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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3원 대표작 감상-2) 오원 장승업

박풍규 2010. 1. 8. 19:49

“그림에 취한 신선”이란 뜻의 영화 <취화선>의 주인공 장승업을 여러분은 아직도 기억하실 거에요. 실제 인물보다 더 리얼한 연기를 해준 배우 최민식 덕분에 강렬하게 다시 태어난 화가 장승업. 이번 주에는 조선시대를 통틀어 가장 기량이 뛰어났다는 평을 듣고 있는 화가 장승업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영화에서 소개되었던 것처럼 장승업의 생애의 시작과 끝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홍수와 흉년, 돌림병 그리고 민란으로 인해 혼란했던 조선 시대의 말기에, 고아로 태어나 여기저기 떠돌아 다니다가 한양에서 머슴으로 일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그의 인생 초기에 관한 이야기 입니다. 그리고 영화에서처럼 한 양반의 도움으로 그림과 글을 공부하게 되죠.

남달리 그림에 조예가 깊었던 문인 이응헌은 일개 종이파는 집의 일꾼이었던 장승업의 재주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을 우연히 알게 되고, 그를 자기의 집으로 데려와 그림과 글을 가르칩니다. 주인이 소장한 휼륭한 그림을 보면서 솜씨를 익혔지만, 무엇보다도 타고난 천재적 소질과 한번 본 것은 절대로 잊지 않는 귀신 같은 눈썰미는 장승업을 금새 장안에 유명한 화가로 만듭니다.

만약 장승업이 그림으로 돈을 벌고자 하였다면 그는 금방 부자가 되었을 겁니다. 그에게 그림 부탁을 하기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과 마차가 골목을 가득 메웠다고 하니까요. 하지만 그에게는 그림 자체가 그의 인생이었기에 결코 돈과 명예에 연연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때는 술동이를 이고 나타나 그림을 청하면 금새 붓을 들기도 했다죠.

장승업은 술을 목숨처럼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림 값으로 받은 돈은 죄다 주막에서 술을 마시는 데 사용하고, 또 돈이 얼마나 들어왔는 지는 계산하지도 않았구요. 주막에서 돈이 떨어졌다고 하면 "나에게 술대접이나 할 따름이지, 돈은 물어서 무엇 하느냐" 고 하기도 하고, 심지어 주막에서 그림을 그린 적도 많았답니다. 게다가 그는 여색(女色)을 좋아하여 늘상 미인을 옆에 두고 그림을 그렸구요.

한 번은 그의 그림에 반한 고종 황제가 장승업을 궁에 불러들여 병풍 그림을 그리도록 주문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답답한 궁중 생활이 싫고, 술을 먹고 싶다는 생각에 장승업은 궁궐을 탈출하였습니다. 그것도 세 번이나 말이죠. 그리고 그 때마다 주막에서 술을 먹다가 잡혀왔구요. 장승업은 벌을 받아야 했지만, 그를 아끼는 민영환의 간청으로 간신히 그의 집에 머물면서 그림을 그리라는 왕의 허락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그 병풍은 완성되지 못했답니다.

그렇듯 한군데에 속박되길 싫어하는 장승업이었기에 결혼을 해도 남들과 같은 단란한 가정생활을 꾸려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는 마흔이 넘어 결혼을 하고도 하룻밤을 보낸 후 부인을 남겨둔 채 또 다시 방랑의 길을 떠났습니다. 한 여자의 남편이기보다는 화가였던 장승업의 가슴에는 이성으로도, 사회적 도덕관념으로도 구속할 수 없는 그림에 대한 강한 열정이 타오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귀신이 그의 손을 빌려 그림을 그린다”는 말을 들을 만큼 장승업이 그리는 산수화, 인물화, 동물화 등은 어느 것 하나 빠지는 분야가 없었습니다. 책을 만 권 읽어야 올바른 그림이 나온다며 그림 속에 선비의 고매한 정신을 담고자 하였던 당시의 사대부들과 장승업의 생각은 좀 달랐습니다. 그는 아름다움 속에 무언가를 담기 보다는 그 아름다움을 그대로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었죠. 아름다움이란 그 자체 만으로도 예술가에게는 진리나 신과 같은 절대적 가치가 될 수 있었으니까요.

특히 김홍도의 신선도를 보면서 장승업은 어지러운 세상을 떠나 아름다움을 추구하며, 그 속에서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 뿐이었습니다. “사람의 생사는 뜬 구름과 같은 것이오. 그러니 어디 경치 좋은 곳을 찾아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 마땅하지 요란스럽게 앓는다, 죽는다, 혹은 장사를 지낸다, 번거롭게 할 필요가 무에 있겠소?” 라며 말하던 것처럼 어느 날 문득 장승업은 사람들 사이에서 사라졌습니다. 죽었다고 말하기도 뭣한 장승업의 사라짐을 두고, 그과 친구로 지내던 일본기자는 “그가 신선이 되어 갔다”고 말하였습니다.

황학산초가 그린 가을강의 모습을 본뜬 그림 (1879)


황학산초란 중국 원나라의 유명한 화가인 왕몽의 호입니다. 장승업은 그가 그린 그림을 무척 좋아했고, 또 본뜨기를 즐겨 했습니다. 하지만 왕몽 그림의 특징은 배우되, 장승업 나름대로의 스타일이 살아난 그림으로 그려내었지요. 그림 속 산과 나무 그리고 강의 구도가 짜임새있게 배치되어 있구요, 강 위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림을 생기있게 만들고 있습니다.

호취도 (1880)

우리나라에 있는 매 그림 중에서 가장 완벽하다는 평을 듣고 있는 작품입니다. 사람들은 이 그림을 보면서 “귀신이 그의 손을 빌려 그린 것 같다” 라고 말하였습니다. 언뜻 보아서는 호방한 필치로 일시에 그린 것 같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매의 깃털 하나 하나부터 나무결 하나하나까지 섬세하게 표현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매서운 매의 눈초리와 날렵한 몸짓이 화가가 얼마나 많은 정열을 쏟아 부었는 지 짐작케 하고 있구요.

세 사람이 시간을 묻는 모습 (1890)


이 그림의 내용은 세 사람이 모여서 “바다가 변하여 뽕나무 밭이 될 때마다 나뭇가지를 하나씩 놓아 두었는 데 지금 그 나뭇가지가 열 개가 되었다” 며 나이 자랑을 하고 있는 중 입니다. 상상할 수 없는 나이의 노인인 듯한데요, 그런 노인들이 모여 있는 곳이 구름이 내려다 보이는 산 위입니다. 아마도 장승업이 그린 이 세 사람은 신선인가 봅니다. 그리고 그 신선들은 그가 꿈꾸는 또 다른 자신일 것입니다.

솔바람 소리와 폭포 (1890)


그림 중앙에 세 그루의 소나무가 기품있게 서 있고, 그 위로는 폭포가 떨어지면서 안개가 계곡에 가득한 모습입니다. 그리고 위의 그림은 작아서 잘 안보이시겠지만 소나무 아래에 두 남자가 부채질을 하면서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그려져 있답니다. 한가로운 여름날의 조선 산수의 정취가 화면 가득히 담겨 있습니다.

귀거래도 (1890)


이 그림은 중국 진나라 때의 시인 도연명이 왕의 부름을 받고도 80일 만에 관직을 내려놓고, 고향에서 평생을 은거하며 시를 짓고 술을 마시며 유유자적한 삶을 살았다는 이야기를 그린 것입니다. 당시 조선 사회는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매우 혼란했습니다. 그런 사회를 떠나고 싶은 마음 뿐이었던 장승업은 세상사를 초탈한 도연명을 바라고 그리워하며, 가슴 속 바램을 그린 것이겠죠.

대나무와 닭 (1890)


장승업의 그림에는 조선땅 어디에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닭이 많이 등장합니다. 당시에 닭은 귀신이나 질병 같은 악한 기운을 쫓아낸다는 의미를 가졌기 때문에 그림으로 많이 그려졌습니다. 장승업은 문인화의 주된 소재인 대나무는 잘 그리지 않았는 데요, 여기에선 눈부신 장닭의 품위를 높이려는 듯 배경의 장식으로 운치있게 그려져 있네요.

붉은 매화와 흰 매화 병풍 (1890)


매화 나무의 한 둥치만을 클로즈업 해서 화려하게 그려낸 이 작품은 10폭짜리 병풍입니다. 위에선 오른쪽 4폭 만을 보여드리는 것이구요. 매화는 차가운 바람을 이기고, 피어나는 세 벗이라 하여 소나무, 대나무와 함께 세한삼우(歲寒三友)라 불리고 있습니다. 장승업이 어려운 사회상을 바라보며, 어떻게든지 조선이 이 역경을 이겨내길 바라는 마음을 보이고 있는 듯 하네요.

오동나무를 닦고 있는 모습 (1890)


장승업은 중국에서 전해오는 고사를 그림의 소재로 많이 이용하였습니다. 위의 그림도 그 중 하나입니다. 중국의 한 학자였던 예찬이란 사람이 있었는 데요, 그는 결벽증이 무척 심했다고 합니다. 어느날 찾아온 손님이 무심코 뱉은 침이 오동나무에 묻었는 데요, 손님이 돌아가자 마자 예찬은 시동을 시켜 그 것을 닦도록 했다고 하네요. 그 이야기를 그림으로 그려낸 것입니다.

여덟 마리의 말 (1890)


많은 학자들이 말하기를 그림으로 그리기가 가장 어려운 동물은 말과 개라고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늘상 보아온 동물이라서 조금만 잘못 그려도 금방 알아차리게 되기 때문이거든요. 위의 그림은 어떠세요? 말에게서 볼 수 있는 다양한 자세가 한 그림 속에 모두 담겨 있네요. 잘 보이시지 않겠지만 네 명 중 맨 앞 사람의 어깨 위에는 매가 한 마리가 있답니다. 이제 막 매사냥을 떠나려는 것 같네요.

괴석 위에 선 닭 (1896)


황량한 배경이 겨울로 느껴지는 것처럼, 장승업의 말년에 그려진 그림입니다. 늙어서 힘이 없는 듯, 닭의 털색조차 바랜 듯하네요. 다른 암탉들도 거느리지 못한 채 기이한 암석 위에 홀로 외롭게 서있는 늙은 장닭의 모습에 장승업은 늙고 지친 자신의 모습을 투영시키고 있습니다.

출처 : 사랑의 스케치
글쓴이 : 여사동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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