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行길 은 人生길......
1. 산에도 길이 있다.
동네에만 길이 있는 줄 알지만 산에도 분명 길이 있다.
먼 곳에서 보면 그게 그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산에도
길이 있다. 어떤 산을 몇 번이나 오르면 길눈이 트일까?
인생을 몇 년이나 살면 삶의 길눈이 트일까?
동네 길이 훤한 사람도 산길은 어두울 수가 있고, 산길에
밝다고 해서 인생길까지 훤한 것은 아니다.
2. 산에는 왜 가는가?
서양인들은 대체로 도전과 정복의 개념으로 산을 대한다.
동양의 정서로는 구도와 수양의 개념으로 이해한다.
적어도 동양인들에게 산은 정복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산을 어떻게 정복한단 말인가. 산은 자연일 뿐인데.
3. 산에 오르려면 허리를 굽히지 않을 수 없다.
아니 허리를 굽히지 않고는 산에 오를 재간이 없다.
대체로 높은 곳에 오른 사람들은 이렇듯 산 입구에서부터
몸을 자주 굽혔던 사람들이다. 이런 굴신력이 아니고는
높은 곳에 이르지 못한다. 높으면 높을수록 굽힘도 커져야
만 하니까.
4. 산을 오르는 사람과 산을 내려가는 사람이 서로 마주칠
때 우리는 역지사지(易地思之)를 실감하게 된다.
내려가는 이들은 대체로 여유가 있고 오르는 이들은 숨이
차서 헐떡거린다. 그러나 여유 있는 하산 길 이전에 이미
힘든 등산길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남의 입장을 생각
하는 훈련장으로 산행 이상 좋은 도장이 없다.
5. 호젓한 산길에서 사람을 만나면 누구나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수고 하십니다. 안녕하세요. 좋은 산행 되십시오. 고맙습니다.
그런데 인사를 하지 않는 두 가지 경우도 있다.
단체 등산객을 만나서 사람의 희소성이 없어졌거나 너무 지쳐서
여유가 없어졌거나.
6. 산에서 지키는 도덕심과 예절이라면, 산에서 느끼는
생명에의 외경심이라면, 산에서 느끼는 만큼만 사람의
귀함을 실생활에서 적용한다면
세상의 모습이 얼마나 좋을까. 산에서는 구도자를 닮아 있던
사람들도 하산하면 그 모습이 흐트러짐은 어떤 조화일까.
교회당이나 성당이나 법당에서 만난 사람들이 모두 성자의
얼굴을 하고 있다가 세상에 나가면 다른 얼굴이 되는 것처럼.
7. 산에 오를 때의 짐과 내려 올 때의 짐은 무게에서 큰
차이가 난다.
오를 때는 비상시를 대비하나 내려올 때는 평상시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대체로 올라갈때의 짐은 꽉 찰 만큼 많아서 묵직한
무게를 느끼게 마련이다. 그러나 한 재 두 재 넘으면서 짐은
조금씩 줄어든다. 하산하여 산의 발 뿌리를 벗어날 무렵이면
대부분의 배낭 은 텅텅 비게 된다.
8. 산에 가면 모두가 무등(無等)이 된다. 왕후장상도
장삼이사도 모두 무등이다.
무등은 평등과는 다르다. 평등이나 동등은 등위가 존재함을
전제로 모두가 똑 같은 등위라고 주장하는 반면,
무등은 처음부터 등위가 존재하지 않는 개념이다. 산에 가면
등위가 없고 산만 있을 뿐이다.
9. 산행에서 최대의 적은 험난한 절벽도, 높은 봉우리도,
깊은 계곡, 사나운 맹수도 아니다.
가장 무서운 적은 허기와 한기다. 인생의 최대의 적은 무엇일까.
역시 허기와 한기가 아닐까. 이 허기와 한기를 빼고 어떻게
인생을 말할 수 있을까? 허기와 한기만 이길 수 있다면 산길이나
인생길이나 모두 가볼만 하다.
10. 인생에는 리허설이 없다.
한 번도 해 보지 않은 일을 리허설도 없이 곧 바로 실행에
옮기면서 살아간다. 아내노릇, 남편노릇, 군대 생활, 직장
생활 등 모두 리허설이 없다. 한번만 기회를 준다면 이번에는
잘 할 것만 같은데 리허설이 없는 인생이기에 두 번째 기회는
돌아오지 않는다. 만약 두 번째 기회가 주어진다면 정말 잘할
수 있을까? 같은 산을 두 번째 갈 때 는 누워서 떡 먹기처럼
아주 쉽던가? 두 번째일지라도 그렇게 쉽지만은 않으리라.
느끼는 어려움과 치러야 할 수고는 매번 비슷한 무게로 다가 온다.