. 뭐든 미쳐서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문학도 그러했다. 초보 문학도였던 백일장 수상자들의 동호회에서 한 두 명이 공부를 시작하자 너도 나도 앞다투어 방송통신대학에 진학해서 모두 졸업을 했고, 또한 지금은 대부분 등단도 했다. 뒤늦게 서예를 배워 서예가가 되어 후학을 가르치는 이도 있고 다도며 각종 취미생활을 발전시켜 이제는 어엿한 선생님이 되어 강의를 나가는 이도 있다. 샘을 가진다는 것, 남의 좋은 점을 뛰어넘어 자신의 발판으로 삼아 발전하는 긍정적인 자세는 보다 나은 삶을 가져다 준다. 그 세월이 벌써 10년, 20년이다. 그 시간 동안 많이들 변했다. 나이를 먹었으나 모두 잘 되어 간다. 아아... 나는 뭐하고 살았던가? 나도 등단을(만) 했고 먹고 사느라 정신없이 뛰었고, 아이들이 어른이 되었고 나는 제법 늙어간다. 그래도 기쁜 일이다.
더 노력해서 조금식 발전하는 사람이 되자고 늘 다짐만 하는 제자리걸음이지만 그게 살아간다는 것인 걸.
개화(開花) 2
꽃 한 송이의 떨림이
바람도 없이 전해온다
안간힘으로 밀어내는
생의 뜨거운 숨결이
한 점 불씨로 피어나는
비밀스러운 연애
작고 불그스레한 입술이
조심스럽게 허공에 입맞춤 할 때
내 심장도 가늘게 떨려왔다
사랑은 그렇게 고요히 눈을 마주치는 일
저도 알 수 없는 힘에 끌리어
향기로 존재를 증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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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자 5
아무도 없는 시간에 그림자와 논다
물 밖의 나와 물 속의 그림자가 마주보고
거울놀이를 한다
물 속에서 숨을 쉬는 그림자는
물 밖의 내가 답답한듯 흔들린다
이리로 건너와 내가 안아줄게
무거운 몸뚱이를 가볍게 하는 방법을 가르쳐 줄게
어두운 마음을 환하게 밝히는 방법이 있지
물 속의 그림자와 악수를 하고 노는 동안
수혈하듯 전해오는 그림자의 체온은 서늘하다
뜨거운 심장 잠시 식히고 차갑게 생각해 봐
발목을 붙잡고 따라다니는 그림자는
조급하게 달리는 속도를 잡아당긴다
그림자는 빛과 어둠 사이를 서성이며
존재와 부재를 동시에 확인하고 있다
그 여자 3
꽃이 되고 싶었네
노을을 닮은
그 여자
팔색조 꿈을 꾸며
시시각각 변신하는
정열을 감출 수 없었네
바람에 흔들려도
감사의 기도를 올리는
가녀린 손
스러진 후 더욱 그리울
시드는 모습마저 아름다운
향기의 여운
뜨거움을 사르며 피어나는
불꽃의 춤
마지막까지 놓을 수 없었네
*사진-펌
산동에 가려거든
구례 산동마을에 산수유
봄에 꽃필 땐 온통 노란색
꽃물살에 빠져 둥둥 떠다녔지
마을 골목 돌담길 사이 헤매다니며
이 좋은 경치를 혼자 보다니
웬지 쓸쓸해져 눈물이 났어
여름에도 가고 가을에도 갔는데
붉은 산수유 열매색 어찌나 고운지
몇 봉지 사와서 차를 끓여 먹었는데
이 좋은 차를 혼자 마시다니
또 쓸쓸해져서 가을앓이를 했지
환장하게 고왔어, 노랗고 붉은 빛
함께 바라볼 이 곁에 없을 땐
혼자서는 산동에 가지 마라
그리움 질펀하게 빛물살 덮쳐
가슴앓이 한참동안 피할 수 없어
미운 사람 손이라도 붙잡고 갈 것
미움도 사랑이 되는 묘약이 있으니
봄비 오는 날
비 오시는 봄날 아침
뜨락엔 여린 새순이 봉긋
세상을 향해 막 눈을 뜨는데
잠의 껍질을 깨고 나온
미명(未明)의 하루가 기지개를 켠다
내게 주어진 또 하루가 열렸으니
경쾌한 빗줄기의 아리아(aria)
싱싱한 시간이 출렁이는 기쁨
새로운 출발은 늘 신선하다
얼마나 즐거운 일인가
살아 숨쉬는 소리는 도처에 넘치니
우산 하나로도 세상을 밀고 가는
너와 나의 웃음소리도 찰랑거린다
발바닥에서 뿌리가 돋을 것 같은
그림자 없는 하루
가벼운 발걸음으로 나서면
가야 할 곳도, 해야 할 일도 많다
*사진-펌
개양귀비꽃
개양귀비꽃을 보면
가슴 한 켠이 간질간질하다
풋사랑에 얼굴 붉어지던 그 느낌이거나
불면에 수척해지던 이별 후이거나
아프게 박혀오는 몹쓸 빛에 눈이 먼다
활활 타오르던 불꽃마냥 화끈거리거나
그리움 가슴에 품은 숯불의 통증으로
아릿하게 돌아보게 되는 청춘의 뒤안길
꿈인 양 잠시 잊고 멈춰 서서 바라보는 꽃
사라져간 머플러 자락 펄럭이는 시간에
옛집
골목 내장처럼 풀어져 미로 찾기 하듯 한참을 걸어 들어간 거기 닭장처럼 칸칸이 들어 찬 세 사는 이웃들 밥솥 누룽지 긁는 소리 달그락 달그락 눈물겨운 꿈을 씹어 먹던 열세 살의 내가 있었네.거미줄 찬란하던 벽 모퉁이 새앙쥐도 더불어 오순도순 정답던 그 시절. 동생과 둘이 나란히 궁둥이 맞대고 만화책 뒤적이며 비밀도 아닌 비밀얘기 털어놓던 끙, 냄새나던 그 변소바닥 촛농자국이며 종이 탄 그을음이 희끗한 들창에 낙서로 어룽진 '봄!' 어제 꿈속에 거기 옛집에 갔었네. 아침마다 사모가 머리 빗겨 드려야 출근하시던 우리 담임 선생님 여전히 그 아내에게 얌전히 머리 맡기고 앉아 계시고 가난해도 가난한 줄 모르게 만들던 울 엄마 꽃무늬 사지 치마는 계들어 장만한 법랑냄비 무늬와 흡사하게 피고 있었네. 호박꽃 미끼로 개구리낚시하던 논 개울에서 울려 나오는"개골아, 맛있는 반찬 줄게 나하고 놀자!" 땅 따먹기 사방치기 하던 마당 한켠 묻어둔 살구놀이 공깃돌 그대로 패인 구멍에 얌전히 있고 수업료 못 내서 학교 못 가고 늑실늑실 돌아다니던 그 시냇가 물빛 청비단으로 흘러 넘실거리고 있었네. 오늘 난 차표 한 장을 사고 싶어지네. 추억을 가지러 가고 싶네. 탱자나무 인동꽃 빽빽하던 골목 어귀 코 훌쩍이던 영숙이. 말자. 영애 모두 시집가 애들 서넛도 낳은 에미 되어 뿔뿔이 흩어져 간 뒤 마을 어귀 덩그러니 오동나무 홀로 늙어서 아직도 날 기억하는지 가보고 싶네.
가야산에서
가야 하리
가야 할 것이야
기어코 가야 할 우리들의 산
우리가 넘어야 할 삶의 고지
이름이야 가야국에서 유래한 것이라지만
삶이 어차피 가야산이던 걸
한 발씩 내디뎌 결국 정상에 오를 때까지
혼자서 이겨내야 할 자신만의 싸움이더군
잔설 희끗한 능선을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조심 언 땅을 다짐처럼 밟으며
시시포스의 돌덩이를 생각했어
정상이 바로 눈앞인데
올라도 올라도 아득한 산봉우리
마음을 미리 데려다놓고
육신만 허덕거리며 뒤따라 걸었네
너무 맑아서 가슴 시린 하늘빛
나목들 빽빽한 사이를 스쳐 지나며
흘깃 훔쳐본 산의 마음
한 폭 꿈같은 순간들
바람에 날려가고 있었지
오를 때보다 내려오는 일
더 힘들고 어려운 것이 어찌 산뿐이랴
오르고 내리는 모든 것
가고 오는 일이 한가지라
땀 흘리며 잠시 내려놓은 호흡 추스르며
부처님 전 삼배 합장하고 해인사 돌아드나니
연꽃 같은 하루 저물고 있었네
*사진-펌
수몰지
극을 가리키는 나침반처럼
그리움 닿는 곳마다
물비린내가 난다.
차마 떠나지 못해 뒤돌아보던
생채기 덧난 수몰지
새벽마다 안개가 뒤덮이는
푸른 상처로 출렁인다
잃어버린 여물지 못한 꿈 하나
물새 부리에 물려 퍼덕이고
아직도 투명하게 눈에 보이는
유년의 뜰은 소식이 없다
마음 흐르는 곳마다
어머니 따스한 자궁이 기다리고
깊을 대로 깊어진 눈물 고여서
하늘빛을 닮아 푸르게 일어선다.
*사진-펌
천리향 3
새악시 머리채 얌전히 올린
별빛 총총 화관 꽃잠
보일 듯 말 듯 스칠 듯 말 듯
새악시 볼 붉어 애련하다
함부로 말하지 못할 고백
수줍은 향기로 전하는 뜻
님이 아시려나 가슴 졸이며
이른 봄날 수줍은 듯 피어나
온 천지간이 그윽하다
그리움에 무늬가 있다면
천리향 은은한 미소 같으리
소유와 무소유
세상과 사람이 싫어진 어느 노인이
깊은 산 중에 들어가 굶어 죽으려 했다
며칠 가만히 숲 속에 누워 있으니
죽지는 않고 몸과 마음이 맑아져
어느덧 불행하다는 생각 감쪽같이 사라지고
이대로 조금 더 살아볼까 그래 볼까
다 포기하고 나니 비로소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뭇가지로 기둥 세우고 풀로 덮은 움막 짓고
빗물 받아 마시고 이 년여를 홀로 살았는데
비로소 행복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다
세상 사람들이 안쓰러워하며 내려가자 하여도
그냥 이대로가 천국이니 내버려 두길 원했다
죽으려 들어갔던 산이 그를 살려내어
죽기도 전에 그는 이미 천국에 있다
오늘 마당에 내리는 비는
얼마나 고맙고 아름다운 손님인가
대추나무에 반짝이는 물방울을 흔드는
서늘한 바람은 또 얼마나 상냥한 친구인가
찬물에 밥 말아 김치 얹어 맛있게 먹었으니
이만하면 더 바랄 것도 없는 듯한데
어쩌면 천국에 살고 있으면서도 지옥인 양
나는 자주 엄살을 떨며 살아가고 있다
*2010년 8월 12일 SBS '세상에 이런일이' 604회에 방송되었던 경기도 인근 야산에 움막을 짓고 혼자 생활하던 '이은수 움막 할아버지' 편을 보고 쓴 글= 2011년 1월 6일 624회 방송 후에 산을 떠나 마을로 나오셨다고... 내용 궁금하시면 검색해보세요.^^*
봄소식
얼었던 강에 실핏줄 그어질 무렵
안개 이불을 덮은 마을이
3월의 입구에 화환을 내다 걸었다
겨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두 문을 닫고 쉿! 몸을 숨겼는데
나무의 입이 근질거리기 시작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 아니다
눈이 연일 퍼부었고 바람이 휘몰아쳤으며
사랑이 잠시 차가운 시간을 견뎌야 했다
죽었다고 믿었던 희망이 조심스럽게
꿈을 살갗을 뚫고 숨을 들썩이는 잿더미 속
심장의 불씨가 두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꽃이 방긋방긋 해빙의 소문을 벙싯거리자
멀리 가는 향기 아지랑이로 솟구치고
새들이 꿈을 속삭이기 시작했다
상처의 흔적을 딛고 일어나는 곳마다
여지없이 푸른 멍자국으로 가려웠다
봄을 눈치 챈 사람들이 나무 흉내를 내었다
떠난 것들이 제자리로 돌아오는 길목마다
축포의 화환이 터지고 닫혔던 문이 열리고
고개를 숙였던 목숨들이 조용히 눈을 떴다
봄의 식탁
고층 아파트에서 내려다 본 화단에
목련꽃 화사하게 피었다
하얀 사기그릇에 담긴 고봉밥으로 환한 허공
봄이 익어가는 4월 초입에 서성이는
배고픈 바람이 그릇을 핥고 간다
팔랑, 비워지는 그릇 두어 개
빈 그릇은 바닥에 내려둔다
봄은 조금만 건드려도 알러지가 돋아
기침이 그칠새 없이 몸을 흔들지만
사기그릇이 불을 견디며 단단해지듯
저 꽃 피우기 위해 얼음 눈보라를 견디는 동안
떠나간 사랑을 잊으려 애쓰며 새 꿈을 키웠을
야윈 사람들 꽃그늘 아래 서서 올려다 본다
마음에 촛불 켜고 기도하는 두 손을 닮았다
봄감기
느닷없이 바람 거세어
막 솟아난 새순 움츠리며
열꽃 돋는 이마 발긋발긋
삼월 때 늦은 눈을 덮어쓴 가지
재채기로 눈을 털어낸다
쉬운 것은 쉬 허물어지니
꽃 한 송이도 야무지게 피어야
우주를 품은 씨를 남긴다
징검다리 두들겨보고 건너는
신중한 봄날
앓으면서 여물어지는 삶
꽃이 피어야 열매가 맺힌다
넘어져도 일어나는 법을 배우니
봄감기는 괜찮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햇빛
북소리
어린 시절에 쓴 글들을 읽다가
시의 형식을 흉내 내는 나를 만났다
운율을 맞추고 연을 나누고 고운 낱말을 골라
모자이크 하듯 은유의 비늘을 붙인 생선
도마 위에 올려놓고 어디쯤에서 토막을 칠까
구울까 삶을까 날로 먹을까 고민하다가 망쳐버린
시 비슷한 형태의 글을 만났다
한 때는 넘치는 정열과 치기로 글을 써댔다
제법 똑똑하다고 생각했던 오만함도 자랑스러웠던
타고난 글쟁이가 될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얼마나 귀여웠던가 머리로 시를 쓰던 그 어리석음마저
배운 지식으로 문학을 사랑했던 젊음의 시절
풋 연애도 문학의 소재로 꽃 피었고
가난한 삶이나 인생 또한 문학의 소재였다
지난 시절의 흔적은 아름다웠다고
부끄럽게 마무리를 짓는 변명의 잔디가
밤을 지새며 구겨버린 수북한 원고지 무덤
적당히 세상에 타협할 줄 알게 된 때에도
가슴으로 심장으로 세상을 읽고 뜨거워지던
맹목적으로 시를 사랑한 꿈이 잡초처럼 무성했다
다듬어지지 않은 언어들이 불면의 밤을 건너왔다
기운 빠지고 오기도 수그러 들 때 비로소
온몸으로 허리 굽히는 내가 걸어간다
아직도 먼 길을 헤매며 돌고 도는 중
머리 떼고 꼬리 떼고 내장도 들어내니
남은 것은 텅 빈 껍데기만 질기디 질기다
더 부드러워지고 더 텅텅 비워서 나를 버리면
온몸으로 울음 우는 득음이 올까
아래 글 썼던 김정연 화가의 그림 중
도록에 안보이는 사진 한 장,
제목 ; '뭘봐'
사진을 깨끗하게 못찍어 희미하게 잘 안보이는데 왼쪽 지붕 빨랫줄에 브래지어가 걸려있다. 내가 이 그림을 보고 웃었던 것은 옥상에 널린 브래지어와 고양이의 눈빛..뭘봐??? ㅎㅎㅎ 보던 이가 윽, 하고 찔리지 않았을까? 유머와 위트가 있는 그림이다.
신부
매운 회초리
쓴 소리가 꽃을 피운다
보듬어 품는다고
다 사랑은 아니다
언제나 잔소리 안 들을까
얼른 커서 독립하고 싶었던
어린 철부지
혼자서도 잘 할 수 있다고
미운 짓 하던 시절이 있었다
찬 바람 이기고
야무지게 단련된 향기
온 누리 풀어 놓은 매화꽃
조개를 아프게 하고 태어난
진주보다 곱다
어미 속 썩이고 자란
딸의 가지런한 치아
활짝 웃음으로 눈부신
이른 봄날의 잔치
하얀 면사포 지천을 덮는다
꽃비는 내려
먼 곳에서 들려오는
화신인가 하였더니
내 집 마당에도
매화 벙글어
닫힌 빗장 활짝 열고
손님 맞아라
꽃인지 잡초인지
분간할 필요 없는
아름다운 목숨의 뜰
담벼락 밑에 이미
어린 봄 자리 잡고 앉아
푸릇푸릇 손 흔든다
한 번은 꽃 피고
또 한 번은 꽃 지고
하루는 바람 불고
또 하루는 고요하니
봄날 가슴의 시름도
피고 지고 하누나
창문 열고 기다리는
님은 아득히
들녘 아지랑이만 아롱아롱
꽃비 켜켜이 쌓여
융단을 깔았으니
사뿐히 발자국 남기고 오소서
진달래
처음부터 불꽃처럼 뜨겁게 타오르는 열정은 아니었다
서서히 스며드는 가랑비처럼 시나브로 젖어버린 사랑이었다
냉기의 세상에도 꼿꼿함을 잃지 않은 낯빛이 참으로 환했다
마음도 그렇게 따스할 것이라 믿고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이 되자 말을 하지 않아도 마음이 보였다
붉은 촉이 간질거리며 솟아올라 몽우리가 맺혔다
우리는 서로의 상처를 잘 보듬어 꽃봉오리를 밀어올렸다
그렇게 함께면 피가 잘 돌았고 잘 웃었고 싱싱해졌다
한 개의 꽃이 열리자 연달아 세상 모든 것이 환해졌다
미선(尾扇)나무
척박한 땅에서 자라난 억척이지만
여리디 여린 맵시와 향기로 단장하고
친척도 없는 홀홀 외로운 일가
따스한 햇빛 아래 꽃봉지 열고
봄볕에 그을리는 줄도 모르고 나들이 나섰다
혼자라도 느긋한 소풍을 즐기는 봄날
귀한 종속을 알아보지 못하는 나그네들
미선나무꽃더러 흰개나리꽃이라 한다
누가 알거나 말거나 그러거나 말거나
생은 제 나름대로 소중하고 찬란하거니
지구의 한 모퉁이 뿌리 내린곳이
이산가족 그리며 눈물짓는 사람들 사는 곳
세계 유일의 분단국 대한민국이라
지상 단 한 종의 꽃이니 모르는 이가 많지만
희거나 뽀얀 상아빛이거나 연분홍 꽃잎에 맺힌
선천성 고독을 수북한 총상꽃차례에 숨기고
호리호리한 몸매 낮은 키를 흔들며 춤을 추는
둥근부채꼴 열매를 맺어 이름도 미선나무
거친 자갈밭이라도 뿌리를 잘 내렸다
괴산, 부안에 사는 어여쁜 미선아,
혈혈단신 천애고아라 외롭다 마오
종속이 귀하니 한국 특산식물 대접받는 꽃
마음주고 눈길주고 걸음하여 반기면 친구
우리는 배달민족 한가족이다
*사진-http://cafe.daum.net/8345421/
미선나무의 이름은 한자어 尾扇에서 유래.
열매의 모양이 부채를 닮아 미선나무로 불리는 관목,
우리나라에서만 자라는 한국 특산식물,
높이 약 1m로 잎은 달걀 모양 또는 타원 모양의 달걀형이다.
꽃은 3월에 흰색으로 핀다.
한국의 충북 괴산, 전북 부안에 분포하며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봄, 꽃 만발하다
당신의 짐을 지고 간다고 생각하는 순간
어깨를 짓누르는 고통이 지구처럼 무겁다
내 짐을 당신이 지고 갔다고 생각하는 순간
뼈 속까지 저리도록 감사하고 눈물겹다
한낱 작은 슬픔에 흔들리던 좁은 심사는
지구를 들고 우주를 휘저어도 가벼운 것을
깃털 같은 생의 무게를 멍에라 여겼었구나
마음의 그림자에 놀라고 스스로 움츠렸으니
겁 많은 사자가 한 알의 낙과에 도망치듯 했네
모든 비롯됨의 근원은 내부에서 끌어내는 일
남을 탓하고 비난하기 앞서 거울을 보라
즐거움이 넘쳐 천지가 축제일인 계절에
당신이 보내신 도처에 꽃이 무거운가
잎을 달고 가벼이 솟아오르는 빛의 사태
오롯이 벙그는 꽃짐이 화환이구나
*사진-펌
나의 詩
강가에 앉아 연어를 보면서
그대 생각에 눈시울 붉어졌네
꽃 핀 몸을 강바닥에 부벼대며
태어난 물냄새 따라 물살을 가르며
눈먼 그리움으로 근원을 찾아가는 길
사랑하다가 죽어도 좋아
목숨조차 기꺼이 내어줄 수 있는 사랑을 가져
부딪치고 깨어져도 행복한 선택이라
진정 눈물겨워 울 수밖에 없다네
강물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는
때가 되면 몸이 뜨거워져
홍색반문 감추지 못하고 사랑을 하지
詩를 몰라도 詩詩詩詩 노래하고
詩를 낳다가 落花하는 꽃잎이지
목숨을 버리는 고통조차 행복이란 걸
저를 버리는 것이 새로 태어나는 것이란 걸
연어는 가르쳐주지 않아도 다 안다네
여행자는 먼 길 떠날 때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네
그대는 내 삶의 근원이니
차가운 물 속의 붉은 연어가 되어
애오라지 그대에게로 향하는 지느러미
바람을 거슬러 내가 가는 이유라네
아주 가까운 추억
저물녘 어스름 덮이는 지붕 위로
서녘 하늘 모퉁이 붉게 익은 하루
말랑말랑한 홍시 하나 부려놓는다
씩씩하게 잘 놀던 아이가 엄마를 찾는 시간
어둠은 자궁의 거처를 그리워하게 하는 힘이 있다
생명있는 것들은 서둘러 둥지로 돌아간다
먹을 것을 찾느라 세상을 헤맨 가장들이
지쳐 돌아오는 길은 멀고도 힘겹다
짓눌린 목이 거북이 모양으로 들어갔으나
새끼들을 보면 다시 쑥 나올 것이다
오늘 하루도 수고하였다
세상의 대부분 일이 번다하였으나
연극을 관람한 듯 내일은 이내 추억할 것이다
서서히 물들어가다가 어느새 사라져버리는
빛의 그림자는 무게가 없다, 고통도 그렇다
망각과 잠의 힘으로 힘을 충전하고
내일 아침 또 일어나 사냥터로 나갈 것이다
노을도 스러지고 사위가 어둑어둑해지면
성자의 모습으로 나무는 마을을 지키고 있다
목련꽃
어찌 그립지 않으랴
목련꽃 꽃등 아래 서면
그리움이 없는 사람도 눈을 감고
그리움이 있는 사람은 눈물이 난다
화사한 드레스를 입은 처녀들이
무리지어 지나가는 봄길
누구나 사랑하던 사람 있었을 텐데
지나간 연인이나 다가오는 연인이나
하얀 드레스를 보면 가슴이 뛰고
새 봄을 앓지 않겠는가
약속이나 한 듯 예식장마다 붐비는데
생이 비록 목련꽃만큼 환하지 않더라도
봄 한 철이나마 불행을 잊고 살아도 좋은
겁없는 젊음이 아름다운 이유이다
봄이 지나면 일순간 낙화하더라도
어찌 그립지 않으랴
순백의 천사들 행진
혼자인 사람들은 외로워서
목련꽃만 보면 가슴이 뻐근해지는 것이다
*사진-펌
구름이불
비 그친 하늘에 풀어진 구름
이불솜 펼쳐놓은 듯 폭신폭신하다
봄이불 새로 시침질 하는 듯
새 몇 마리 허공을 자맥질하고
비뚜름한 구름 모퉁이 매무새를 다듬는
바람의 손길 바쁘다
휘어진 무지개 무늬 홑청에 새기고
새이불 덮고 꿈꾸는 세상은 슬픔이 없으리
가난한 자들이 불면에 시달리는 날
어머니 품인 양 따스해지리
유채꽃
바람에 하늘거리는 유채꽃
노오란 햇살 끌어당기며
겸손한 향기로 사방이 환하다
혼자보다는 둘이
둘 보다는 여럿이
무리지어 필 때 더 아름다운
어울림의 지혜를 펼쳐보인다
아름다운 자태로 웃을지라도
생존을 위해 꽃을 열 때까지
묵묵히 고통의 시간을 견뎠으리
삶은 아플수록 환한 꽃밭인지
가장 화려한 춤을 추기 위해
스스로 태우는 등신불이 되어
활활 제 존재를 밝히고 있다
수선화
삼월 어느 양지녘
봄의 무대는 막이 오르고
노오란 치마를 입은 어린 무희들
우르르 달려나와
누가 보아주지 않아도
바람의 음률에 맞추어 춤을 춘다
영혼의 향기를 풀어내는
순결한 꽃이여
때를 가르쳐주지 않아도
아름다운 생의 축제를 알린다
봄이 쑥쑥 자라는 동안
종을 흔드는 아이들의 웃음소리
까르르 퍼져 나간다
*사진에 적힌 작성자는 사진 작성자입니다.
네이버블로그에서 펀 사진입니다
홍매화 2
천박할 정도로 붉은 꽃빛이라
흉보지 말아주세요
처절한 흔적을 알아주지 않아도
결코 울지 않겠어요
아무도 모르는 속마음이라고
함부로 말하지 마세요
그대 홀연히 떠나던 날
면도날에 베인 듯 울컥 피어버린 꽃
진저리친 자국마다 번지는 혈흔
붙잡지도 못하고 돌아설 때
입술을 깨물며 참을 수밖에 없었지만
피울음 삭이며 보내야 하는
아픈 사연을 어찌 다 말하나요
하필이면 아름다운 봄날
하늘빛은 환장하게 맑아서 서럽고
꽃빛은 유난히 더 붉었지요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길 떠나는
상여는 흔들리고 상여소리 휘어지고
미망(未亡)의 살풀이춤 흐드러졌지요
홍매화 1
봄이면 불씨를 키우는 나무가 있다
가지마다 불길을 세우는
뜨거운 홍매화
비 한차례 긋고 가면
오히려 활활 잘 타오르는 나무
겨우내 꽁꽁 언 땅 속에
무슨 불씨를 몰래 숨기고 있었길래
미친 듯 화염을 내뱉는 것일까
묵은 등걸에 화상자국 아직 선명한데
또 불장난을 저지르는 나무
해가 비치면 더 기승이다
말리면 더 맹렬해지는
바람난 연애질이 저러할까
순식간에 타오른다
꽃나무 아래 지나던 늙은 홀아비
부러운듯 망연히 바라보고 섰다
봄 스케치
낯설은 하늘에 나래 저어온
물빛 고운 새의 부리를 닮은
봉긋한 꽃잎이 열리다
겨울의 하얀 디딤돌을 건너
취한 아지랑이 비틀거리고
볼 붉은 처녀애들 몰려다니다
잊어버린 이름들을 기억해내곤
지난해 못다부른 갈잎의 노래
수줍은 빗소리로 속삭이다
*이 글은 내가 17살 문학소녀 때 썼던 시다.
벌써 35년도 넘은 세월이 지나 보니 그때의 내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삼도물산 사보 창간호에 실렸던 글인데 원문은 어찌 썼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그 시절(1976년) 원고료로 3,000원을 받았던 기억이 있다. 내 생에서 처음으로 글을 써서 돈을 받았다. 내가 가지고 있는 옛날 노트에서....
*사진-범공천
열무김치
뻣뻣한 줄기 소금에 절여
거친 허세 한풀 꺾고
맑은 물에 헹구어 낸 푸성귀
붉은 고추 삭힌 젓갈
화끈하게 버무려 어우르니
맛의 경지를 보여주리라
맵고 짠 눈물
새콤닽콤한 웃음으로 익어
비로소 맛깔나는 삶
잘 익어 숙성된 열무김치
식탁에 먹음직하게 올라
이름 하나 얻었구나
식은 보리밥이라도 좋다
뭐든지 다 주고 싶은
나도 그대의 열무김치다
*사진 보며 침 꼴깍 삼키다가 ..ㅎㅎ
우리집 냉장고엔 아주 신 열무김치가 있다.
보리차물에 밥 말아서 척척 얹어 먹으면
도망갔던 입맛도 돌아오겠다.
개나리 1
남들의 부러움조차 용납하지 못하는
사랑을 소유라고 착각한 여자
질투의 불꽃을 태우던 여자 있었네
그와 그녀의 불문율은
오직 나만 바라기 하라고
오직 나만 바라기 할 수 있다고
그 누구도 끼어들 수 없는
둘 만의 아성을 쌓고 싶었네
완벽한 사랑이란 그런 거라고 믿었네
때로는 먼 거리에서 지켜보고
때로는 자유롭게 놓아 주어야만 한다는 것을
절대로 인정하지 않았네
친친 동여맨 약속과 맹세가
한낱 구름처럼 허무한 것임을 몰랐네
서로를 묶은 밧줄이 영원하다 믿었네
시간이 흐를수록 더 견고해질 거라던
뜨거운 마음은 어느새 식어버리고
어느 날은 그 밧줄도 썩어버렸네
빈 가지에 홀로 타오르는 불꽃
매서운 이른 봄날씨에 서둘러 나와
지나가는 행인들을 불러 세우네
내 사랑 누구 본 적 없나요
내 사랑 누가 훔쳐갔나요
내 사랑 혹시 당신이었던가요
*사진-범공천
개나리.2
잎보다 먼저 피는
햇빛꽃
밤에도 지지않는
달빛꽃
황금같이 변치않을 사랑
노오란 별꽃
나만보면 활짝 웃으라고
웃음꽃
*사진-펌
개나리 3
매운 바람에 뛰노는
야생의 아이들
아무것이나 잘 먹고
넘어져도 얼른 털고 일어서는
언 볼이 환한 웃음
조르르 담장 밑에 쪼그리고 앉아
공기놀이 땅따먹기놀이 하느라
해 지는 줄도 모르고
올망졸망 별이 되어
빛나는 눈망울들
반짝반짝
개나리 4
깜찍한 것 같으니라고
어쩌면 저리 앙징스럽게
시치미를 뚝 떼고 있는지
맨 먼저 봄맞이 하는
여리고 여린 네 꽃잎이
별로 박혀 반짝이는 대낮
겨울 맹추위도 견뎠으면서
꽃샘추위 춥다 춥다며
옷깃 여미며 종종 걸음 달음박질 치는
내 뒷모습에 대고
깔깔 웃고 있는 얼굴
엄살쟁이야! 하고 부르는 것 같다
꽃구경
냉이 캐러 갔다가 꽃만 보고 왔네
뿌리에 칼 들이대는데 방긋 웃는 풀꽃
어찌나 앙증맞고 어여쁘던지
그만 엎드려 눈 맞추고 놀았네
눈이 맞았다는 것은 통했다는 것
서로 바라기하는 찰나일지라도
나도 모르는 이끌림에 마음을 주는 것
짝 잃은지 십 년째 외로운 친구
매화 핀 꽃나무 향기 맡으러
정원에 들어가 흠흠거리던 사이
그 아래 있던 철쭉나무 가지
그녀의 중요부위를 슬쩍 건드렸네
애인 없는 걸 아는지 보시를 하니
오늘 계 탄 날이라며 농담을 하네
봄은 은근슬쩍 내통하는 시간
만물이 생동하는 기운이 뻗쳐
근질거리는 양기가 치솟는 계절
땅 속 움만 돋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몸도 마음도 꽃피는 때
눈맞아 바람나기 딱 좋은 계절
봄밤은 꿈마저도 싱싱하겠다
*며칠 전 친구가 집에 다녀갔는데
친구가 그때 상황을 시로 써보라고 했다.
자기가 허락했으니 자기를 써먹어도 된다고.
그러마고, 약속을 해서 써봤다.
엊그제 아파트 정원에서 캔 쑥으로 쑥국도 끓이고 쑥전도 부치고 미역국과 닭볶음탕을 곁들여 저녁을 먹었다.
청양고추도 두 개 넣었더니 매콤해서 더 맛있다. 향긋하고 식감도 좋다.
쑥전을 부치다 든 생각이, 지금 더 많이 캐서 냉동해두었다가 나중에라도 먹게 준비를 좀 해야겠다는 것이다.
쪄서 말려서 가루로 만들면 쑥차로도 먹을 수있고 나중에라도 쑥국이나 쑥떡,쑥버무리 같은 것도 할 수 있겠다.
그러려면 쑥을 얼마나 많이 캐야되지?
오늘 텔레비전 보니까 냉이효소 만드는 것이 나왔다. 카페에서 본 내용중에 달맞이김치도 보았는데 지금 나오는 야생초는 대부분 다 먹을 수 있으니 날씨 따뜻할 때 나가서 두둑히 캐와서 이 봄 나물을 많이 먹어둬야겠다. 봄나물은 약초라 보약이라지 않는가.
밤의 목련
하얀 촛불 은밀하게 켜두고
아무도 바라보지 않는 시간에
곱다시 여린 속적삼 가만히 풀어내는
처연히 밤 안개에 젖은 여인이여
마음이 스산하지 몸이야 춥겠는가
오지 않을 님 기다리다 지새는 밤
기억 속의 님 향내는 어사무사한데
홀로 향기를 흘려 보내는 심사
어둠 속 창백한 불빛 심지 올리고
부끄럽지 않을 만큼만 흔들리고 있다
수줍게 떨리며 풀리는 여인의 옷섶
농염하게 익은 자태 은근살짝 훔쳐보다
깊은 밤 어둠 속으로 나꿔채가는 바람아
바람만 바람만 바라기하는 그 마음 알면
님 창가에 몰래 가져다 주려무나
*사진-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