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게실/영화

[스크랩] 황야의 무법자 [1964년]

박풍규 2009. 5. 1. 13:59
 

 

 

 

 

 

 

 

 

   

 

 황야의 무법자(perun pungno di dollari) 방랑의휘파람

 ★감독 : 세르지오 레오네

★주연 : 클린트 이스트우드

★음악 : 엔니오 모리꼬네

 

 

 
 

 

 

 

 

 

 

 

 
 


 


 


 


 


 


 

 





 


 


 


 


 


 

 

 

 

  

 

 

 

 

 

  

 오래전부터 인류역사의 발전은 개혁을 통해서 이루워져 왔다.
영화계도 다르지 않아 간간히 개혁적인 문제작들이 등장하면서 그동안에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왔는데
1964년에 발표된 이 “황야의 무법자“도 당시로서는 영화계에 거의
혁명에 가까울 정도로 파격적인 개혁 성향의 작품이라고 할 수가 있다.

 

  

  

 

우선 이 작품은
그동안의 대표적인 고정 관념, (큰)세 개를 타파했다고 자부하는데,


1).서부 영화는 언제나 많은 돈을 들여서 미국 할리우드에서만 제작을 한다는
관념을 깼으며,
2).서부 영화의 주인공은 항상 옳고 언제나 지지 않고 이기기만 한다는 관념을 깼고,
3).또 영화음악은 언제나 촬영 후 거창한 악단 연주에 의해 만들어 진다는 관념을
깼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영화음악의 비중을 기존의 영화들보다
훨씬 높이는 계기를 만들었다.

(“Ennio Morricone“ 의 위대한 업적중 하나)

 

 

 

 

 

 

 

 

20세기 초반, 무성 영화 감독이었던 아버지, “빈센조 레오네”("Vincenzo Leone")와
여배우(“Bice Waleran”)인 어머니 사이의 영화인 가정에서 태어난 개혁적 성향의
“Sergio Leone"(1929-1989, 이태리 로마/위 사진)

 

이미 10대 때부터 단역 배우와 감독 보조로서 이태리 영화계에 종사하기 시작
하였는데, 시나리오 작가로서도 서서히 명성을 얻어가던 20대에,
로마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제작을 위해 유럽으로 촬영을 온 미국 현지 팀에
감독 보조로 합류를 하면서 (할리우드 제작 방식 등) 많은 걸 배우게 되고
이후, “Quo Vadis"(1951), “벤허”(1959), “소돔과 고모라”(1962)등의 제작에도
조감독으로서 참여를 하게 된다.


그리고 1961년에 드디어 감독으로서 첫 작품인 그리스 사극(280 BC 때의 이야기)
“Il Colosso Di Rodi"를 발표하였지만 별로 재미를 보지 못한다.

 

 

 

 

  

 

1960년대 들어, 미국 본토에서 서부 영화의 열기가 식은 것을 확인한
그는 유럽의 자본으로 새로운 스타일의 서부 영화로 (감독 데뷔 후)두 번째 작품을
기획 하게 되는데, (배급처: UA) 이번에는 흥행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미국 배우 중에서 "Henry Fonda"와 "Charles Bronson"을 섭외 하였지만
촬영을 위해 유럽까지 올 수 없다는 대답만 듣게 된다. 그래서 꿩 대신 닭이라고
할 수 없이 미국 TV 시리즈 "Rawhide"에 출연한 “Clint Eastwood”를 촬영지인
스페인의 황야(오지)로 부르게 된다.


일본인 명감독인 “Akira Kurosawa"(1910-1998)가 1961년에 발표한 ”Yojimbo"를
("用心棒"/이후 1996년에 “브루스 윌리스”의 “라스트 맨 스탠딩”으로도 리메이크 됨)
시나리오의 주축으로 하여 만들어진 이 영화가 발표되자 그동안 고정 관념 속에 있던
미국 영화계 에서는 난리가 났다.


대부분의 평론가들이 모조리 혹평을 하기 시작하였으며 “마카로니 웨스턴”
(또는 스파게티 웨스턴) 이라고 폄하를 하였고 심지어 형편없는 변방의 감독이 만든
싸구려 창녀 같은 영화라고도 하였는데, 그들이 그렇게 혹평하던
이 “세르지오 레오네”가 20년 후인, 1984년에 모든 평론가들이 명작으로 손꼽는데
주저 하지 않았던 “Once Upon A Time in America"를 만든 장본인이 될 줄 은
아마 몰랐던 것 같다.


그러나 어쨌든 이 새로운 스타일의 “마카로니 웨스턴”이야말로 당시의 일반 관객들
에게는 여러 가지 이유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동안 "존 웨인“같은 배우들이 보여주었던 정통 서부극의 주인공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Clint Eastwood”(1930, 미국 SF).
누더기 같은 멕시칸 판초 를 걸쳐 입고,
입에는 시가 꽁초를 물고 주름이 깊게 패일 정도로 찡그린 그의 인상은
오히려 카리스마 가 넘치는 색다른 “마초”의 매력으로 다가왔으며,
기회주의자 같은 행동으로 인하여, 갱들에게 죽을 정도로 흠씬 얻어터지고
또 린치를 당하는 이 주인공의 모습은 과거의 서부극과는 분명히 다른 모습이었다.


물론, 이 무법자 시리즈를 통해 “Clint Eastwood”는 일약 월드 스타로 발돋움을
하게 된다. (이 첫 작품에서의 그의 출연료는 단돈 만 오천 불 이었으나
삼부작의 마지막 편인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에서는 이십오만 불을
받게 되고 Option등으로 받은 돈을 합쳐 그 자신의 프로덕션을 차리는데
Seed Money로 사용하고 이후 1971년에 자신의 첫 감독 작품인
“Play Misty For Me"를 제작하는 계기가 된다.)

 

 

 

 

  

 

한편 대사를 중시하지 않고, 오히려 대사보다는 인상 쓰는 얼굴표정과 눈동자,
그리고 총 등을 극도로 클로즈 업 하는 등(그 큰 스크린에 얼굴이 반밖에 않나온다./
그의 전매특허: Tight Close-Up & Long Wide Angled Shot)
독특한 "레오네"의 촬영기법도 새로운 충격이었지만
무엇보다도 재삼 언급하지 않을 수 가 없는 파격적인 방식의 주제곡과
그 영화음악이야 말로 이 “마카로니 웨스턴”의 매력을 한층 가중 시켰다.


나이는 한 살 차이가 나지만 "Sergio Leone" 와는 학교 동창으로서
로마의 음악학교에서 트럼펫을 전공하던 “Ennio Morricone“는 친구의 덕분으로
이렇게 본격적인 영화음악을 만들게 되지만 (현재까지 500편이상의 영화음악을 만든
그 이지만 이 영화가 바로 그의 데뷔 후 첫 성공작이다.)
이후 “모리꼬네“가 만든 음악들로 해서 ‘”레오네”의 영화들도 더욱 빛을 발하였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큰 도움을 준 셈 이고
"Eisenstein 과 Prokovief"
"Hitchcock 과 Herrmann"
"Fellini 와 Rota"의
뒤를 잇는 영화계의 유명한 명콤비가 되었다.


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를 비롯한 여러 영화인들이 20세기의 영화계에 가장
위대한 명콤비로 바로 이 두 사람을 꼽는데 주저하지를 않았다.


(주) 기억해둘만한 다른 명콤비(Collaborator)들:
“Bertolucci - Sakamoto "/ "Burton - Elfman”/ "Lynch - Badalamenti"/
“Young- Barry"/“Spielberg - Williams"/ "Lean - Jarre"/"Cameron - Horner"/
"Traffaut-Delerue"/ "Stallone - Conti"/"Lelouche - Lai"/"Edwards - Mancini"/
"Besson- Serra"/"Cronenberg - Shore"/"Palma - Donaggio"/"Argent-Goblin"/
"Eastwood-Niehaus"

 

 

 

 

 

 

Ennio Morricone“(1928, 이태리 로마/위의 사진)역시
상당히 개혁적인 사람 (좌파) 으로 그동안 의 고정관념을 탈피하여
영화 촬영 전에 주제곡을 미리 만드는 등(음악을 들으면서 촬영을 하게 함)
새로운 시도를 하기에 이르는데, 그동안 오랜 세월동안 관현악적 인(Symponic)
영화음악에 익숙한 관객들에게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하였던 소리들, 예를 들어,
채찍 소리라던가 종소리, 휘파람 그리고 하모니카와 전자기타 등을 이용하여
전혀 새로운 방식의 음악을 만들었던 것이다.


그는 이후 이런 자기만의 스타일을 “음악적이지 않은 영화 음악”이라고 정의 하였다.
그리고 특히 우리나라 에서는 영화보다도 휘파람 멜로디의 이 주제곡(“Titori”)이
더욱 더 유명하게 된다.

 

 

 

 

  

 

1964년의 이 영화 성공으로 "Sergio Leone"는 계속해서 같은 스타일의
“마카로니 웨스턴”(일명, “Dollars 시리즈”)을 더 신을 내서 만들게 되고
또 이 분야에서는 최고 전문가가 되는데


1965년에는 우리에게 “(속)황야의 무법자“로 알려진
“Per Qualche Dollaro in Piu“ (For a Few Dollars More)를,
그리고 1966년에는 "Il Buono, il Brutto, il Cattivo"(석양의 무법자)
(The Good, the Bad and the Ugly)를 계속 발표하며
(스페인에서 만드는 속칭 “무법자 삼부작”은 일단 마감)
이후의 약 10년간의 “마카로니 웨스턴” 전성시대를 직접 열게 된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그의 성공의 모든 것 은 아니었다는 것을
우리는 이후에 알게 되고, 그의 평생의 “꿈의 프로젝트“(Dream Project)라는
“Once Upon A Time in America"(1984)를 끝으로 참으로 아깝게 (심장병으로)
1989년에 타계를 하였다.

러시아 혁명을 주제로 한 또 다른 대작 영화 제작의 꿈을 이루지 못한 채....
(또 다른 프로젝트명: “Once Upon A Time In Russia”)

 

 

 

 

 

 

이 영화들을 보고나면 명작 이라던 가 또는 고급 영화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는다.
하지만 형편없는 저 예산 으로, 오락 영화로서의 이만한 성공을 가져올만한 사람도
이 “Sergio Leone“ 와 “Ennio Morricone“ 콤비 가 아니였다면 불가능 하였을
것이다. 어쨌든, 오늘날에도 유러피언 인디펜던트 영화의 기초를 닦은 대표작중 하나로
꼽히고 있는 이 영화를 교두보로 하여 이 두 사람은 전 세계적인 감독과 영화음악가로
성장을 하였으니, 서로가 서로에게 “Win - Win" 을 한 결과를 가져왔고
또, 이들의 용감한 개혁정신 이야말로 영화계에 얼마나 큰 발전을 그 동안에
가져왔는가를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그나저나 “Leone“가 손을 떼고 난 이후에는(물론 몇 몇 작품이 더 있긴 하지만)
서부 영화라는 장르도 그 맥이 거의 끊긴 게 아닌가 싶어, 새삼스럽게,
아쉬운 마음도 든다.

 

 

 

 

 

  

 황야의 무법자는 엔니오 모리꼬네가 명장 세르지오 레오네감독과 컴비가 되어 만든 첫번째 작품으로 큰 명성을 가져다 주었다. 영화의 타아틀 백에 처음 사용된 이후 주인공 죠(클린트 이스트우드)가 등장항 때마다 계속 되풀이되는 이 곡은 실로 멋진 극적 구성으로 놀랄 만한 효과를 빚어내고 있다. 기타의 리듬을 탄 휘파람의 애수어린 멜로디가 낭랑하게 황량한 서부의 정경을 그려 나간다. 그리고 이것을 강렬한 일렉트릭 기타가 받아들여 다이나믹한 코러스로 주제를 재현하면서 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하여 최고조에 이르면 곡은 또다시 원래의 기타와 휘파람으로 낮게 노래되면서 적막하게 사라지듯이 끝을 맺는다. 

 

 

 

 

 

 

 

출처 : 껄껄웃는 방랑자의 꿈
글쓴이 : 방랑자 원글보기
메모 :
  • 현재글[스크랩] 황야의 무법자 [1964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